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현대 과학문명

이 글은 2017년 2월 5일 한국개혁장로회(KRPC) 실로암교회 당회의 결의와 요청에 의해, 지난 3월 5일(주일) 이광호 목사의 특강 강의안이다.

1. 서론

2. 무서운 현대 과학문명

3. AI, VR, AR, Nano Bot, Cyborg, Humanoid Robot 등의 순기능과 역기능

4. 무서운 시대에 이미 닥친 일들

5. 교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6. 결론

 

한국개혁장로회신학교장, 실로암교회 목사

(5) 나노 봇(Nano Bot)

나노봇은 나노 기술을 통해 나타난 로봇이다. 즉 나노봇 속에 나노 컴퓨터를 넣어 작동하게 하는 기술이다. 현재의 상황을 볼 때 앞으로 15년 후인 2030년 정도가 되면 나노봇이 인간의 혈관을 통해 자유롭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원래의 인간이 아니라 반 컴퓨터화 될 우려가 있다.

사람의 몸속에 적혈구보다 작은 나노 로봇을 넣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지금은 나노봇 적혈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뇌를 관장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 혈관을 통해 세포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통제 불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특별한 속성의 나노봇을 주입하거나 거기에 어떤 변형을 일으키게 되면 원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인식을 하게 될 우려가 따른다. 죄에 빠진 인간들의 사악하고 무모한 실험 정신은 막을 길이 없다. 그러면 개인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들 가운데는 그로 인해 타인이 되는 해방감을 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십억 개의 나노봇이 인간의 뇌와 모세혈관에 주입되어 그곳에 떠돌며 상주하면서 제멋대로 활동하게 되면 인간들의 자율 신경과 사고가 그에 끌려 다니게 된다. 나노봇의 성격에 따라 더러운 것을 좋은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인간이 개를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기가 개라고 착각하게 되는 자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를 통해 미래의 인간에 대한 암울하고 끔찍한 상태를 예견하게 된다.

(6) 인조인간, 기계인간(Humanoid Robot)

인간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조인간을 제작하여 이득을 보려하겠지만 점차 인간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 편의를 위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교감하는 대상이 된다면 심각한 문제를 양산하게 된다. 멀지 않은 장래에는 로봇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이 활개 칠 날이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인조인간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인간들은 애완동물 대신에 로봇으로 만들어진 인조 애완동물들을 만들어 자신을 위한 반려동물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다다르게 되면 인간들의 모든 가치가 완전히 허물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비록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은 이미 일본에서는 확인된 바다. 아직 모양이 애완동물의 형태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인공 지능 애완 장난감 아이보(AIBO)를 통해 그 두려운 일면을 경험했다. 그것은 겉보기에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으나 인간들과의 감정교환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하물며 인조인간, 인공지능 애완동물이 등장하게 될 경우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인조인간의 대량생산과 속성생산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기계 인간의 무한 복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기계로 제조된 복제인간은 얼마든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인간들은 인조인간을 만들어 애완동물처럼 집안에 두고 목적에 따라 사용할지 모른다. 또한 극단적으로는 인조인간들끼리 전쟁을 치르는 일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죽어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인조인간의 기계 부품이 파손되어 그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것이다.

소방관이나 강도를 잡는 경찰 등도 인조인간을 대량생산하여 그 직무를 맡길 수 있다. 인조인간이 고된 농사일을 하고 힘든 막노동도 힘든 것을 모르는 기계 인간에게 맡기게 될 것이다. 로봇이 인간들의 일을 차지하게 되면 인간들은 결국 자기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한 새로운 사회적인 문제들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는 이미 인간들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인간을 생산하려는 경향성이 짙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개인이 자녀를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 때문이다. 즉 자연적으로 자녀를 얻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자녀를 두기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성적이든 감정적이든 상관없이 그런 풍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그와 동일한 개념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국가를 위해 산아제한을 하거나 많은 자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은 그에 연관되어 있다. 과거 1970년대 이후 일정기간 동안에는 인구가 많으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산아제한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자녀 출산을 장려하며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이는 결국 인간 자체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인간을 국가의 정책적인 목적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고 있을 따름이다. 장차 필요한 인구수를 채우기 위해 인조인간이나 그에 대한 대량 생산을 시도할 우려가 없지 않다. 목적 지향적인 인간들에게는 항상 그런 위태로운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될 우려가 따르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인간의 모든 윤리는 치명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인 부모나 가정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인간들이 무수히 양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기본적 가치 체계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원천적 고귀함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AI, VR, AR, Nano Bot, Cyborg, Humanoid Robot 등의 순기능과 역기능

