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에 기초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해석 설교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요한일서 2:18-29 

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사도 요한은 어부였습니다. 그는 사랑의 사도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보아너게’, 즉 ‘우뢰의 아들’이라고 부르실 만큼 성격이 급하고 혈기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자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태워 죽이자고 말한 사람입니다(눅 9:54). 또한 예수님께 나아가 주의 왕국이 임할 때 가장 높은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은근히 압력을 가한 사람이기도 합니다(막10:37).

그런데 이렇게 다혈질의 요한이 조용하고 힘있는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그는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고 말합니다. 또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는 예수님의 새계명을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 본 제자였습니다(요 20:8; 21:7). 나아가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예수님과의 동행이 있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 후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고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뿐만 아니라 요한일서 이서 삼서의 기록자인 요한은 여전히 사랑의 사도로서 사랑을 노래합니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일서 4장만 보아도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고 노래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0-1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6-18).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이 얼마나 사랑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며 통찰력입니까?

그런데 사랑을 말하는 사도 요한은 사랑의 표현을 합니다. 그 표현은 놀랍게도 세상과 이단을 경계시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그가 말하는 사랑은 십자가의 언약의 사랑으로서 진리에 서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언약의 사랑이기 때문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사랑의 사도이지만 진리를 외칩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3-4).

이에 요한은 사랑을 허무는 것을 비진리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관점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아장아장 걷는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미친개가 달려올 때 보호하는 것과 같이 요한은 주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적인 미친개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단을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이단 경고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한은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전하는 사람들에 대해 서슴지 않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되게 전하는 이단들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요이 10).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실은 비진리를 전하며 참된 형제들을 비방하고 미워하는 디오드레베를 공개적으로 실명으로 교회에 알림으로써 교회를 보호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한이 에베소에서 공중 목욕탕에 갔을 때 영지주의자 세린도를 만났습니다. 요한은 그를 보자마자 목욕탕에서 뛰쳐나오면서 외쳤습니다.
“모두 도망치십시오. 진리의 원수인 세린도가 목욕탕에 들어왔으니 목욕탕이 더러워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 목욕탕에 임할 수 있으니 신속하게 피하십시오.” 
이처럼 요한은 이단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완성합니다. 그는 도미티안 황제에 의하여 밧모 섬으로 추방되어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성경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보면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말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라”고 합니다(계 2:2). “니골라 당을 경계하라”고 하였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지만 실상은 사탄의 회당인 자들”을 분별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성도들을 세상과 짝하게 만드는 “발람의 교훈”과 성도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며 악령들과 접하게 하는 “자칭 선지자 여자 이세벨”을 멀리하라고 심각하게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이단자, 또는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 대해 가장 예민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요한은 복음의 능력으로 흠 없는 성품을 소유한 사랑의 사도였지만 그 사랑은 진리에 서서 거짓을 분별하는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할 수록 거짓에 대한 분개가 더욱 깊어간 것입니다.

이에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때 요한에게 적그리스도는 이단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2장 18-23절을 보면, 안티크리스토스 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정관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인물을 가리키지 않고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자, 대적하는 자, 왜곡하는 무리들을 의미합니다. 물론 계시록은 마지막 적그리스도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적그리스도와 요한이 서신서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를 따로 취급하여야 합니다. 한편, 마지막 적그리스도는 ‘작은 뿔’, ‘멸망의 자식’, ‘짐승’, ‘불법의 사람’, ‘악한 자’ 등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단 7:8-20; 살후 2:3; 계 13:5-6; 살후 2:9).

그러면 사도 요한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2장 18-19절을 보겠습니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8-19).

