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충진교회 집사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도 신분상 의인이 된거지만 상태적으로는 아직도 죄인이다. 따라서 거듭난 후에도 죄와 싸워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승리하며 성화되어가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뒤에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앙과 관계되는 비전을 갖게 되고 그것을 소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게 된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비전을 가지기도 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 단체 직장 속에서 선한 역할을 하는 비전을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욕망을 비전이라는 아름다운 명칭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간은 비전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완전 배제하기 어렵고 그 중심에서 욕망의 비율은 최소화해야 한다. 비전 속에 내재된 우리의 욕망을 주님은 아신다.

교회생활하면서 갑자기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단기 훈련받고 공동체에 후원을 요청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물론 자신은 소명을 받았다 확신하였겠지만 직장도 그만두고 할일을 찾다가 선교사를 할려는 분들중 객관적인 면에서 의문이 들때도 있다.

미문교회 김영철 목사의 합신교단 목사 안수식에서의 권면 내용을 인용한다. 신학교에는 세종류의 사람들이 입학한다. 진짜 소명을 받고 온 사람, 소명을 받지않았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온 사람, 세번째가 젤 문제인데 하나님은 소명을 주시지 않았는데 본인은 소명받았다고 박박 우기고 온 사람이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세상적 성공목표가 아니고 굶더라도 목회의 길을 택하는 분이 진짜 소명자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욕망이 최소화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유익을 위해 쓰임받길 원하는 분이 진정한 소명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진짜목사들을 우리는 존경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들 중에도 자신의 욕망을 비전이라 하면서 교회를 운영하는 분들이 없지 않고, 교인들 중에서도 자신의 욕망실현으로 교회를 이용하기도 함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이루어 가는건 좋지만,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교회에 장소를 제공받고 시설을 사용하고 예산을 받아서 할때엔 정말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본인이 사회복지의 비전이 있다해서 교회에 복지재단설립을 건의 해서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때 (물론 교회영향력없는 사람의 건의는 받아지지 않는다) 그 교회에서 꼭 해야 할 일인지, 그리고 그 지역에서 반드시 할 필요가 있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경우를 보곤 한다.

교회 안에서 비전과 욕망을 교묘하게 혼돈하는 일은 목사에게 제일 해당되지만 장로 권사 집사등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된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인 일 외에 벌이는 이는 많은 일들은 비전이 아니고 욕망충족이기 쉽다.

지나친 건축 문화센터 커피숍 복지사업등 ...물론 그런 일들을 벌이는 목적은 전도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또 선한사업이라 하지만 그속에 내재된 욕망의 비율을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또 그런 일들을 벌일 때 그 비전을 제시한 사람이 자신의 능동적 물질 등의 봉사가 아니고 순전히 교회의 예산을 사용해서 그 일을 하고 자신이 그 사역의 중심이 될려고 한다면 이는 자아실현 내지 욕망충족일 위험이 많다.

비전이라 할지라도 교회나 공동체의 돈을 개인의 비전 실현에 쉽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늘 교회 예산사용을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한다. 특히 개인의 욕망을 포장한 비전에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진정한 개인적 비전을 이루기 위해선 교회를 이용할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희생과 노력이 필수이다. 교회예산은 교회의 본질적인 일에 사용해야 하며 예배와 신앙교육 외에 구제와 선교 등은 당연히 하되 자기교회에서 모든 사역을 다 하려고 문어발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 각 교회에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 맞추어 그 교회가 잘할 수 있는 몇가지에 집중함이 좋을 것같다. 그래서 각 개교회들이 각자 맡은 사역들에 충실하여 서로 보충하고 보완하고 합력하여 큰 우주적 교회공동체가 이루어지면 좋을것이다.

에베소서 4장13~16,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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