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독교계에 핫이슈가 "드럼"이다. 드러머의 소리를 직접 들어본다.

< 약력 >

• 1980년생. 네덜란드 Utrecht Conservatorium 학사, 석사 졸업

• 2006 서울재즈아카데미 20기 드럼과 최우수학생수료

• 2013 조남혁쿼텟 1집[Belong To You]

• 2015 재즈포지저스 1집(Jazz for Jesus)[Music or Worship]

• 2017 조남혁쿼텟2집[About Happiness]

문 : 반갑습니다. 조남혁 씨.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질문 1. 드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산본에 있는 작은 교회에 중학교 2학년 때 쯤 드럼을 치는 후배를 보고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나도 할 수 있겠다" 라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어깨너머로 계속 치다 보니 실력이 늘었고, 군악대에 지원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20살 때쯤에 드럼 레슨을 받았습니다. 원래 대학은 호텔조리학을 전공했는데, 나중에 음악을 전공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음악을 하면서 요리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요, 그게 현실적이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음악도 요리도 힘들다고 생각이 됐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선택했죠.

문 2. 드럼 치는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전혀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 드럼 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웃으면서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좀 아는 사람이 드럼 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상당히 무례한 표현입니다. (웃음) 드럼 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뮤지션이죠. 그리고 음악인이죠. 나아가 예배자입니다.

질문 3. 네덜란드로 학사, 석사 6년이나 유학 생활을 하셨는데요, 어떻게 유학을 가게 됐는지?

제가 드럼을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재즈 아카데미라는 곳에 등록을 했고요, 그리고 29살 쯤에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시험을 볼 때, 합격 통지서를 받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음악을, 그리고 드럼을 전문적인 대학에 가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러나 유학을 가서 보니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합격만 하면 계속 다닐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1년마다 심사를 해서 기준에 미달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학 생활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침부터 새벽까지 매일같이 연습에 몰입했습니다.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고 드럼을 연습했죠. 드럼만 잘 쳐서는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습니다. 음악 이론도 공부해야 하고, 음악의 기초인 피아노도 매일 같이 피나게 노력해야 했죠. 네덜란드는 학연이나 지연 같은 문화가 아니라, 철저히 개인 능력 위주로 평가 받는 사회이니까요. 석사 학위를 받고 부친이 뇌출혈로 아프시기도 했고요, 또 한국에 대한 향수도 있어서 석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죠.

질문 4. 네덜란드에서 3평 쯤 되는 공간에서 신혼생활을 하셨다면서요. 그 느낌은 어떻습니까?

잠깐이지만 아주 넓은 곳에서도 살아봤죠. 그러나 너무 추웠습니다. 월세도 너무 비쌌고요. 그래서 매일 먹을 수 있는 게 수제비 뿐이었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3평짜리 되는 곳으로 이사를 했죠. 그곳에 부엌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침대도 있었죠. 공간은 좁아졌지만 삶은 윤택해졌습니다. 공간이 너무 적으니까 물욕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더라고요. 채울 수도, 채울 것도 없으니까요.

문 5. 유럽 서구 문화에서 배울 만한 문화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네덜란드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독립성입니다. 20살만 되면 어느 누구라도 모두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사실 부모와 자녀라는 개념도 없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스스로 살아야 하는 문화인 거죠. 겉치레 같은 것도 없습니다. 술 절대로 강요하지도 않고요, 스스로 노력해서 스스로 서야 하는 나라였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로는 정직성입니다. 내가 정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말을 할 때, 그것에 오해가 없습니다. 그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죠. 그 말과 행동에 거짓이 없을 거라고 믿는 것이죠. 자기 자신도 거짓이 없으니까 당연히 상대방도 거짓이 없다고 믿는 문화였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상당히 많은 배려를 합니다. 내가 배려를 받기 위해서 남을 더 잘 배려하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존중과 정직, 배려라는 단어를 그곳에서는 일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질문 6. 음악평론가 최규용 씨가 말하기를, “뮤지션 조남혁 씨는 슬픔이라는 주제로 작곡을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슬프지 않다. 오히려 흥이 난다” 라고 평론을 했는데요, 실제로 본인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입니까?

아니요. 저는 그냥 저일 뿐입니다. 저는 낙관적이거나 혹은 비관적으로 어떤 작곡을 하지 않았습니다. 느껴지는 그대로 작곡을 했을 뿐이죠. 다만, 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낙관적으로 듣거나 비관적으로 들은 것이죠. 똑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듣는 사람이 아주 중요합니다.

