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한 주간을 보낸다고 하는데,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며 우는 무리에게 주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묵상은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보며 애통함을 의미한다. 

바로크시대 ‘빛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출신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예수님의 십자가 장면을 그리기 위해 먼저 예수님을 그렸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치는 군중들을 그리면서 자기 얼굴도 그렸다. 자신이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장본임을 표현한 것이다. 렘브란트는 “하나님, 제가 예수님을 못 박았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못 박는 무리와 한패입니다.”라고 고백하고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대성통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흑인영가는 일반 찬송가들과는 달리 자연 발생적인 노래로, 투박하고 기교는 없으나 영혼의 깊은 절규와 함께 애절한 감동을 준다. 흑인영가는 내세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담고 있다. 

통일찬송가 ‘거기 너 있었는가(Were you there they crucified my Lord?)’는 작사자와 작곡자가 알려지지 않은 흑인영가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흑인노예가 성경말씀에 감동을 받고 무의식중으로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의미를 현장감 있게 전달해 준다. ‘거기 너 있었는가?’란 질문을 반복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무덤 속에 누이실 때, 무덤에서 나오실 때, ‘거기 있었는가?’라는 진지한 물음은 곧 주님의 구속이 얼마나 친밀하게 와 닿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이 가장 잘 표현된 찬송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내가 져야할 십자가, 내가 처형 받아 죽었어야할 그 십자가를 주님이 대신 져주신 대속의 십자가다. 주님의 부활 역시 내가 부활할 것을 미리 보여주신 부활의 첫 열매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며 슬퍼하지 말고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음을 상상해 보자. 주님의 얼굴 대신 내 얼굴을 그려 넣어보자. 나를 그 십자가에 매어달자.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내가 담당해야할 내 죄 값의 고난이었다. 이것이 고난주간에 묵상해야할 주님의 십자가다.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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