요한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이미 요한의 때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우리는‘마지막 때’인 줄 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때’는 언제를 말합니까? 이미 사도 요한 때부터 마지막 때로 보는 것은 본문을 통해 분명합니다. 감사한 것은 ‘마지막 때’, 즉 “에스카테이 오라”는 히브리서 1장 1절에서 나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구절로부터 “이 모든 날 마지막”은 예수님과 관련한 시대로서 그리스도의 강림 때부터 시작한 시기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마지막 때’는 ‘마지막 날들’, ‘마지막 세대’라고 보면 됩니다. 성경은 역사의 끝을 이 세상의 ‘끝’이라는 특이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마지막 때’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이 온 세상에 역사하시는 때를 의미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반면 세상 끝에 대해서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5, 29-31)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대해서는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6-17)고 증거하면서 성령 강림이 말세의 시작인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말세 즉, ‘마지막 시대’에 계속 등장하였으며, 불법의 사람, 또는 짐승으로 불리는 마지막 적그리스도는 역사 끝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사도 요한은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라고 증언합니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정의하는 적그리스도는 일차적으로는 이단과 관련되어있고 간접적으로는 세상의 힘으로 복음을 막는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세상의 것으로 인간들을 부추겨 이단으로 이끄는 모양새를 지닙니다. 이러한 면에서 적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짓 선지자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마24:11).

한편, 성령님은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라고 정의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딤전 4:1).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2장 19절을 보면 적그리스도가 어디서 나오는지 출처를 알려줍니다. 그의 출처는 놀랍게도 참교회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적그리스도는 참된 기독교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국 기독교는 아닙니다. 현재 이단으로 판명된 조직들은 한결같이 기독교에서 나와 기독교에 속하지 않습니다. 제자들 중에 가롯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에 속하여 있었지만 결국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을 드러낸 것처럼, 이단 역시 참 교회와 관련된 듯 하지만 그 끝을 보면 참 교회에 속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들이 적그리스도와 그 무리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은 자기에게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그들의 정체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8:44-45).

예수님 이후의 교회 역사를 볼 때 가장 큰 이단, 또는 적그리스도는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카톨릭 교회입니다. 그들은 복음에서 벗어나 복음의 원수가 되어 이단의 교훈을 가르치며 나아가 복음을 저해하는 세력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타 많은 이단들이 전부 마귀로부터 나오는 적그리스도들입니다.

요한일서 2장 26절을 보면 요한일서가 기록된 목적이 나옵니다.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즉, 미혹하는 자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랑의 서신인 요한일서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서신은 진리를 아는 자를 위한 서신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요일 2:21).

사랑하는 여러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20절에서 참 성도가 진리를 아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거룩하신 자’가 누구입니까? 성경은 ‘거룩하신 자’라는 표현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마치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로는 그리스도께 주로 사용합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 2:27).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신 후 부활 승천하신 다음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시는 자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보내십니다. 요한 사도의 표현으로 하면 ‘기름을 부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아는 이유는 성령을 받음 때문이요 성령을 받음은 ‘거룩하신 자’가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진리를 알아 거짓을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이나 능력으로 거짓을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으셔야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사랑의 사도 요한은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부으시는 영으로써 ‘진리의 영’이라고 증언합니다. 그 영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진리의 영은 무엇을 증언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대단히 중요한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마다 진리를 압니다. 따라서 거짓을 미워합니다. 그런데 진리를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신 영으로서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아보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와 역사 가운데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거짓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입니다. 거짓 그리스도 또는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거짓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사도입니다. 거짓 선생, 거짓 목사들입니다.

이에 요한이 말합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2-24).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은 성경 전체로서 복음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놓치지 않고 붙들면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적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현상적으로는 탐심에 이끌려 거짓말하는 자, 정욕을 위해 진리를 거부하는 자, 미혹의 영인 귀신과 접신하여 있는 자, 양심이 화인 맞은 자, 마귀의 자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그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하거나 감하여 전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고 방해하거나 아예 이단의 교주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자들이 적그리스도입니다.