(1) 순기능

대다수 사람들은 초 첨단 과학문명에 대한 순기능을 주로 염두에 두고 있다. 인간들은 자유롭게 가상 현실세계 가운데 전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여 비행기를 조종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체험이라든지 잠수함을 타고 바닷 속 깊은 곳을 탐험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들 대신 인공지능 기계인간들을 제작해 위험한 일을 맡길 수도 있다. 즉 소방관, 경찰, 군인의 직무를 맡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노봇 기술을 통해 정교한 인조인간이 의사나 간병사의 일을 맡을 수도 있다. 또한 난치병을 치유하거나 신체 일부의 취약한 부분을 쉽게 치료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정신노동을 요구하는 다양한 전문 직종에도 인공지능이 활성화 되어가고 있다.

이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된 상태이다. 지난해(2016) 5월 인공지능 로스(Ross)가 미국의 로펌 ‘베이커 앤드 호스테틀러’(Baker & Hostetler)에 고용되어 실제 변호사 업무를 감당하기 시작했다. 로스는 엄청난 분량의 문서들을 빠른 시간에 읽어낸 후 정리하여 분석하는 업무를 처리 해 냈다.

그 후 현재 미국 내 12개 로펌에서 로스를 고용하여 전문 법률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기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선은 순기능이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장차 법률 계통 뿐 아니라 의료계와 약사 업무 등에도 확장되어 갈 것이 틀림없다. 또한 인공지능과 결합된 외국어의 통 번역 문제도 우리의 눈길을 끌게 된다. 이미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는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앞으로는 외국어를 전혀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외국 여행을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시대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에는 국제 통역번역협회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번역대결이 있었다. 아직은 인간이 앞서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더욱 정교하게 되어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을 때가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2) 역기능

초첨단 과학의 역기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문제를 가지고 올 것이 분명하다. 죄에 물든 인간들은 항상 좋은데 보다 나쁜데 활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 자체로 인한 혼선과 더불어 인조인간을 통한 성(性) 산업이 엄청나게 성행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인간들이 인조인관과 결혼하게 되고, 그것이 인간의 가정을 파괴하는 위험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혼인을 통한 배우자가 아니라 자기의 취향에 맞는 인조인간을 마련하여 반려자로 삼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인간들이 인공지능 기계로 된 애완동물을 제작하여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가듯 인조인간을 제작하여 동거할 수도 있다. 인조인간이 이성과 감성을 가지게 되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처럼 인식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인공지능을 소유한 인조인간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박탈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운전, 건축, 질병진단을 비롯한 의료행위, 법률가,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이 기계 인간으로부터 엄청난 위협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멈추지 않고 인조인간의 기능을 조작하여 도둑질을 시키거나 강도질을 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나노 봇의 순기능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 역기능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혈관을 통한 나노봇 기술을 통해 인간들의 질환을 치료하는 수준일 경우 긍정적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인간의 뇌기능을 지배하게 되면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을 통해 인간들이 신선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될지 모르지만 마치 동물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합성된 나노봇 혈액을 지닌 상태에서 후손을 출산하게 되면 어떤 인간 존재가 될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이 문제는 사이보그(cyborg)와 연관되는데 앞으로는 사이보그 인간이 대량 출현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인간에서 또 다른 인간 형태로 전이하는 과정적 인간(trans-human)의 개념과 더불어 인간과 기계를 조합하여 조작된 인간에 관련되어 있다. 즉 기계적 장치가 부분적으로 인간의 자율 신경에 연결된 부위를 차지하도록 컴퓨터에 내장된 칩을 인간의 몸에 이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두뇌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저장된 모든 메모리를 그대로 옮겨 저장한 사이보그들이 많아진다면 과연 무슨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하는 대신 인간의 두뇌에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칩을 연결해 두면 된다. 결국 사이보그 인간이 출현하여 세계를 지배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거기에는 심각한 윤리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사이보그를 순수 인간으로 봐야 할지 또 다른 제3의 인간으로 이해해야할지 혼선이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무서운 일들이 발생하기 전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기대하며, 그로 인해 이 세상이 끝나게 될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우리가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바는 가상현실에 장기간 빠지게 되면 현실과 비현실 즉 현실과 가상현실에 대한 심각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는 사실이다.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가 원하는 긍정적인 가상현실을 경험하고자 할 뿐 아니라 부정적이고 무서운 가상현실을 체험하고자 하는 자세를 버리지 못한다. 즉 아름다운 지역을 여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죄악이 들끓는 세계의 대도시 환락가와 사창가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부정적인 가상 세계를 지나치게 경험하게 되면 현실세계에 대한 무력감과 더불어 엄청난 회의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증강현실 문제 또한 심각하다. 어쩌면 증강현실로 인해 인간들에게 거대한 보편적 정신분열증이 오게 될지 모른다. 예를 들어 포켓몬 게임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빠지게 되면 게임을 하지 않을 때도 그에 대한 연상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결국 현실이 증강현실 세계에 의해 지배받게 됨을 의미한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강 현실의 중독으로 인해 그와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심하게는 집안의 침대 모서리나 의자 밑에 몬스터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될 수 있다. 나아가 버스 안이나 골목길 등 모든 것에 몬스터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는 없는데도 실제로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증강현실 가운데 실제로 그것들을 익숙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나 정서는 그에 지배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몬스터가 다양하게 발전될 수 있다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증강 게임에서 등장하는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 점차 인간들로 대체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증강현실을 통해 각 장소에서 몬스터를 한 마리씩 잡을 때마다 점수가 올라가지만, 앞으로는 그것들을 가상공간에 가두어두고 관리하며 현실과 뒤엉켜 실제인 양 착각하거나 오인할 때가 오게 될지 모른다.

