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거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신 17:6)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 씩 둘 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막 6:7)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 2:22)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אֵיבָה, enmity)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enmity)가 되게 하리니(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대감(敵對感, enmity)을 두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원한(אֵיבָה, enmity)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민 35:22)
 
성경에서 말씀하는 누룩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두 가지가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씨 뿌리는 비유와 천국 비유에 대한 겨자씨 비유 뒤에 붙어서 나오는 부분으로, 이 부분을 신학자들은 복음 또는 성령으로 해석한다. 겨자씨 비유에 이어서 나오기 때문에 누룩을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지만, 누룩은 복음이나 성령을 직접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누룩의 효용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누룩은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서 밀가루 전체를 부풀리는 작용을 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전파되는 속성을 설명하는 것이며, 부정적인 면에서는 거짓 교리와 거짓 복음이 전파되는 죄의 오염을 말한다.
 
무엇보다 오순절에 누룩을 넣은 빵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곡식을 추수하는 즐거운 축제를 뜻한다. 이는 신약에 와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3천명이나 되는 풍성한 영혼의 수확이 이루어졌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1-4, 41)
 
오순절 이후 이방인에게 전해지는 복음
 
초실절은 유대력으로 1월17일(부활절)이며, 오순절은 3월6일(레 23:15-21)이다. 초실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날로서 안식일 다음날에 성회로 모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다음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을 미리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빠르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오순절은 '맥추절'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때는 밀을 추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밀을 추수할 때에 하나님은 레위기 23장2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오순절(맥추절)에 밀을 추수한 다음에 떨어진 곡식은 가난한 자들과 객들인 이방인들을 위해 내버려 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 본문에서 말씀하듯이 추수는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구원과 심판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추수때는 맥추절이 아니라 절기의 마지막인 장막절(수장절)의 추수때를 말한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곡식을 주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오순절이 지난후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예표하는 나팔절 전까지는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기이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1-3절까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왜 부르셨는가?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그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이 구원의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14절에서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리니 그제서야 끝이 오리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모든 민족"은 헬라어로 '에쓰노스(ἔθνος)'라는 말로, 여기에서 '인종'을 뜻하는 영어 'ethno-'가 나왔다. 이것은 성경에서 이방인(Gentiles)이라는 말로 93회나 쓰였다. 또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인 마태복음 28장19절을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의 '모든 족속' 역시 '이방인'을 뜻하는 '에쓰노스'라는 단어로 쓰였다.
 
로마서 11장25절 이하를 보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되면, 구속주가 오셔서 유대인은 저절로 믿게 되어있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이방인 전도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초실절 이후 오순절에 교회가 세워진 뒤에 예수께서 나팔을 불며 재림하시기 전까지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최초로 복음을 전해주신 대상이 바로 사마리아여인이었던 것이 바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면서 교회가 세워진 뒤 A.D.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시기
 
하나님께서 가끔 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교회를 흩으시는 이유는,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복을 나누지 말고 다른 곳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된 유대인들이 이방 나라로 가서 살게되면서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 전도를 받은 이방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전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외국인보다 자기 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 말로 전도하는 것이 더 쉽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핍박을 받은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외국으로 가도록 하셔서 그들을 통해 복음을 들은 이방 사람들이 스스로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게 만드셨던 것이다. 
 
이렇게 이방인들을 복음화시키는 시기가 오순절부터 나팔절까지 약 4개월간이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들어가셔서 그 당시 천대를 받고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최초로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
 
이는 유대인의 절기에 맞추어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나팔절은 유대달력으로 7월1일(레 23:23-25)이며, 그 다음 절기인 속죄일은 7월10일이며, 장막절(수장절)은 7월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이다. 즉  오순절(맥추절)인 3월부터 나팔절과 장막절이 있는 7월까지는 4개월간이다. 이 4개월동안이 바로 이방인들을 복음화시키는 시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4개월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이다. 
 
