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새로운 삶

   

음주공화국 -박우관 목사

   나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양평으로 이주했다. 비록 태(胎)를 묻은 곳은 용두동이지만, ‘고향’ 하면 언제나 ‘양평’이 떠오르는 건 내 어린 날의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은 슬하에 5남 2녀를 두셨으나, 끝까지 살아남은 건 넷째인 나를 포함한 3남 1녀였다. 내 위의 둘째 형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고, 내 바로 밑 남동생과 여동생도 영양실조로 어린나이에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말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배곯고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용두동 시절에 이미 모든 것을 탕진하셨고, 고향인 양평으로 돌아와 화전(火田)을 일궈 생활을 이어 나가셨다. 그때 내 밑으로 젖먹이 동생들이 있었다. 일은 지독히 고되고 먹을 것마저 없으니 어머니 젖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먹일 것이 없어서 젖먹이 동생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남동생 우열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달걀 몇 개를 쥐어 주며 가게에 가서 설탕으로 바꾸어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가게는 집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게에 가서 설탕을 바꾸는 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설탕을 들고 오는 길이 문제였다. 그 눈처럼 하얗고 달콤한 설탕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자꾸만 입에 침이 고였다. 혹시나 설탕 알갱이가 한두 개 묻어 있지않을까 봉지에 혀를 대 보았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설탕 봉지 귀퉁이를 조금 뜯고 말았다.

   조금만 맛볼 요량으로 혀끝에 살짝살짝 댔다고만 생각했는데 집 앞에 도착해 정신을 차려 보니 설탕 한 봉지가 거의 비어 있었다. 어머니한테 혼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뜩했다. 내 딴에는 머리를 굴린답시고 빈봉지에 물을 타가지고 들어갔으니, 그걸 본 어머니가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 그날 어머니한테 얼마나 혼이 났던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내 동생 우열이는 그 후 며칠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날 내가 설탕을 먹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 나이 고작 여덟 살! 철없는 시절이건만, 그 날의 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아픔이되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흐르는 눈물 속에 떠오르는 그 시절 내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은 내마음 깊은 곳에 아릿한 슬픔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으레 소리를 지르시고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다. 아버지는 어릴 때 친구와 간지럼 놀이를 하다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평생 딸꾹질 소리를 하셨는데, 술만 마시면 그 소리가 더욱 커서 어린 나를 두렵게 하곤 했다. 늘 술에 취해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아버지 때문에 내 위의 형과 나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성장했다. 결국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쉰 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내가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중학생이 된 뒤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나는 이웃집 형을 따라 교회를 다니다 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웃집 형은 당시 교회에 나오는 어느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늘 나에게 연애편지를 전해 주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 심부름의 대가가 바로 포도주였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그 형은 마을회관에서 포도주를 사서 내게 마셔 보라고 권하곤 했다. 달착지근하면서도 짜릿한 맛이 어린 나의 기분을 참 좋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어른들이 장난으로 권하는 술을 입에 댄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에 술잔을 입에 댔다가도 혀끝에 닿는 알코올의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곤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술에 대한 반응이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처음 접하는 술임에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고, 마신 뒤에 붕 뜬 듯한 기분이 좋기만 했다. 이렇게 시작한 술이 내 인생을 얼마나 망가뜨릴지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음주공화국 pp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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