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구함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하옵소서"

김수경 목사, 미국지사장, 뉴욕퀸즈교회 담임


에베소서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 1장 17~19절까지는 사도바울의 에베소교회를 위한 기도문으로 오늘은 17절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 쓰인 "지혜와 계시의 정신"에서 "정신"은 헬라어로 '프뉴마(πνεῦμα)'라고 하는데 이것은 the Spirit(KJV, NIV) 또는 a spirit(NASB)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이것을 "성령"이라고 해석하고, 다른 신학자들은 프뉴마에 관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영" 즉 인간의 정신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신학자들은 성령에 의해 인간의 영에 주어진 "성령의 은사"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성령' 또는 '영', '귀신', '정신' 등으로 해석되었는데, 본문에 쓰인 '프뉴마'는 이 중에서 마지막 해석인 "성령의 은사"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봅니다.

(참고) '프뉴마(πνεῦμα)'가 쓰인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πνεῦμα)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πνεῦμα, the Holy Ghost)으로 된 것이라(마 1:18, 20)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πνεῦμα, the Spirit)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πνεῦμα, the Spirit)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1)
*심령(πνεῦμα, spirit)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πνεῦμα, the spirits (with His words))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마 8:16)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πνεῦμα, an (unclean) spirit)이 들렸다 함이러라(막 3:30)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πνεῦμα, a (dumb) spirit)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막 9:17)

"지혜"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계시"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하나님의 모든 비밀한 일을 알려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비밀과 같아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아도 알 수 없고,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항상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신학교를 나와서 목회를 할지라도 성령을 받지 않고 지식적으로만 알고 종교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지, 종교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크리스천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지만, 성령받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가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는 신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처럼 지식적으로는 잘 압니다. 하지만 실천적인 면에서는 실제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성령의 첫번째 열매인 무조건적인 사랑에서부터 실패합니다. 예수님처럼 조건없이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용서하는 그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하면 반드시 댓가를 원합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를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본문에 쓰인 "아는 것"(ἐπίγνωσις 에피그노시스)은 "~에, ~로"(ἐπί 에피)와 "안다"(γινώσκω 기노스코)라는 말의 합성어인 에피그노스코(ἐπιγινώσκω)의 여성명사형입니다. 즉 "안다"는 '기노스코'라는 말은 평범하게 아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precise and correct knowledge). 

이 용어가 마태복음 1:25에서는 "동침하다"라는 말로 쓰였습니다. 즉 남녀가 사귀면서 서로를 알게 되지만, 결혼을 해서 함께 동거하게 될 때에 상대방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또 그분과 동행함으로 삶의 체험을 통해 전 인격적으로 그분에 대해 확실하고 정확하게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남들은 모르지만 부부만이 한몸이 되어 상대방에 대해 온전히 아는 것처럼, 눈빛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안다"라는 말을 우리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만큼 성경에 대한 지식(이 지식은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비밀을 깨달아 아는 지식을 말함)이 충만하고, 신앙생활을 통해 그분에 대한 체험이 없다면 "하나님을 안다"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상호간에 아는 것이며 나 혼자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만 다니면 누구나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또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가 되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교만히 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세를 알지만, 모세가 우리를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그분이 원하시는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해야하며 그분이 미워하는 것이나 가증하게 여기는 언행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자녀이며 신부인 교회이기에 그분과 한몸이기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죽고 없기 때문에 그분의 형상이 우리의 생각과 언행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을 밥먹듯 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성도인 것처럼 큰소리로 떠들면서 전도의 걸림돌이 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복종한다고 하지만, 종의 신분이기에 주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하고, 매사에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성경을 깨닫지도 못하고 즉 계시의 정신인 예언의 은사도 없으면서 목사가 되고 신학교 교수가 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계시의 말씀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여 양떼들을 죽음의 계곡으로 이끌고 가는 삯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까불다가 마귀의 밥이 되어 어둠의 종노릇만 하다가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0-21)

어떤 이들은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왜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종의 신분을 갖고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유산은 자녀에게 상속되는 것이지 종에게 상속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충성된 종이라도 주인은 말썽만 일으키는 자녀와 바꾸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씨를 받아 대를 이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서 성령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처럼 설교를 하고 또 사람들이 모인 한복판에서 중요 직책을 맡아서 "주여, 주여"하며 큰 소리로 기도를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천국을 상속받을 자녀가 아니라 종으로 쓰임을 받다가 끝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에 그는 아들이 없으므로 자기의 종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종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후사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사오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창 15:2-4)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라고 할지라도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은 후사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자녀이면 후사가 되어야 하지만, 씨가 뿌려질 밭도 종요하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업을 물려받을 아들을 태어나게 할 여자인 교회는 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신부여야만 합니다. 하갈이 아닌 사라여야만 합니다.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육체적으로 살아있는 자가 아니라,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육체적으로 완전히 죽은 자여만 합니다. 