즉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초실절인 안식후 첫날에 부활하신 뒤에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교회가 세워져서 이때부터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게 될 때에 나팔불며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그 후에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30절)라는 말씀대로 추수의 마당에서 구원과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있는 이유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도 만들고, 목사도 되고, 교인도 되지만 실제적으로 그들 중에서 알곡이 아닌 가라지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예언하셨다. 그 예언대로 현재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알곡으로 구별될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은 지극히 극소수에 불과함을 우리는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점과 흠이 없는 교회를 우리는 기대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인도하시므로 다른 이들의 티를 비판할 시간에 우리 자신의 들보를 깨달아 회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가라지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즉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의 모습으로) 우리를 미혹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크리스천을 환난에 넘겨줄 것이며 핍박하며 미워할 것이며,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특정 소수의 알곡들이 질투와 미움을 받아 욕을 얻어먹게 될 것이라는 말씀대로 현재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환난 속에서 우리는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핍박하는 이들을 미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알곡을 알곡되게 하기 위하여 가라지를 심어놓는 것을 허용하셨기 때문이다. 가라지가 있어야 알곡들이 연단을 받아 성화의 훈련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알곡들을 위하여 가라지들을 그들 나름대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특공대는 보통 군대와는 달리 매우 심한 훈련을 시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사람들은 가라지와 함께 있으면서 특별한 훈련을 통하여 강한 영적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기드온의 삼 백 용사처럼 예수의 군사라는 소수의 정예부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가라지를 퍼지게 하시는 것이다. 한 예로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감옥에도 넣으시고, 사람들에게 수차례 매를 맞게도 하시며 바다에서 죽을 고비도 넘기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가운데 그 모든 것을 통해 "일체의 비결을 배워서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에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고백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단을 받아 알곡이 되어가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의 상식과 지식과 체험과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개혁주의(Reformed)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은 이방신을 섬기는 상태에 있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로 부르셨다. 만약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사람만을 하나님께서 부르시며 쓰신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브라함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르심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역의 도구로 쓰임을 받거나 구원받을 사람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말세의 징조
 
말세의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에 기록된 것처럼 마귀에게 속한 온 세상은 모두가 자기만 사랑하며 교만하며 거역하며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점점 더 많아지며 절대로 원통함을 풀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다. 또한 절제하지 못하고 사납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서로 배반하며 성격들이 급하다. 그리고 인정이 점점 매말라 가고 스스로 잘난 척을 하며 하나님보다 세상과 자신의 생각을 더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경건의 모양'을 갖춘 교회 안에 있는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한다.
 
예수께서 세상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세상에는 평화가 오지 않고 핍박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고, 기근과 전쟁 등으로 점점 더 사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적그리스도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입에서는 성경과 반대로 "괜찮다. 곧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라며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빼고 "평화"와 "축복"과 "사랑"만을 외치고 있다. 
 
그들이 외치는 평화와 사랑의 메세지를 보면, "우리는 다른 종교인들과도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좋은게 좋은 것이다. 우리 기독교만 믿으라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이다"라며 '종교통합'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과 반대로 말하고 있다. 즉 적그리스도가 되어 예수님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원수로서 많은 교인들을 넓은 길로, 지옥의 길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이 바로 교회 안에 심어놓은 가라지들이다. 그런데 교계의 집회가 있을 때에는 이러한 일부 목사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열 때가 있다. 왜? 돈 때문에 그렇다. 이런 교회의 목회자들 대부분이 큰 교회를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말세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점점 가까와지는 구원과 심판의 날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방인들이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돌감람나무(Wild Olive Tree)에서 참감람나무(the Olive Tree)에 덧붙여진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많은 것을 추수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 추수감사절이 아니다. 알곡은 그것을 주셔서 우리를 살게 하시고, 우리를 살게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그 받은 구원의 복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영생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한 이후로 유대인들 가운데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돌아오는 Messianic Jews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로마서에서 말씀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거의 차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지막 때가 점점 더 가까와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신 뒤에 이루어질 추수의 마당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그때를 추수의 계절이 올 때마다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감사는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 뿐만이 아니라,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지옥의 자식에서 천국 백성으로 양자로 삼아주셔서 알곡으로 만들어주시고 예수님의 신부로서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성도들과 함께 추수감사절의 잔치를 열면서, 천국에서 있을 혼인잔치를 떠올리며 감사해야 한다. 
 
추수때가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 따라서 세상 것을 좋아하며 세상과 하나가 되려고 했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전도라는 명목으로 세상의 것들을 교회에 끌어들였던 모든 것을 회개하며 느헤미야처럼 과감하게 교회 밖으로 집어 던져야 한다.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려 놓았느니라"(느 13:4, 5, 8, 9)
 
만약 오늘 밤이 추수 때라면 또는 일주일 뒤가 추수 때라면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여전히 세상 것을 좇으며 즐기겠는가? 계속해서 교회의 문턱을 낮추어 세상과 구별됨이 없이 세상 사람들이 들어와서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느끼도록 즉 인본주의적으로 기획하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못한 것을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겠는가?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을 맞을 때마다 그 날이 가족들과 모여서 먹고 즐기는 날이 아니라, 그날은 구원과 심판이 이루어질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가운데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나기를 기원한다.
 
김에스더 목사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Esther Soo-Gyung Kim, Pastor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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