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요한복음 17:1-26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적인 중보기도를 하신 것을 기록한 장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을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1절-8절까지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이며, 9절-19절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며, 마지막으로 20절-26절은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될 우리와 같은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을 이세상에 남기고 떠나신 뒤에 남은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방법을 기도를 통해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 기도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 달라는 것이며(15절), 둘째는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는 것이며(17절) 셋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하나게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1) 제자들이 이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 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듯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주님의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달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악에 빠지는 이유는 시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의 하와처럼 우리가 마귀의 시험(유혹)에 걸려드는 순간, 악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불순종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이기 때문에 세상은 결코 선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는 악한 세상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달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죄가 없었던 에덴동산에서도 하와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는데, 하물며 죄가 관영한 이 세상에서 악에 빠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을 사랑하면 안됩니다. 세상의 것들에 빠지게 되면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문 16절에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와 악을 많은 이들이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를 식물로 설명하자면, 죄는 식물의 뿌리를 말하며 악은 그 뿌리를 통해 나온 열매를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이 죄이며, 악은 죄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고 열이 나는 증세를 보입니다. 이처럼 그런 증상을 보이게 한 근본 원인인 감기가 죄에 해당하며, 죄 때문에 나오는 콧물이나 열이나 기침이 악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근본 원인인 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은 우리의 눈에 보입니다. 즉 분노, 거짓말, 욕, 질투, 용서하지 못함, 살인, 음행, 이간질, 교만 등은 죄 때문에 나오는 악입니다. 본질적인 죄나 선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죄로 인해 맺히는 육체의 열매나 선으로 인해 맺히는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눈에 보이므로 그 열매로 그를 선인과 악인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악을 행하거나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근본 문제인 (원)죄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죄가 우리 가운데에 있으면 악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속에서 피어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는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원죄가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주여, 주여"하면서 그 말씀이 자신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착각하며 죄속에서 너무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도록 죄를 지적해주면 권면해준 이를 미워하며 "정죄하지 말라"고 너무나도 뻔뻔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원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입니다. 원죄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 중직을 맡아서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주여, 주여"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도 잘 하고, 구제와 봉사도 잘 하여 외관상으로는 구원받은 것 같아도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고아원에 들어온 아이들이 원장에게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원장이 그 아이들을 자신의 호적에 자녀로 등록하지 않는한 결코 원장의 친 자녀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길 원한다면,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장사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원죄가 해결되지 않는한, 아무리 매일 짓는 자범죄를 회개하고 뉘우친다고 할지라도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래서 돼지가 씻었다가 진흙탕에 도로 눕는 것과 개가 토한 것을 먹는 것처럼 자꾸만 지은 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다윗처럼 회개한 죄를 다시 짓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구분하기 가장 쉬운 것이 "형제를 용서하지 못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용서를 받은 자들입니다. 즉 그들이 삶 속에서 그들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용납하고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원수는 둘째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의 자범죄를 백날 회개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고아원에 들어와 있다가 장성하면 자기의 갈 길을 가야할 뿐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16:14-15)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3-35)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요일 4:20)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 6:46)

그래서 우리는 먼저 원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원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 즉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쥐고 버리지 못하거나 자기 자아가 죽지 않아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기도문도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원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하루종일 눈을 감고 기도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우리가 주님 안에, 그리고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순간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사에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므로 악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설사 믿음이 연약해서 또는 실수로 넘어졌을지라도 기도하는 순간에 주께서 깨닫게 해주시므로 빨리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실수로 악을 행했을지라도 회개함으로 악에 빠지지 않고 오뚜기처럼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 62:6-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위하여 쉬지 못하시도록 하나님의 자녀들은 쉬지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악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2)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빠진 것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은 '세상과 구별된 것'으로 '세상에는 없는 유일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거룩이라는 성품이 원죄를 갖고 태어난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는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룩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원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진리이며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이름으로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 5:43)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따라서 우리는 매순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내면에 깊고 높게 건축한 세상의 견고한 진을 부셔야만 합니다. 매일 성경말씀을 거울처럼 들여다 보면서, 우리 자신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원죄가 해결된 그리스도인은 가짜 제자와 참 제자의 삶을 구별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세상에서 죽고싶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 왔을 때에 가짜 제자들은 자기의 방법으로 살 궁리를 연구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에 가룟유다처럼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참 제자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이세상에서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훈련소이기 때문에 정말로 제가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제가 영원히 살고싶은 곳이 아닙니다. 역시 제가 가고싶은 곳은 천국입니다"라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자신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그러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삶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이렇게 거룩한 것과 진주를 찢어서 상하게 하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리더들이었는데,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로 주장을 하며 예수님께서 하신 성경말씀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자를 향해 망령된 주장이며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것을 본 이들은 정말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면 XX신이라며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말을 거침없이 했습니다.

이런 이들은 거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었는데,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책망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러한 자들이 목사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악에서 구원해주시고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하신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경건치 않고 거룩함도 전혀 없는 교회의 악한 지도자들 때문에 예수님의 참 제자들이 핍박을 당하며 욕을 먹을찌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전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3) 삼위 하나님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도록 해달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우선 함께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3위일체를 생각할 때에도 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한자로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체(體)'가 '몸'이라는 뜻이라서 '한 몸'으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즉 성부·성자·성령님이 하나라는 말을 세 분이 한 몸을 갖고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면 안됩니다.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지만 하나라는 뜻이지 한 몸이 아닙니다.  '하나'라는 것은 같은 마음과 같은 목적과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을 갖고 함께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합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한 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삼위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가 되셨습니까? 그분들은 서로 겸손히 복종하는 자세로 하나가 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6-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는 핵심(key point)입니다.

또한 3위 하나님은 서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아가페 사랑을 하십니다. 그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관계를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그 사랑을 할 때에 우리도 삼위 하나님처럼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쌍동이라도 완전히 똑같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서로 다르게 생겼고, 취향도 다르며, 기질이나 성격도 다르고 자란 환경도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까요?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에 소프라노, 앨토, 테너, 베이스의 서로 다른 파트가 있고, 또 한 파트 안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갖고있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난 뒤에는 아름다운 찬양이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라는 말입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각 파트는 다른 파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내 소리가 튀어나지 않도록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목소리를 돋보이기 위해 혼자 크게 부른다면 그 노래는 조화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찬양대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소리를 죽여야만 합니다. 모두들 자기를 드러내기 원한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를 이 기도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떤 제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지도 이 기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이 내용대로 살고있는지 반드시 매일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로 악의 유혹에 자주 넘어지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만약 자주 넘어지고 있다면, 그 넘어지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뢰해야 합니다.

둘째로 진리인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면서 거룩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성경말씀에 있는 경건의 훈련을 쌓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적인 일에 몰두해있는지 내 생활을 점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안에서 부부가 한몸이 되었는지 그리고 교회인 성도들과 하나가 되어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부라고 하면서 각방을 쓰거나 서로 간섭하지 않고 따로국밥처럼 살거나 예수님처럼 교회를 위해 죽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아서 서로 지배하려고 자주 다투며 사는 부부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의 제자인 것처럼 교회에 가서는 경건한 척 합니다. 교인들과는 한 교회를 다니므로 하나가 된 것 같은데, 주안에서가 아니라 같은 취미로, 또는 같은 일 때문에, (예수가 빠진 상태에서) 같은 목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주님의 말씀으로만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깊이 이 문제를 묵상하는 가운데, 그 동안 나 자신이 정말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참 제자의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면, 그 모든 것을 갖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속히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시고 진정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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