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스더 목사, 뉴욕퀸즈교회 담임, 본헤럴드 미국지사장
에베소서 1:15-16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이를 인하여"라는 말은 사도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방식으로 앞에서 언급한 내용 즉 "에베소 교인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행위를 듣고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믿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1) 주 예수 안에서 믿음의 행위가 있는 교회

   에베소교회는 요한계시록의 7교회 중 첫번째로 기록된 그 에베소교회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3).

믿음은 인간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것이지만, 행위는 그 내면의 것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밖으로 표현되어지는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떠한지 즉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떤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담에도 "옷차림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또는 "그 남자를 알고싶으면 그 아내의 옷차림을 보라"라는 말이 있듯이 겉으로 표현된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아내가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그 남편은 그런 류의 남자이고, 아내가 정숙하게 입고 다니면 남편도 그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요즘은 자기 개성이 강해서 남편과 상관없이 아내들이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경우가 많지만)

주님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위  works"는 "믿음"을 나타내고, "수고  labour"는 "봉사와 섬김과 희생" 즉 "사랑"을, 그리고 "인내 patience"는 "소망"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믿음 faith과 소망 hope과 사랑 charity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한 일도 그냥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 용서해준다"라는, 말도 안 되는 가짜 메세지를 통해 사람들은 "가짜 사랑"에 눈이 멀어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악한 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용납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랑과 공의에 대한 뚜렷한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당시에는 니골라당이라는 이단이 있었는데,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분별력이 뛰어난 교회여서 자칭 사도라고 하는 이들을 시험하여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 2:6)

오늘날도 교회 안에 들어와있는 이단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추수꾼(harvest workers)"이라는 이름으로 각 교회에 들어와서 교인들을 추수해가는 신천지 이단을 비롯하여, 건강이면 사죽을 못쓰는 사람들, 젊어진다면 자기의 소변까지 받아먹는 사람들로 인해 건강제품이나 미용품으로 각 교인들의 가정을 침투하고 있는 이단 제품들... 아무리 이단 제품이라고 해도 품질만 좋으면 아무 상관하지 않고 사용하는 몰지각한 교인들... 
 
우리가 그 제품들을 산다는 것은 그들에게 헌금하는 것과 같은 행위임을 그들이 모르는 척 신경쓰지 않는 이유는, 영적인 지각이 둔해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닫히고 귀가 닫히고 마음이 닫혀있어서 아무리 말해주어도 듣기 싫어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또한 "우상의 제물"을 성경은 분명히 먹지말라고 금하고 있는데도,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므로 먹어도 된다고 가르치는 날나리 가짜 선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므로 구원받은 자는 어떠한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라는 성경에도 없는 가짜 복음을 전하는 사이비들이 오늘날에는 너무나 만연되어 있어서, 진짜가 가짜같고 가짜가 진짜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목매어 죽인 것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 하였느니라 하니"(행 21:25)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 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 2:20)
 
얼마전에는 기독교 언론에 있는 어느 목사가 카톡에 자신의 사진 대신에 '전시안'(제3의 눈, 사탄 상징)을 올려놓아서 너무 눈에 거슬리므로 다른 것으로 바꾸라고 하니까 대뜸 한다는 말이 그 동안 제가 보내준 성경말씀을 "쓸데없고 허접한 것"이라며 보내지말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짜 목사, 가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드러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론사에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 지각(통찰력)이 없는 자들은 이런 가짜들의 말들이 그럴듯해서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기 때문에(자기들 마음에 들기 때문에)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교회와 목사를 찾아 다닙니다. 그들은 참 신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우상 하나님을 음란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거룩"이라는 말이 들어올 수가 없고, 하나님의 공의라는 말은 더더욱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2) 주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갖고 사랑을 부지런히 실천한 교회

에베소교회는 부지런한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의 리더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리더의 첫째 조건은 "부지런함"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리더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사람을 다스리지만, 게으르면 게으른 만큼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같은 시간에 TV나 인터넷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과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 중에 누가 누구를 가르치며 다스리겠습니까?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8)
 
우리는 세상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라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겠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매우 부지런합니다. 안일하고 게으르게 살아가는 이들은 항상 누군가로부터 정복당하고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다스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함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되 게을리 하지 말고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려면 우리 스스로가 부지런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읽고 묵상 하는 일에 부지런해야만 자녀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칠 수 있는 것이지,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고 연구 하지도 않으면서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 12:24, 27) 
 
"...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8, 11)