최근 신천지의 이만희 같은 사람은 요한일서의 표현으로 적그리스도라고 불러도 정확합니다. 또는 교황 및 카톨릭 시스템을 적그리스도와 그 무리들로 보아도 정확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 당시 영지주의를 적그리스도라고 보았습니다. 물론 에비온파도 적그리스도에 속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만 보던지 또는 신으로만 보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자 사람이라고 증언합니다. 영어로는 GOD-MAN 이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 당시 유대인 계통의 에비온파는 예수님의 신성을 정면으로 부인하였습니다. 반면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노시스, 즉 영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정면으로 부인하였습니다. 그노시스파는 ‘그노시스’ 즉, 영적인 ‘지식’을 깨달으면 인간의 육체를 초월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영지주의는 플라톤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은 신학으로써 인간의 선한 영혼이 죄악으로 물든 육체에 갇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반면 보이는 육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그노시스 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부정하였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2절에서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고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요한일서 4장에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고 경고합니다. 지금 시대는 선지자와 목사와 교사와 선교사를 의심해야 하는 때입니다. 아무나 믿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그들의 가르침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서 분별하다는 말은 성경과 성령으로 확인해 보라는 뜻입니다.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계는 구약에서도 대단히 심각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친히 거짓 선지자와 이단에 대해 심각하게 경계하셨고, 베드로, 바울, 요한 등도 대단히 노골적으로 이단을 경계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거짓 선지자에게 속으면 영생을 잃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영생의 참된 역사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속으면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어도 스스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리를 수호하며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그대로 지키며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대로 믿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수와의 싸움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진리를 고수하며 진리를 전파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즉, 우리의 싸움은 진리의 영에 속하여 거짓의 영 및 미혹의 영과의 싸움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진리의 영인 성령과 미혹과 거짓의 영인 마귀들과의 싸움이 ‘마지막 때’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으로 이로써 아느니라.”

어떻게 미혹의 영을 압니까? 성경에서 벗어나 성경을 왜곡하고, 복음을 왜곡하여 결국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적그리스도의 영으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로 보건대 아무리 사람들을 많이 모아 놓고 소위 세상적으로 목회에 성공해도 진리를 놓치면 그는 적그리스도의 영으로 목회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거짓 선지자는 사도 요한의 때부터 역사 끝날까지 계속 역사 가운데 쉬지 않고 올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님께서 초림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거짓의 영으로, 속이는 영으로, 이단의 영으로 진리를 가리며 복음을 가리고 있습니다. 특히 무엇으로 속입니까? 사도요한은 적그리스도의 영은 사람들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바라게 하여 우상을 마음 속에 품게 함으로 거짓을 믿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이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활동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 속아넘어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9-12).

따라서 거짓에게 속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 선포를 근거로 하여 요한일서 5장 19-21절을 읽어봅시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우상이 없어야 진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우상을 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신속하게 버리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진리의 영으로 살 수 없고 어느새 미혹의 영에게 속게 될 것입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요한이서에서 외칩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 1:8-9).

복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즉, 복음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자는 말로는 믿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아들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복음이 가장 중요하게 외치는 실제적인 교훈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사랑하고 그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까?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가치관과 삶의 습관이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여러분은 진리의 영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거짓의 영을 따를 것인지 은연 중에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면 우리 마음 속에는 우상이 있는 것이고, 우상이 있다면 반드시 미혹의 영에게 속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사도요한의 때보다 더 많은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미혹의 영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까?

첫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리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기도와 함께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공동체적으로 함께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에 빠지면 미혹의 영을 넉넉히 이깁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둘째는, 미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내세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의 영에게 속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4:2-3).

마지막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마음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하면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서 헛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온통 우리의 왕이시며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진노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올림픽과 같은 큰 이벤트들이 있고 여러 잔치와 행사들로 바쁘고, 또한 매우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그럴싸한 관심 거리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의 마음과 관심은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자나깨나 짧은 인생 온통 주 예수님께 내 마음과 삶이 다 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사도 요한의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참된 복음을 통해 영생의 풍성함을 누리도록 거짓과 이단과 적그리스도에게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예배를 통해 여러분 모두가 영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와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