“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눅 2:14)

 

한 밤중에 비추는 찬란한 빛처럼 엄숙하고도 장엄하게 시작되는 성탄 찬송으로 여호와 하나님’(통일 30)의 곡과 비슷하다. 기존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 신앙과 재림 신앙을 강조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12월에만 강조하는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예수님의 탄생 구속사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죽으심,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으로 연결됨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찬송가의 내용은

1, 고요하고 쓸쓸한 저 달빛 아래 천사 찬양소리 온 사방에 퍼지네

2, 볼 것 없는 구유에 나신 예수님 참 아름다워라 우리 왕 나셨네

3, 아기 예수 평화의 주로 오셨으니 온 세상 자녀들 다 기뻐 경배하라

되어있다.

 

한 평생을 찬송가 작사와 작곡, 편집에 헌신해 온 오소운 목사는 어린이 찬송에 있어서도 그의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 그는 '21세기 찬송가 연구'를 출판했다.
한 평생을 찬송가 작사와 작곡, 편집에 헌신해 온 오소운 목사는 어린이 찬송에 있어서도 그의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 그는 '21세기 찬송가 연구'를 출판했다.

캐나다 원주민 휴론족의 캐롤송

진 데 브레프

(J.de.Brebeuf;1593~1649)

1643년경 작사 

제세 에드갈 미델톤

(J.E.Middleton;1872~1960)

1926년 영어로 번역

16세기 프랑스령 캐나다 원주민 휴론족의 캐롤송을 1641년 예수회

신부인 진 데 브레프

(J.de.Brebeuf;1593~1649)1643년경 아메리칸 토착가사에 붙였으며 이를 40여 년간 캐나다 토론토의 센트니얼(Centennial)감리교회 성가대를 지휘하고 많은 저서와 번역을 하였던 제세 에드갈 미델톤(J.E.Middleton;1872~1960)1926년 영어로 번역하였다. 한국어 번역은 오소운(吳小雲;1931~ )목사가 하였다.

진 데 브레프(J.de.Brebeuf;1593~1649) 목사는 1617년에 예수회(Jesuit) 신부가 되었고, 1625년에 온타리오 휴론호 근방에 있는 아이호나티리아(Ihonatiria), 동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교회관을 세우고 전도하여 많은 사람을 회개시켰다. 그러나 1649316일 동족에게 피살되었다. 가사가 처음 나타난 것은 찰스 로빈슨 목사(Rev. Charles Robinson)가 펴낸성소를 위한 노래'Songs for the Sanctuary, 1879' 1054장에윈덤'WINDHAM'이라는 곡명의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현재 곡조인 프랑스 캐럴 곡으로 바꿔 입은 것은 1971년판 'The Hymn Book, 1971'이었다고감리교 찬송가 해설서에 기록되어 있다.

 

작곡 : 캐나다 원주민 휴론족의 캐롤송

프랑스령 캐나다 원주민인 휴론족의 캐럴(Huron Carol)찬송으로 제목은달 밝은 겨울밤''Twas In The Moon Of Wintertime'.이다. 이 찬송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 된 것은 한국찬송가위원회 편집, 대한기독교서회 발행 찬송가 (어린이용) 1973101장에 오소운 목사님 번역으로 실린 게 처음이다.

휴론족의 캐럴(Huron Carol)찬송으로 제목은「달 밝은 겨울밤」''Twas In The Moon Of Wintertime'.
휴론족의 캐럴(Huron Carol)찬송으로 제목은「달 밝은 겨울밤」''Twas In The Moon Of Wintertime'.

