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이 땅 구석구석을 복음의 눈으로 소개한 조원시 선교사

  • 입력 2024.07.04 11:21
  • 수정 2024.07.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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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372)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8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토디에니 오라흐 하임 소바)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네이모트 비미네카 네짜흐)”(시16:11).

하지(夏至)를 지나며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피서를 즐기려 하는 계절이 되었다. 하지만 요즈음 현실의 높은 장벽은 우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념의 벽과 통일의 벽이 높아서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기 힘들다. 북에서 보낸 오물 풍선이 투척되고 이에 대응하여 남쪽의 대북 방송이 심해지고 있고, 북은 핵 위협과 러시아 푸틴과의 외교 과시를 하면서 남북은 힘겨루기가 한참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를 갈구하며 말씀 속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자 한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아마르트 라도나이 아도나이 아타 토바티 발 알레이카)”(시16:2).

시편 16편은 다윗의 믹담(황금시, 교훈시, 묵상의 시, 능력 있는 노래, 허밍의 노래)시 이며 일정한 종류의 노래로서 시 낭송 방식을 말한다. 또 믹담은 ‘애정 있는 결백한 농부’의 뜻으로 음조명을 보이며 곡조 분위기가 마스길, 다윗의 보석과 같은 시이다. ‘철에 새기다. 도장을 찍다, 덮다’는 뜻을 가진 믹담은 원수로부터의 보호, 간구, 찬양시를 말한다. 이 시편은 시 56편(다윗이 가사에서 블레셋에 붙잡혔을 때의 노래)과 함께, 황금시로서 절망 가운데서도 기도로 노래하는 시의 의미로 순금 같은 시이다. 시편 16편은 일인칭(I-form) 시로서 국가 탄식시에 해당한다. 인간이 재앙이나 질병에 부딪힐 때 사람은 살았지만, 실상은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의인이 자신이 악한 세력과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역설적인 입장을 표현한다. 여호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의인을 불의하게 하는 악한 세력에 둘러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죽음을 막고 보호하신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인도되는 현실을 노래한다.

이러한 시편으로서 시편 16:10의 유사한 말씀을 가진 시편 17:15; 49:16; 73:23 등이다. 이 시편의 말씀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로 티텐 하시데카 리레오트 샤하트)”(시16:10).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고 그들을 죽음의 위협에서 구원해내시고 악하고 갑작스런 죽음에서 구하신다. 또한 그들이 죽을 때까지 언젠가는 ‘오래되고 생명의 충만한 날’(old and full of days)이 될 것이다. 이러한 확고한 신앙은 후기 유대교에서 깊어졌고 확대되었다. 시편 73편은 하나님이 삶과 죽음을 넘어선 숭고한 가치를 가지며 하나님의 교제를 통해 이를 실현됨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샤메레니 엘 키 하시티 바크)”(시16:1).

이 시편의 일인칭 기도는 국가 탄식시로 나타나고 있으며 역사적 상황에서 위험과 재난이 있는 상태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국의 적들과 내적인 방해자들의 공격에서도 다윗이 구원받는 것과 같이 구원의 현실을 말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쉬위티 아도나이 레네게디 타미드 키 미미니 발 에모트)”(시16:8). 이 시편은 제사장의 구역과 성전, 성도가 중심을 이뤄서 예배하고 제사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토라의 말씀 단계로 나가는 것이 그려진다. ‘땅의 성도는 존귀한 자요 나의 모든 즐거움이 있다(리케도쉼 아세르 바아레츠 헴마 웨아디레 콜 헤페찌 밤)’(시16:3)는 것이나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이며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하바림 나페루 리 바네임밈 아프 나하라트 샤페라 알라이)’(시16:6). ‘여호와는 나의 산업, 나의 잔의 소득, 나의 분깃으로 내가 지키나이다(아도나이 메나트 헬레키 웨코시 아타 토미크 골라리)’(시16:5).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장의 고백과 성도의 고백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예배하는 예배자로서의 축복된 삶을 고백하게 한다. 따라서 시인은 하나님이 지켜줌으로써 주께 피한다는 고백이나 ‘주는 나의 복이 된다’는 고백을 하며, 시인은 훈계(토라)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며 밤마다 양심이 교훈한다고 한다고 고백한다(시16:1, 2, 7절). 하나님의 복이 예배하는 삶에서 나오기에 시인은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하며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며 자신의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않겠다고 하면서 축복의 결단을 하고 있다(시16:4).

이러한 삶은 결국 기쁘고 즐거운 평화로운 삶,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라켄 사마흐 립비 와야겔 케보디 아프 베사리 이쉬콘 라베타흐)”(시16:9). 이러한 복은 신약의 복, 복음의 복, 예수의 산상 수훈의 팔복이 잘 이해하게 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린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 등이 천국을 소유하게 되고 위로를 받게 된다. 또 땅을 차지하게 되고 배부르며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을 가지게 되는 축복의 삶을 사는 것을 보여준다(마태 5:1-12).

