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2월인데 큰 개불알꽃이 예쁘게 활짝 피었다. 골목 양지바른 울타리 밑에 옹기종기 피어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평소 3~5월에 피는 꽃인데 기후 탓인지 일찌감치 피었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기가 참 거시기하다. 왜 하필이면 큰 개불알꽃인가? 이렇게 깜찍하고 귀여운 꽃에 민망한 이름을 붙이다니…. 미스코리아에게 말순이라 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파트 이름이 큰 개불알꽃 아파트라면 매매가는 곤두박질했을 테지.

꽃이 필 때 모습을 보면 큰 개불알꽃이란 이름이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하지만 열매를 맺을 때쯤이면 수긍이 간다. 열매의 모양이 영락없이 개불알을 닮았다. 집에 있는 애견이든 산책하는 개의 뒷모습을 보라. 큰 개불알꽃이란 이름이 결코 부당하게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여기는 이들은 <봄까치꽃>으로 부른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 같기 때문에 봄까치꽃으로 부름이 어울린다는 설명이다. 이름이란 부르는 사람도 불편하지 않아야 하니 나도 찬성이다. 학명을 바꾸는 일은 좀체 쉽지는 않지만.

서양인들은 이 꽃이 필 때 꽃 수술 두 개가 마치 새의 눈처럼 생겼다 하여 Bird’s eye라고 한다. 이것 말고도 <큰 지금>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이란 한자로 지금(地錦)인데 땅 위에 깔아 놓은 비단이라는 뜻이다. 큰 개불알꽃이 군락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큰 개불알꽃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어도 괘념치 않는다. 큰개불알꽃이라 했다고 하여 화내거나 상처받지 않는다. 봄까치꽃, 큰지금이라 불러준다고 더 좋아하지도 않는다. 누가 뭐라 하던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기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데만 전심한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미치광이, 귀신 들린 자, 먹기를 탐하는 자, 죄인들의 친구 등 온갖 불량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예수>라는 이름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데…. 예수란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이다. 이름처럼 예수의 이름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도 부른다.

사람마다 자기 이름이 있다. 내 이름이 무엇이든지, 어떻게 불러주든지 예민할 필요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큰 개불알꽃은 이름에 신경 쓰지 않고 꽃을 피우므로 본분을 다하듯이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도를 따라 사는 본분을 다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공학섭 목사(순천대대교회)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