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가 자녀 5명을 잃고 얻은 평화

시카고 대학의 법리학교수이며 전도자인 무디(Dwight L. Moody)가 목회하던 교회의 회계집사였던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는 1871년의 시카고의 대화재 때 그의 전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재난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그의 아들도 잃었었습니다.

엄청난 시련 앞에서 스패포드와 그의 가족은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873년 그는 아내와 네 딸과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습니다. 영국에 있는 동안 스패포드는 친구 무디와 생키(Sankey)의 전도여행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스패포드는 가족과 함께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그의 아내와 네 딸에게는 몇일 후에 뒤따라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획대로 유럽으로 출항하는 배에 태웠습니다.

많은 승객들과 스패포드의 아내와 네 딸을 태우고 1873년 11월 15일 뉴욕항을 출발한 프랑스 여객선은 7일 후 모두들 깊은 잠이 든 11월 22일 새벽 2시에 대서양 한 가운데서 영국 철갑선 "라키언"(Lochesrn)호와 정면 충돌하였습니다.

배는 226명의 생명을 안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고, 그 와중에 스패포드의 딸들은 모두 배와 함께 잠기고 부인만 물위에 떠올라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9일 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웨일즈의 카디프(Cardiff)에 도착한 스패포드의 부인은 "혼자만 구조됨"이라는 짤막한 전문을 남편에게 보냈습니다.

스패포드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들을 잃고 정신없이 헤맬 그의 부인이 걱정되어 부인을 데리러 가기 위해 영국행 배에 올랐습니다. 배가 대서양을 건너는 중 어느 날, 선장실에서 차를 같이 하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차를 나누는 도중 선장은 곧 딸들이 잠긴 물위를 지나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선실로 돌아와 아픔과 슬픔으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입니까? 새벽 3시에 아직까지 체험해보지 못한 평안이 그의 마음에 깃들었습니다.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은 편하다.) 아침이 되자 스패포드는 새벽에 주님이 주신 영감을 시로 썼습니다. 얼마 후 카디프에서 부인을 만났는데 부인도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덕정감리교회 담임목사 · 2014년 6월 1일~현재 · 경기도 양주

그것은 신앙적 승리의 결과였습니다. 스패포드 부부가 귀국하려고 리버풀에 왔을 때,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부흥의 불을 붙이고 있던 무디와 생키가 이들을 위로하러 영국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무디와 생키는 스패포드가 "나의 영혼이 편하다"라고 하는 간증을 말을 듣고 더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스패포드는 생키에게 자신의 찬송시를 보여주며 작곡을 부탁했습니다.

생키는 이토록 훌륭한 믿음의 찬송시에는 자기보다 당시 무디, 생키와 함께 부흥운동을 주도한 복음찬송 가수 필립 폴 블리스(P. P. Bliss, 1838~1876)가 곡을 붙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귀국한 뒤에 블리스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유명한 찬송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