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말을 듣게 하옵소서!” 이것이 나의 기도 제목입니다.
가수 이용의 노래 가사처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74년 10월 17일. 이 날은 내가 강경지방 성동제일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사택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굳은 결심으로 연무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날입니다.
지척이 천리란 말이 있듯 내가 사는 곳이 논산이었건만 훈련소 안이 이렇게 삭막하고 다를 줄 전혀 몰랐습니다. 이것이 지옥이구나 싶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이기에 그 세계 속에 젖어 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삭막한 가운데서도 자주 듣던 말씀이 구호로 다가와 친밀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논산 훈련소 구호인 ‘충성(忠誠)’입니다. 하던 안 하던 입만 열면 '충성'이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때로는 내 귀에 들려오는 음성이 ‘충성’이 아닌 ‘총성’으로 들려오곤 했습니다. 어쨌든 ‘충성’이든 아니면 ‘총성’이든 둘 중 하나입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충성’이라는 단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애국가를 작사한 안익태 씨가 개성 송도보고 출신이며 신앙인입니다. 그가 애국가를 작사할 때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넣어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모든 이가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한 사실에 감사하곤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방을 담당하는 군인들이 처음 밟은 논산 훈련소의 구호로 "충성"이라 부른 것도 하나님의 귀한 섭리가 있음을 내 스스로 느껴 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항상 가슴에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큰 것을 맡기는 것을 말씀입니다(마 25:21).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요나의 책임감입니다(욘 1:12).
우리는 지금 과정이라는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인생들이 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할 텐데 이때 주님께 들을 최고의 칭찬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렙니다. 올림픽 때 나간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고 인천 공항을 나올 때 수많은 국민들이 환영을 하고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을 생각하며 지옥 훈련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말을 꼭 듣고 싶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할여할지니라(마 25:21)"라는 말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데 당연히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 주여! 나도 하나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하옵소서. 이것이 내 평생 소원입니다"라고 기도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