육적인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여 죽은 사람이 옥토밭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옥토밭에 뿌려진 씨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밭에 뿌려진 것은 유업을 받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 간판이 걸려있다고 모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녀가 아니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혜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깨달을 수 있는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깨달아 온전히 하나님을 알기를 기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회개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죄가 있을 때에는 영적인 눈이 가려져서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똑같이 여러 사람이 앉아서 말씀을 듣고 읽고 해도 쉽게 깨달아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무리 설명을 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느냐, 굳이 그런 것까지 꼭 지켜야 하느냐"라며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기가 군림해서 왕노릇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천국에 갈 수 없는 "교만한 마음"이며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성품이며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천국에 가려면 회개하라고 외치셨던 것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항상 살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6-10)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제일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 앞에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롬 1:21-22).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생활하지 않는 것, 또한 범사에 감사하지 않고 비판과 불평과 원망과 비난을 일삼는 것, 자기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자기의 뜻대로 말하고 행하는 것 등이 바로 교만하여서 회개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결국은 사형에 해당되며, 또한 그들의 열매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28-32)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으며, 그럴 때에 우리의 굳어있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온유한 성품이 나오며 다른 이들을 비방하거나 능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부모를 거역하지 않고 무정하거나 무자비하게 살지 않고 인자한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섬겨주며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5-26)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서 원죄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아담의 원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말라고 하신 것을 내 생각에는 괜찮아 보이고 오히려 더 지혜롭게 생각되기 때문에 하는 것, 하나님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선과 악을 판단하여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없이 우리의 생각이나 세상의 지식이 마음 중심에 와 있을 때에 우리는 누구나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으로부터 숨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 자신의 실체를 밝히 비춰주고 가르쳐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충만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매일 매순간 해야하는 기도입니다. 한 번 기도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말과 행동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모든 선한 것, 충성(믿음), 온유, 절제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습니까? 육체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밭입니까? 아직도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하갈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는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전적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사라입니까? 당신은 어떤 씨입니까? 이스마엘입니까, 이삭입니까? 당신은 종입니까, 아들입니까? 당신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성령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성령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오늘 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교회생활을 해오면서 그것이 신앙생활이었는지 종교생활이었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말씀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며 살아가야 할 텐데,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최고의 노력을 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것과는 달리, 하나님을 알기 위하고 성령충만함을 위해서는 별로 힘쓰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별로 힘쓰지 않은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또는 나이가 들어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그것이 어떻게 보면 종교생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들어왔던 것들로 인해 그저 그것이 몸에 배어있을 뿐, 온전히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 딴에는 알려고 한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세상의 것을 배우고 얻으려고 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저의 게으름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사오니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또한 제 뜻대로 살아가므로 예수님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희생하며 섬긴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처럼 비난하며 정죄하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있었습니다. 이렇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제 뜻대로 선악과를 따먹으며 살아온 죄인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사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주옵소서. 그래서 이제부터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아름답고 선한 주의 자녀답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제 굳어있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고 딱딱하고 교만한 마음이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되도록 저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성령을 근심하도록 하는 일이 없게 저를 도와주셔서, 성령충만함 속에서 온전히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온전히 주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 저의 모든 정욕을 못박아 죽이고 제 삶속에서 오직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기만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직접 깨닫게 해주셔서 "아멘, 아멘"하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통로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온전히 주에게 붙잡힌 바 되어 주께서 저의 삶을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저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하옵소서. 육체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처럼 순종의 삶을 살아가므로, 저 자신을 죽도록 제단에 올려드려도 주께서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것을 100퍼센트 믿고 바칠 수 있는 제가 되도록 성령의 은사를 충만히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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