매사에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은 항상 바쁘고 활기차게 삶을 살아가지만, 자기의 몸을 아끼고 생각부터가 게으른 사람은 계속해서 할 일이 줄어들고 결국 삶이 지루해지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 함이니라"(잠 21:25).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잠 26:13-15)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는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린 것" 외에 주님으로부터 믿음의 행위에 대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사실 계시록이 쓰여진 시대보다 에베소서는 훨씬 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바울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사랑도 충만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전도 여행때 세운 교회이며, 그가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3년간 목회를 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에베소 교회 역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며 자신의 가산을 팔아서 함께 공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인 이단이 나타나자 그들을 가려내기 위해 서로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던 이들이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니골라 당과 거짓 교사들을 색출해내느라 여념이 없었던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 순수하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던 그 사랑은 없어지고, 형제를 의심하며 경계하다보니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분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신천지 등 이단들이 교회에 스며들어와 있다는 사실만 알뿐, 누가 이단에 속한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기들과 다른 언행을 하면 "혹시?" 하며 의심해보는 것이 습관화 되었습니다. 현재 여러분도 에베소교회처럼 이단들이나 사이비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싸우느라 사랑은 메마르고 심령이 강퍅해져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날 이단과 사이비가 성행하는 이 때에, 우리가 분명한 분별력을 갖고 살아간다면 다행이지만, 이단의 말에 넘어가 그들에게 미혹되어 오히려 성경대로 살고있는 이들을 경계하며 살아간다면 예수께서촛대를 옮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예수께서 그 교회를 떠나신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들끼리 예배를 드리고 선교도 가고 아무리 종교행위를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껍질뿐인 종교단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가 현재 폐허가 된 것같이 우리의 교회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들의 형제 사랑과 이웃 사랑의 행위를 들으며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나 기독교 단체를 만들었을 때,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며 섬겨주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식어지고 또 서로 경쟁의식과 질투심이 생겨서 당을 짓고 서로 비판하고 경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주님이 없는 종교집단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주님 안에서 형제애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오늘 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에베소 교회를 통해 많은 교훈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택함을 입어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성령의 인치심으로 천국백성이 되었기에 그 은혜에 감격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들의 사랑이 변색되어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혹시 그렇지 않은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가족과 이웃을 주셨는데, 저는 사랑하기 보다는 오히려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적이 더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사랑했던 배우자나 부모 자녀 형제들과 성도들 역시 세월이 지날수록 그들의 잘못이 더욱 눈에 두드러져서 사랑하며 섬겨주기 보다는 비난하며 용서하지 못한채 살아왔습니다. 용서하기가 싫어서 그들과 멀리 하였고, 섬겨주는 것이 싫어서 아예 관계를 끊고 살기도 했습니다. 
 
리더로 군림하기만을 좋아하고, 아랫사람을 인정하지 않기에 격려해주지도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저보다 탁월하여 자리를 빼앗을까봐 늘 염려하며 불안하여 잠도 제대로 못자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에베소 교회가 폐허가 된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이기주의적인 모든 사고방식을 주님의 말씀 앞에 성령의 검으로 수술을 받아 새롭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태어나기를 원하오니 저를 고쳐주옵소서.
 
에베소 교회가 칭찬을 받았던 것처럼 저도 항상 부지런하여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기에 부족함 없는 리더십을 갖추게 하여 주옵소서. 매사에 제 몸을 도사리느라 점점 할 일도 없어지는 삶이 아니라, 제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의 수고를 함으로 참된 리더의 자리에서 세상의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바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원하시는데 저는 조금만 희생하려고 하면 왠지 귀찮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와서 또다시 주저앉곤 했습니다. 마귀는 저에게 자꾸만 이런 저런 핑계 거리를 제공해 주면서 주저앉게 하였고, 저는 그 유혹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여 게으름의 종노릇을 해왔습니다. 일단 저 스스로가 피곤해서 어쩔줄을 모르겠는데, 어떻게 남을 섬기겠냐는 정말 그럴듯한 말에 너무나 잘도 속아 넘어갔습니다.

주께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저희의 삶 속에서 실천하기를 원하시는데, 저희는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주님의 자녀답게 제 내면에 있는 믿음을 밖으로 표현하며, 제 속에 있는 아가페 사랑을 가족과 이웃에게 실천하며 천국의 소망을 갖고 인내하며 희생하며 섬기도록 저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충만히 주시고 저를 온전히 주관하여 주옵소서. 

오늘부터는 다른 이들이 저를 생각할 때마다 저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로 인하여 감사가 넘쳐서 저를 위해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저 또한 믿음과 사랑의 온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 감사하며 기도해 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제 인생에서 결코 주께서 촛대를 옮기시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항상 저를 주관하여 주시고, 제 뜻대로 마옵시고 온전히 주님의 뜻대로만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용서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이 저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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