 

1절 그 고요하고 쓸쓸한 저 달빛 아래서

저 하늘 천사 찬양이 사방에 퍼지네

그 찬란한 빛 비치며 큰 기쁜 소식 들리네

우리 왕 나셨네 주 나셨네 영광 할렐루야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 파파파노 할아버지는 평상시처럼 열심히 하루 일과를 보내고는 곤히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파파파노야, 내일 크리스마스 날 내가 네 구둣방을 방문하고 싶구나.” 크리스마스 아침, 예수님의 방문을 약속 받은 할아버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만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꺼내어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난로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구둣방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준비를 마친 파파파노 할아버지가 밖을 내다보았지만 청소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길 건너편의 청소부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 좀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 점심때가 되도록 창밖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더기 옷을 입은 한 여인이 홑이불로 어린 아기를 감싸 안고 걸어갑니다. 파파파노 할아버지는 그 여인을 측은히 여겨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무심코 아기의 발을 보니 빨갛다 못해 파랗게 얼어 있었습니다. ‘아기가 신발이 필요할 텐데, 쯧쯧.’ 할아버지는 어젯밤 만들어 놓았던 조그마한 신발을 신겨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습니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겨울의 해는 빨리도 넘어갑니다. 이미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준비를 위해 올려둔 스프와 빵이 데워지고 있을 때 한 떼의 거지들이 나타났습니다. 파파파노 할아버지는 그 거지들에게 자신이 먹을 스프와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들은 모처럼 행복한 성탄절을 보낼 수 있었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파파파노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기쁨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녁이 되어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 털썩 주어 앉았습니다. “결국 꿈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혹시 내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놓쳐버렸나?”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꿈속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파파파노야, 너 오늘 나를 보았지?”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저는 오늘 하루 종일 구둣방에서 기다렸지만 예수님을 뵙지 못했는데요.” “나는 오늘 네 가게에 세 번이나 방문했단다.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누추한 여인으로, 한 번은 거지로 말이야. 그때마다 네가 나에게 베풀어 준 따스한 사랑에 정말 감사하고 싶구나.” 순간 할아버지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기쁨으로 가득 차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주님, 오늘은 주님의 생일이에요. 주님의 나심을 축하드립니다.

 

베들레헴은 본래 작은 마을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지 않는 아주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내린 호적 령으로 인해 호적을 올리고자 베들레헴에 몰려든 사람들이 많아 붐볐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만삭이 된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까지 겨우 왔지만 마리아가 묵을 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관을 찾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호적을 신고하다보니 여관 방 역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리아가 출산의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요셉은 여관집 주인에게 아기를 출산할 수 있도록 마구간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주인은 미안한 마음에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아기 예수는 시끄럽고 요란한 여관을 피해 고요한 마구간에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요한 곳을 좋아하십니다. 사역을 위해서는 소란한 곳을 마다하지 않고 가셨지만 홀로 계실 때는 늘 고요한 장소를 좋아하셨습니다. 공생에 기록을 보면 매일 새벽 고요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35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 매일 새벽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예수님은 새 힘을 얻고 새 지혜를 얻으며 하루하루 승리하셨습니다. 찬송가 1절은 그 고요하고 쓸쓸한 저 달빛 아래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것을 통해 스스로 낮아지는 삶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실 때도 낮은 몸으로 오셨지만 일생동안에도 낮아지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고 고요하며 쓸쓸한 베들레헴 저 달빛 아래서 저 하늘 천사 찬양이 사방에 퍼졌으니”(찬송가 1) 그 찬양의 요란함과 웅장함은 마치 북극의 추운 나라 밤하늘에 움직이는 오로라이상으로 대단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가 없었고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 가까운 들판에서 밤새도록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몇 사람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밤이면 가끔 사나운 짐승들이 양떼를 습격하거나 더러는 그 부근을 지나는 대상들이 약탈해 가는 수도 있었기 때문에 목자들은 의례히 온 밤을 새우면서 양떼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찾아가서 "목자들이여,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2:10-12)고 전하였습니다. 뒤 이어 하늘의 찬양대의 노래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 천사들이 하늘에서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평화로다."(2:14)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감히 들을 수 없는 최고의 화음과 감동의 하모니가 밤하늘에 그 찬란한 빛을 비치며”(찬송가 1)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천국에서 이러한 찬양을 날마다 듣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노래를 잘 못 부르던 분들도 뛰어난 목소리로 천사들과 함께 찬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사모하며 주님의 탄생하심을 축하하며 경배 찬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절 저 볼 것 없는 구유에 주께서 나셨네

