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때는 지금 나에게 맡겨준 양들과 사역의 장이다

아내 김경자목사와 교회 북까페에서.  최원영목사 -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발행인,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본국제신학교학장, 본월드미션이사(재), 새길과 새일부이사장(사), 국제NGO글로벌비전(사)이사. 본국제기독대안학교이사장, 도서출판 본헤럴드대표, 저서: 주기도문연구, 제자세우기 40일영적순례, 충성된일꾼되어가기, 등.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와 시간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목회자들은 보내야하는가?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 사이의 간격을 온전한 순종과 온전한 헌신과 온전한 바라봄과 인내로 그 간격을 메꾸어가야 한다.

우리들은 늘 외친다. 하나님의 때는 언제입니까? 암울하고 힘들고 고난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 있는 시간들이 있다. 언제 그 고난과 암담한 현실이 끝날 것인가 어떤 조짐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인내의 시간으로 그 시간을 메꾸어 가야한다. 평상시처럼 온전한 순종과 헌신과 믿음과 비전과 성결함으로 삶의 순간들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영적리더의 일생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로 보내주셨다. 만물은 다 때라는 어느 시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전도서 기자의 말씀이 참으로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였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 3:1-8).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찾아온다. 오늘날 성도들이 너무도 급하다. 씨를 뿌리자마자 추수할 욕심을 부리고 있다. 씨를 뿌리는 시기에는 씨를 뿌리고, 식물이 자라고 성장하는 시기에는 적절하게 보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열매를 거둘 때 거두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며 영적인 법칙이요 원리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늘 말하고 살아오고 있다. 나는 개척자이기에 일생동안 씨만 뿌리다 갈 것이다. 씨를 뿌릴 수 있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큰 은혜이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고 꼭 내가 그 열매를 따서 기쁨을 얻고 그 열매를 내 것으로 누릴 필요는 없다. 씨뿌리는 개척자로 있는 것 자체만으로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내가 씨를 뿌리면 후임자가 거둘 것이다. 후임자는 편안하고 안정된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도들도 교회의 다음 세대들도 그 기쁨의 열매를 먹고 누릴 것이다. 그것을 보는 것으로 나의 노년은 충분히 행복을 보상 받는 것이다.

열매를 거두고 누리는 사람들도 행복하겠지만, 더 행복하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경험하는 것은 실제로 뿌린자들이다. 기쁨으로 뿌린자들은 그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란 고마움의 기억을 풍성하게 간직하기에 실제로 부유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씨뿌리는 현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그 후로 얻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보너스이다. 보너스에 목숨을 거는 회사원이 있는가? 보너스는 보너스일뿐이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이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해서 받는 보너스는 선물인 것이다. 목회자는 보너스 선물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된다. 월급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역의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 목회자들은 이미 월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월급이 적은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도 존재한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실직자보다는 일할 곳이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 일터의 현장으로 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일터에서 받는 월급의 차이로, 목회의 규모의 차이로 힘들어하지 말라.

강원도 영월에 가면 영월 소망교회가 있다. 50대 후반의 목사님인데, 시골에서 콘테이너 교회를 10년 이상 지켜왔다. 그 부부에게는 미래는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허름한 콘테이너 교회를 바라보면서 목사와 교회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비웃었다. 전도는 이루어지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과 모멸감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냈으면 동네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인정도해주고 서로 따뜻한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여전히 동네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앞에 늘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서울의 50대 목사가 그 앞을 지나가다가 교회가 너무도 초라하고 행색이 힘들어보여서, 50대 목사는 아무런 조건없이 벽돌로 아주 아름다운 교회와 사택을 지어주었고, 교회 터전은 동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아름다운 땅을 구입하여 교회가 세워졌다.

이 부부에게는 한줄기 소망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주신 곳이기에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그 시골동네에서 목사님 내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전도도 안 되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그 부부가 하는 유일한 사역이었다.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사역지를 옮길 만한 여유도 없고, 또한 평생 교회를 세울 확률이 거의 없어 보였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사역이었다. 그런데 그 사명의 자리를 인내로 기도하며 지킬 때 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해주었고, 그 부부는 50대 후반에 새로운 힘을 가지고 목회에 도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엄청난 웅덩이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 은혜의 시간은 인생 전체를 한 순간에 보상해주고, 남은 생애를 의미있게 살도록 도전을 주게 된다.

한 영혼에 대한 의미를 찾고, 한 영혼을 주님의 나라에 바로 세울 때 하나님의 시간이 다가오지 않을까?

물질적인 개념의 보상이 곧 하나님의 때가 아니다. 오늘날 모든 것의 기준이 오직 물질로 평가받고 평가하는 잘못된 시대의 부산물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목회자는 물질로 평가해서도 안 되고 물질로 평가받아서도 안 된다. 목회는 고귀한 것이다. 고귀한 영혼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겨주셨다. 사명의 자리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마지막까지 지키는 목회자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다. 목사는 양떼들과 함께 있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때가 찾아온다. 그 시간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때는 우리가 섬길 양들이다. 하나님이 양들을 한 명 두 명 보내주시는 것이 목회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때이다. 그 때를 잘 분별하며 지혜롭게 섬김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회자가 걸어가야 할 생명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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