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미국의 가장 유명한 개혁교회의 설교가이며 신학자이기도 한 존 파이퍼가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신 50가지 이유”(생명의 말씀사, 2024.3)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안셀름이 물었던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습니까?"가 아니고, "그리스도는 왜 죽으셨습니까?"가 기독교의 근본적인 물음이라 생각해서 존 파이퍼가 이런 관점을 가진 것에 감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제가 우려하는 것은 신학자는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신 50가지 이유를 말하더라도,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왜 죽으셨습니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만을 굳게 붙들어야 하기 때문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해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중요성만을 굳게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속죄의 보혈을 그 중심에 놓지 않는 어떤 것과도 타협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일부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죽음 대신 생명의 상징으로 바꾸는데,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교리를 피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피라는 단어 대신 하나님의 나라로 대치하고자 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속죄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대신 참회의 사랑으로 대치하고자 하는데, 이것도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 이해로 바꾸고자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사랑의 완전함에 의해 마음이 움직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내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핵심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일의 확인된 우리를 구원한 것이고, 다음에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리고 죄악의 세력인 사탄을 정복하신 것입니다. 이 중에서 죄인의 구원이 중심입니다. 그리고 죄인의 구원의 기초는 대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어떤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죄악 세력인 사람의 정복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한 때 이단으로 몰리기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사람을 정복한 것은 중요한 진리이나(창3:15), 그보다 앞서 하나님 앞에 십자가 대속의 죽음의 필요는 인간의 함께 대한 반역죄에 대한 진노의 형벌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죄는 비록 그리스도의 의로 창의를 받았어도 여전히 옛 본성의 죄가 있어 우리를 유혹하기에,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피로 새롭게 죄 사함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상 모든 문제가 처리되고 해답을 얻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으로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의 하나님 되심과 십자가 대속의 중심의 피의 복음을 마음 중심에 믿고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억만 죄악을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담당하신 사실을 꿈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칭의도, 구속도, 화목도, 화해도 좋고, 사탄의 정복도 좋고, 하나님의 사랑의 강조도 좋으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기초되지 않는 없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예수 보혈 신앙으로 하나님께 날마다 나가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

임덕규 목사(충성교회)
임덕규 목사(충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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