기계나 가상의 존재가 가진 인공지능에 의해 감정적인 친화력이 생성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빠진 자들은 인간의 참된 인식을 가상 세계에서 크게 소진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현실세계에서 대처할 사고능력과 그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어 급기야는 실종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어 증강현실에 빠진 자들의 뇌리 속에는 가상적 기억들이 실제 형태로 존재하여 생생하게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착각하게 만드는 심각한 기능을 하게 될 것이 뻔하다. 증강현실이라는 사고 가운데서 서로 간 공격을 되풀이하거나 세력을 펼치며 인간들의 사고를 교란시키게 될 날이 멀지 않다.

 

4. 무서운 시대에 이미 닥친 일들

우리는 지난 해 3월 TV를 통해 생중계된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실력을 보며 깜짝 놀랐다. 수천 년 동안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자들이 발전시켜온 인간들의 바둑 실력을 기계가 단숨에 꺾어 버렸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바둑 고수가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에 의해 완패한 것이다.

이는 2016년 봄 서울에서 있었던 바둑 대국에 관한 이야기지만 인간들의 전 영역에 이와같은 인공 지능이 보편화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간들은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를 의존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들은 철저히 무력해질 것이며 인공지능을 자신의 상전으로 모시게 된다.

우리가 극히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인공지능 인형 즉 인조인간이나 감성형 로봇을 소유하는 것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로봇 장난감인 ‘아이보’(AIBO)의 출현은 인간들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주고 있다. 1999년 일본의 소니사에서는 로봇 애완동물인 ‘아이보’ 즉 인공지능 애완 로봇을 제작했다. 그것은 2006년 까지 15만 개(마리)를 판매했다. 이는 그 숫자 만큼의 가정에서 그것을 소유했다는 의미가 된다. 한 가구를 4인 가족으로 본다면 무려 60만 명이 집 안에 아이보를 두고 있었다는 말과 같다.

문제는 인공지능 애완 로봇 아이보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 그 주인은 마치 병원에 가듯이 기계의 부품을 사서 고치면서 동일한 아이보를 마치 반려 동물처럼 가까이 두기를 원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보는 사람의 얼굴과 음성 인식을 통해 주인을 알아보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퇴근하여 집에 돌아가면 빨리 아이보가 보고 싶어지고 직장에 있을 때는 아이보가 궁금해진다. 이는 인간의 감정이 로봇 애완동물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이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점차 인간과 로봇이 서로 간 감정을 나누며 정서를 교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만일 성적(sex)인 인조인간 로봇이어서 애정요구나 사랑 나눔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에서 제작된 로봇 애완동물을 통해 그것은 이미 위험하고 부정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검증을 거쳤다. 2015년 2월 28일 일본 치바현 이스미시 고우쿠지 사찰에서는 주지 승려의 집전으로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아이보들을 모아두고 그것들을 위한 ‘합동 천도제’를 지냈다.