그 온유하신 예수님 참 아름다워라

동방에서 온 박사들 그 귀한 예물 드렸네

 

성경에 보면 메시야 즉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예언하기를 미가서 52절에 유대 땅 베들레헴”(5:2)에서 탄생할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현재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목수의 일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해산도 갈릴리 나사렛에서 할 예정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아기 예수님께서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출산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무엇보다 성경에 나타난 예언이 거짓 예언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갑자기 로마 황제의 마음을 움직여서 모든 사람에게 호적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다윗의 후손인고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 있는 다윗의 동네에까지 와서 호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만삭의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1. 호적 하러 떠나는 요셉과 마리아

요셉과 마리아는 해산할 날이 다 차서 거동하기도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겨우겨우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는 멀리 살던 친척들이 호적을 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에 여관마다 방들이 다 차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셉과 마리아가 머무를만한 방이 어느 한 곳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만삭된 마리아의 모습을 보고서는 모두다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 뿐 아무도 자신의 방을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저희 생각에는 여보게 젊은 부부! 방이 넓지 않아서 좀 미안하지만! 내 방이라도 대신 쓰시오, 형편을 보니 오늘밤 넘기기가 어려운 것 같은데 그러다가 덜컥 아이라도 해산하면 어떻게 하겠소! 그러니 내 방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하시오, 나는 주인에게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 동석해서 잠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하겠소!” 하며 한 사람이라도 나설 줄 알았는데 여관 주인부터 시작하여 투숙객 전원이 내 일이 아니다 생각하고 무관심 속에 나 몰라라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지금이나 예나 사람들이란 늘 자기 배만 부르고 자기만 따뜻하면 남 어렵고 힘든 것은 생각도 안 하는 것이 보통인가? 봅니다.

 

2.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방을 내어주지 아니하는 고로 할 수 없이 요셉과 마리아는 급히 어느 집 마구간을 빌려 몸을 녹이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염려하였던 대로 아이를 마구간에서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만 왕의 왕 되신 예수님은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먹이를 담아놓는 구유에 눕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이 모습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여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칼과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당시 평화의 왕, 만유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은 소박하고 비천한 장소인 말구유를 택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평화의 왕, 만유의 구세주 예수께서 그 많은 장소를 두고 마구간으로 오신 이유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주님의 모습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 비천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심은 세상에 물질이나, 지위나, 지식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가난한 자들, 비천한 자들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거나, 연약하거나, 온전치 못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구원의 소망이 되시고자 가장 비천하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화려한 왕궁이나, 거룩한 성전이나, 부자의 안락한 안방에서 태어나셨다면 아무나 가까이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아무나 올 수 있는 마구간에 태어나심으로 모든 인류의 구주가 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3.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누우신 곳은 구유라고 하였습니다. 구유는 먹이를 담는 그릇입니다. 마구간에 오신 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구유에 누우신 것도 놀라운 상징으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48절부터 51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먹어야 산다는 것은 영혼이 예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산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담으면 그것이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영원한 삶을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생명양식인 말씀이 없으면 그 삶을 텅 빈 삶이요, 죽은 삶입니다.

마태복음 4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마을 이름이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말의 뜻은 '떡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떡 집의 먹이통 속에 생명의 떡으로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이미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의 떡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절 온 세상사는 자녀들 다 기뻐하여라

그 귀한 아기 예수님 널 위해 나셨다

참 평화 기쁨 주시는 아기께 경배 하여라

 

3, 아기 예수 평화의 주로 오셨으니 온 세상 자녀들 다 기뻐 경배하라

찬송가 3절에서는 온 세상사는 자녀들 다 기뻐하여라. 그 귀한 아기 예수님 널 위해 나셨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기뻐해야 하며, 또 날 위해 오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이 땅에 낮고 천한 육신의 몸을 입고 저 베들레헴 말구유 위에 오신 것일까요?

