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교회 최갑진 목사

[히브리서 6장 4절~7절에 대한 단상]

이 본문은 ‘성도의 견인교리’에 대항하여 자주 언급되곤 한다. 본문의 내용이 마치 구원의 탈락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본문을 보이는 그대로 수용하여서 한 번 구원을 얻은 참 된 신자라고 할지라도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바에 의하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자들을 끝내 구원하신다. 물론 이 믿음은 교리에 메인바 된 것이 아니고, 성경의 전체의 증언이 그러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성도의 견인을 인정하는 입장에서도 이 본문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히브리서 기자가 묘사하는 타락한 자들(배교한 자들)을 참 된 신자로 볼 것이냐, 아니면 불신자로 볼 것이냐 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전자의 입장의 사람들은 이 본문을 목회의 관점에서 해석하려 한다. 단순히 배교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목회자의 목회적인 수사로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도들에게 믿음 안에서 인내할 것을 촉구하여, 택하신 자들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돌보심의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불신자로 보아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일한 맥락의 해석 가운데서도 다양한 관점들과 설명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구원을 얻는 ‘참 된 신자’의 자리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선 ‘빛을 받았다’는 말씀을 꼭 참된 신자들에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빛을 비추신다. 이것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자비의 표시이다. 이들은 복음을 받았고 외적으로나마 회개하여 교회로 입적되었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배교했고 십자가를 공적으로 능욕하여 다시 새로운 회개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참되게 복음을 받았더라면 그들은 그 회개 안에 계속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외적으로만 회개 하였고 참 된 회개를 얻지는 못하였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우리에게 나간 것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하였다(요일2:19)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는 것은 아마도, 주의 성찬에 참여하였거나 그 외에 교회의 공적인 은사들에 대한 체험들을 의미할 것이다. 성령에 참여하였다는 말은, 안수행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혹은 성령의 임재의 공동체적 체험 가운데 있었던 자들을 의미할 수 있다(행8:17).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말은 귀신을 내어 쫓거나 병을 고치는 등의 내세에 완전하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부분적 체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여, 주여 하는 자들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해 볼 때, 이런 은사와 능력을 경험한 자들을 반드시 참 된 신자와 결부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마7:21). 그들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다. 여기에는 가롯 유다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받았다(마10:1). 그리고 실제로 그런 능력을 일정부분 발휘하였었다. 그러나 유다는 회개하지 못하였다. 선한 말씀에 관하여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처럼 얼마든지 헛되게 말씀을 받는 자들이 있다(마13:1-9).

이러한 해석은 7~8절에 가서 보다 분명해 진다.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였다. 이것은 복음 설교와 교회의 교제와 은사들에 대해 그들이 외적으로나마 지속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은 합당한 채소를 내지 아니하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다. 그들은 구원 얻는 자들이 마땅히 보여야 할 참 된 반응들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경외함, 애통함, 상한 심령의 제사, 견고한 인내, 자기부인, 생명 얻는 회개 등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좋은 토양이 아니었으며 결국 저주를 받고 멸망당하고 말 것이다.

아마도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하는 사람들은 유대인 배교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기독교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성령을 돈으로 사려 했던 시몬과도 같은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내, 여러 가지 박해 상황으로 인하여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공개적으로 십자가를 비난하였거나 모욕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복락을 위하여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내어 버리고, 하나님을 능욕하였기 때문에 다시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들은 비록 맛은 보았지만 취하지는 못한 자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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