그 주인들이 아이보를 처분하면서 슬퍼하는 가운데 영결식을 행했던 것이다. 이는 인간들이 인공지능 애완동물에 인식상의 영혼을 부여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와 같은 행태는 우리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을 실행하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마치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과 같은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몇 년 동안 다양한 감정교류를 통해 정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인공지능 로봇으로서 기계적 존재를 넘어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장차 외견상 애완견과 거의 동일한 인공지능 애완견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그에 멈추지 않고 인공지능을 가진 인간과 거의 동일하게 보이는 인조인간과 함께 살아 갈 때가 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들은 감정이 부딪치는 실제 인간보다 자기감정에 맞게 제작된 로봇 인간에 몰입하여 감정을 나누기를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

 

5. 교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교회와 성도들은 AI, VR, AR, Nano Bot, Cyborg, Humanoid Robot을 비롯한 초 첨단과학 문명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경계하며 어디까지 거부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직 대다수 교회에서는 그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다지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사실 초 첨단 과학문명은 무서운 마약과도 같다. 기본적으로 마약 성분 자체는 나쁜 것이라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가치중립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고통을 당하는 병자들이나 약제를 만들 때 좋은 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오남용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최근 포켓몬 고 게임이 등장하고 나서 이미 외관상의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일부교회에서는 예배당 내부에 포켓몬 체육관을 만들어 두고 주변의 청소년들을 불러 교회의 청소년들과 게임을 통해 어울리게 하면서 그것을 복음 전파의 수단으로 삼는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의 역기능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실로암 교회와 한국개혁장로회(KRPC)에서는 2016년이 시작되면서부터 이에 대한 대비를 위해 당회와 노회 차원의 논의와 대화가 있었다. 그리고 2017년 동계청년수련회에서는 그것을 경계하기 위한 연구발표가 있었다. 또한 2017년 1월 25일 한국 전역에 포켓몬이 출시되었을 때 바로 다음 주일(1.29) 교회는 그에 대한 금지와 더불어 신중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교회 앞에 공적인 권면을 했다.

그 이후 우리 교회는 그와 같은 물결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을 방치하게 되면 장차 다양한 형태로 진화된 새로운 과학 문명이 대두될 때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으로 20-30년 후에 살아갈 우리 언약의 자녀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조인간이나 인공지능 인형 혹은 애완동물 등의 소유는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 성숙한 성도들은 다음 세대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긴장해야 하며 잠시도 경계의 끈을 늦추면 안 된다.

 

6. 결론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통해 시대를 읽고 세상을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지상 교회에 맡겨진 중요한 사명이다. 현재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가장 강력한 대상은 인공지능에 연관된 초 첨단 과학에 연관된 문제들이다.

지식적인 측면 뿐 아니라 감성을 동반한 인조인간이나 인공지능 애완동물이 생겨나게 되면 인간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며 그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도 그 영향으로부터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것의 오남용을 막아내지 못하면 인간은 기계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된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스스로 자기 코드를 수정하는 일이 발생하면 예측할 수 없는 변형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들은 이미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를 중심주제로 다루었다. AI, VR, AR, Nano Bot, Cyborg, Humanoid Robot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그에 연관된 문제에 대해서는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와 같은 것을 한번 맛들이게 되면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마약을 한번 잘못 맛보게 되면 그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앞으로 이기적인 종교인들 가운데는 매 주일 교회에 나가지 않는 대신 가상현실 가운데서 예배를 보려고 하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고 현실세계에 적응하기 어려워지게 될 우려가 따른다. 그렇게 되면 굳이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부대끼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가시적 교회에 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가상세계 속에서의 가정을 꾸리려 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될지 모른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관계의 골치 아픈 상황에 살아가는 자들이 가상 세계의 가족을 따로 두고 간음을 저지르는 시대가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우리는 정말 무서운 세계에 직면하고 있다.

깨어있는 교회라면 지금 당장 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이제는 한국 교회와 신학교가 그에 대한 문제를 면밀하게 살펴 경종을 울려야만 한다. 잠시 방치하는 동안 적기를 놓치게 되면 더 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게 될지 모른다. 성실한 성도들이라면 다음 세대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우리 시대에는 그 강풍을 막아낼 재간이 없지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연관된 무모한 과학적 환경을 되돌릴 수 있는 특별한 방도가 없다.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 우리 자손들 가운데는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어 아우성을 치는 자들이 많아 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한 두 사람 개인이 자각하면 될 일이 아니라 교회가 정신 차려 경계하는 가운데 언약의 자녀들을 잘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그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해석하는 가운데 영원한 천상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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