질문 7. 상당히 많은 곡들을 작곡하셨는데요, 곡을 작곡하실 때마다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요?

제가 작곡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음악을 통해 세상에 저의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음악인 것이죠. 1집 주제 Belong to you (이것은 너에게 속해 있다) 는 이 곡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과, 이것이 너의 얘기도 될 수 있다는 중의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2집 About the Happiness (행복에 관하여) 에서는 딸 아이 예나를 가졌는데 너무나 행복한데, 한편으로는 너무나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 음악을 통해 표현한 것이죠. 저는 음악이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8. 조남혁 쿼텟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냈는데요, 이게 무슨 뜻인가요?

듀오는 2명, 트리오는 3명, 쿼텟은 4명이 합주할 때 붙이는 이름입니다. 4명이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조남혁 쿼텟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냈죠. 곡은 선물과 같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곡이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일주일 내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도 한 곡도 못 쓸 때가 많아요. 그러나 어느 순간 하나님이 주신 영감이 생기면, 그 때는 너무나 쉽게 곡이 써집니다. 이번 음반에 실린 곡들도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질문 9. 음악은 좀 타고나야 되나요?

누구나 음악은 할 수 있지만, 잘 하는 것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발견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럼을 좋아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저의 의지와 노력이지만, 그 드럼을 잘하게 되는 것은 선물이죠.

질문 10. 재즈음악을 연주하시죠? 재즈란 무엇일까요?

재즈는 소울(영혼)입니다. 우리나라 창처럼, 흑인들의 블루스처럼, 그 안에 서러움 같은 것이 담겨 있죠. 슬픔을 승화시키기 위한 것들입니다. 근원에서 토해내는 고백 같은 것이에요. 형식이 있으나 그 형식 안에 무한한 자유로움이 있는 것이 재즈라고 할 수 있죠. 저는 하나님이 가장 재즈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재즈에서 누리는 자유는 진리 안에 있는 무한한 자유와 같습니다.

질문 11. 음악을 하기 전에 어떤 일에 매진했나요?

공부였죠. 공부를 잘하는 사람,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공부를 잘한 편이었는데요, 그러나 참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억압이고 스트레스였어요. 모든 학생들이 미분, 적분을 잘 풀어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그것을 풀면서 행복한 사람은 그것을 풀어야 하지만, 드럼이 좋은 사람은 드럼을 쳐도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도 획일화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질문 12.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없으세요?

좋아하면서 잘 하는 그것에 덤비세요. 좋아하는 것을 정말 잘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지 먼저 분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판단이 되면, 대충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하죠.

질문 13. 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십니까?

한국교회음악원에 출강을 하고 있고요, 얼마 전까지는 서울예원실용전문대학교에서 앙상블 지도도 했었죠. 그 외 개인레슨과 공연을 합니다. 스케쥴이 없는 날에는 계속 연습을 합니다. 제 삶이 어쩌면 상당히 재즈적인 것 같아요. 생활인으로서는 직장을 다녀야 하지만 그러면 음악을 할 수가 없고, 음악을 하면 삶은 좀 고달픕니다. 저도 뮤지션의 삶 한가운데 있죠.

질문 14. 앞으로 계획은요?

이번년도 2월 초쯤에 발행할 음반에 매진하고 있어요. 이 음반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재즈를 선택한 이유는요, 천편일률적인 음악을 벗어나서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제 음악을 통해 깊은 하나님의 자유가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M's 수첩

뮤지션(드러머) 조남혁을 만나보니 예의 바르고 순하기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어떤 고집스러운 혁명가적인 기질도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나다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진득함 같은 고집이었다. 물질과 경쟁에 찌들어있는 이 땅에서 자기다움의 삶은 고집한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그 선물, 그 달란트를 꽃피우기 위해 고뇌하며 끊임없이 돌진하는 버팔로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분명히 그의 말이 들렸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말했다. 자신은 드러머도 아니고, 음악가도 아니고, 작곡가도 아니고 예배자를 꿈꾼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는 그의 삶의 목표가 꺾이지 않기를 기도했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은 상당히 고단한 일이다. 최고의 교육을 받고도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길을 순례자처럼 가야 하는 삶이 예술가의 삶이다.

그동안 내가 들은 드럼 소리 중에 최고의 소리를 냈던 뮤지션 조남혁. 그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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