 

1. 구원의 기쁜 소식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시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마태복음 1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리 인간은 죄악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으며, 그리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3:23). 과연 이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해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 죄의 값을 청산해 줄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하여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인간이 갚아야 할 죄의 값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었고,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17절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심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 멸망에서부터 구원하시며(19:19), 환난에서 구원하시고(삼하 4:9), 또는 죄 가운데서, 저주 가운데서 구원해 주십니다(1:21). 또한 질병 가운데서 구원하시고(5:7-9),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2:14-15).

 

2. 임마누엘 축복

예수님의 탄생은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23절 말씀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714절 말씀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820절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끝날 때까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나라에 사냥을 아주 좋아하는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냥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그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나무꾼이 그 왕자를 구해서 정성스레 치료한 뒤 왕궁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임금님이 너무 고마워서 나무꾼을 불렀습니다. "내 아들을 살려 주었는데 너에게 큰 상을 내리고 싶구나,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말해 봐라!" 하고 말합니다. "임금님, 제가 할 도리를 한 것인데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저 임금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소원이 있다면 저희 집에 한번 오셔서 하룻밤만 묵어가시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임금님의 행차를 위해서 대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파송되었습니다. 임금님이 행차하시니 좁을 길을 넓히고, 좋은 식사를 준비하고, 나무꾼의 부서진 집도 수리해 주었습니다. 이 나무꾼은 어떤 소원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임금님과 하룻밤만 함께 지내기를 소원했을 뿐인데, 그의 모든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이 달라지고, 진입로가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고, 집이 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임금님하고 하룻밤만 잔다고 해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3. 평화의 축복

주님의 성탄은 평화를 주시는 축복입니다. 누가복음 214절 말씀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했습니다.

이사야서 96절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아는 사람은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서도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 참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인류의 존재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지구를 다 멸망시키고도 남을 ''원자폭탄'' 이라고 합니다. 한번은 미국 국회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를 감독한 오펜하이머 박사를 초빙해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은 원자 폭탄을 만드셨는데, 이 원자 폭탄을 막을 수 있는 무기는 없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이머 박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 원자 폭탄을 막을 무기도 있지요. 그것은 바로 ''평화'' 라는 무기입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나.... 어느 곳에서도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화, 예수로 말미암은 이 평화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름철에 강한 태풍이 몰아치면 온 천지가 뒤집히고 변동이 일어납니다. 바다 표면에 사는 물고기들은 안 죽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이리 저리 숨고 야단이 납니다. 그러나 바다 깊숙이 사는 고기들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상관이 없이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되 얕게 믿으면 걱정과 근심, 교만, 불순종, 죄악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얕게 하니까 의심했다가 사랑했다가... 미웠다가 원망했다가... 온갖 변덕을 부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깊게 믿어야 합니다. 깊은 믿음, 요동하지 않는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참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평화가 모든 권속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관주

 

1

고요한 달빛 아래서 *왕상 19:12,30:26,2:8,15

천사찬양 사방에 퍼지네 *9:6,103:20-22,2:10-14,7:11

찬란한 빛 비침 *58:8,2:9,32,9:5,9:3,26:13

2

구유에 주께서 나셨네 *2:16,1:3,2:7,12,16,40

온유하신 예수님 *2:21-23,2:7,12,21,5:19,고후 10:1

동방박사 예물드림 *60:6.2:11,12:3,5:1

3

다 기뻐하여라 *66:11,2:10,2:10,38,15:11

아기예수 널 위해 나셨다 *1:21-23,2:11,3:16,딤전 4:10

평화의 주님을 경배하자 *9:6,2:14,살전 5:23,7:2

<후 렴>

우리 왕 나셨네 *2:10-11,딤전 6:15,요이 1:3,19:10

 

 

관련 찬송

거룩한 밤 복된 이 밤 107

고요한 밤 거룩한 밤 109

고요하고 거룩한 밤 110

그 맑고 환한 밤중에 112

저들 밖에 한밤중에 123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