 

이러한 복을 누린 선교사가 있다. 조원시 선교사(G. H. Jones, 1867-1919)는 남부 순례 기행문(1889년 여행)에서 충청도 문화를 소개한다(코리아 미션 필드 1929년 1월호 게재). 존스 선교사와 아펜젤러는 1889년 8월 20일 화요일 원주를 출발했다. 이때 횃불을 사용하여 여행을 하게 된다. 마을 어르신이 작은 마을을 주도하였기에 기수가 마을 원로에게 찾아서 어두움에 길을 갈 수 없을 때, 그 어르신이 다른 마을까지 안내해주었다. 계속하여 밝혀 주는 거대한 횃불로 인도되어 길을 밝히며 인접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선에는 그 당시 밤길 여행자를 도울 수 있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를 비용을 받지 않고 해주었다. “낮 동안 우리는 강원도와 충청도의 경계(소태재)를 가르는 산을 넘었고, 충청도의 동북쪽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충주는 부유한 나라의 중심에 있는 조용한 지방처럼 보였다. 그곳은 300년 전에 일본에 의해 침략당해 큰 고통을 받았다(탄금대 전투, 1592년 충주 전투). 존스 선교사는 ‘문경새재’는 ‘문경으로 가는 새들이 넘는 길’이라고 설명하며, 이 성문은 한국인들이 국가적 재난으로부터 빠른 시간에 대피하도록 산 요새의 접근이 힘든 높이에 건축되어 피난 도시로 갈 수 있도록 한다. 이 성문은 또한 도의 경계였는데 이를 통해 충청도와 경상도를 오갈 수 있었다.

조원시 선교사가 1888년 5월 19일 미 북감리교회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와 1893년 제물포에서 한국 최초 신학교육인 신학반을 개설하고 신학생들
조원시 선교사가 1888년 5월 19일 미 북감리교회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와 1893년 제물포에서 한국 최초 신학교육인 신학반을 개설하고 신학생들

“성문에서 우리는 휴식과 풍광을 즐기기 위해 잠시 쉬었다. 모든 방향으로의 경치는 아주 원시림처럼 보였는데, 웅장하고 장엄하게 보였다. 산 정상 아래는 많은 삼림으로 덮여 있었는데, 여기는 호랑이, 표범, 그리고 곰들의 터전이다. 비록 사람들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살고 있지만 그들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동물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을 문경의 유명한 관아가 있는 객사에서 보냈다. 여기서 의병들은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집결했었다. 또한 고니시와 가토가 조선 반도를 정복하기 위해 그들의 군대가 각기 다른 경로로 와서 이곳에서 연합했지만, 조선 침탈의 영역을 더 넓히기 위해 갈라져 진격한 곳이다.”

존스 선교사는 이처럼 일본의 존재, 임진왜란의 상황을 전하며 현재의 한반도 조선의 상황을 소개하며 예언적으로 일본의 위협이 이어질 것이고 결국 일제 강점기가 도래할 것을 예고하며 예언자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거기서 또 한 번 문경에서, 그들이 지나는 좁은 협곡을 보며 표현한다. “우리는 두 차례 폐허가 된 요새를 지났는데 이는 아마도 300년 전 남쪽으로 후퇴하는 일본군들을 공격한 의병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빗속에 이 협곡을 말을 타고 통과하는 것은 우리의 전체 여정에서 가장 처량한 모습이었다. 오후에 날이 개었을 때, 우리가 지나고 있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었고, 우리가 수도 경성이 소재한 경기를 떠난 이후로 경험한 것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 환경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존스 선교사는 물레방아 방앗간을 묘사하며 물이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수조에 통이 다시 채워지고 수조 통은 집 밖에 놓여 있는 채로 공이가 곡물을 빻으면 방앗간 밖의 위의 위치해서 수로는 수조 통으로 물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땅으로 내리치는 커다란 공이를 공중으로 들리게 했다고 자세히 표현한다. 이 물레방아 방앗간과 석회 가마 운영과 옷감을 짜는 여성들, 진흙 초가집 등을 묘사하며 조선의 과학적 문물을 소개한다.

대구에서 대구대도호부 성벽을 보고 판관 ‘홍용관’을 만나게 된다. 경상도 관찰사 홍 관찰사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러서 손님을 맞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을 기쁘게 환영하였다. 거기서 조선의 장(markets), 장사하는 사람들의 5일장을 보면서 관찰사가 마지막 마당 끝 가설물 가판대를 소개하며 관찰사가 그 시장을 도와주고 있는 모습을 설명한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생동감 있는 장터를 내려다 봤다. 그곳에는 신기한 눈으로 위를 향한 얼굴의 바다도 있었지만, 우리 같이 이상하게 생긴 두 사람에게는 눈길을 주지도 않고 이리저리 판매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얼마나 그 전능한 능력을 자랑하는 ‘돈’에 눈이 팔려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붙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장마당이 펼쳐지는데 사람들이 관심이 있지, 외국 선교사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시선을 빼앗은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 많은 판매대 앞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아무도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고난과 슬픔과 죄를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와 용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게 스치는 생각 하나는 ‘내가 이곳에서 설교를 하면 얼마나 좋은 자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설교를 했더라면 미국 공사관에서 나를 처벌했을 것이다.” 아레오 바고 언덕에서 사도 바울같이, 아테네 언덕에서 설교하는 바울과 같은 심정을 가진 조원시 선교사의 마음을 엿보게 된다. 그래도 “관원 한 명이 앞에 서고 일백여 명의 예비 신자 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우리는 다시 연단에서 내려와 시내를 잘 볼 수 있는 공원으로 안내되었다.” 순진한 아이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미국 어린이와 비교한다. 미국 아이들은 용서받지 못할 언행에 대하여 말하며, 자국의 아이들과 비교할 때 천사처럼, 조선 어린이는 참으로 무례하지 않다고 표현하고 있다. 존스 선교사의 조선 남부 여행 기행문은 그 후에 또 오는 선교사들에게 한국인들의 심성과 관습, 문화와 역사, 언어와 풍습을 소개하며 선교 안내서를 제공하였다. 이 글은 한국의 선교 문을 여는 것으로서 윌리암 캐리, 데이비드 리빙스과 같은 안내의 횃불이 되고 있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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