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세상에서 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3) -임승훈 목사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행복은 사람들이 사는 목표이고, 그것 때문에 살며, 그것이 있어야 만족해한다. 행복은 종교적 유무를 떠나, 부유함의 정도를 떠나, 배움의 유무와 상관없이 인간이 갈망하는 개념이다. 어쩌면 인간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 인문학적인 질문을 할 때마다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개념이 바로 행복이다. 그만큼 행복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어떤 이는 돈(재정)이 최고라며 상당 부분 인생의 가치를 여기에 둔다. 행복 여부도 물질의 유무에 달렸다고 항변한다. 돈 없는 이를 무시하고 돈 이외의 모든 것을 가치 절하한다. 수 억짜리 외제 자동차, 2천만 원을 육박하는 산악자전거, 4천만 원짜리 명품 손목시계, 일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카메라 이야기, 1천5백만 원짜리 불란서 색소폰 등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얼마짜리에 홀려 있는지..., 그것이 없으면 흡사 행복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것을 즐기고 충분히 사용할만한 실력과 자질 등이 더욱더 중요하지 않은가. 한 분야의 전문가(또는 마니아)로서 그것을 소유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것을 소유할 이유는 없다. 값이 싸면 싼 대로, 칼라는 자기 취향대로 형편과 수준에 맞게 구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은 한 가지 명품에 대한 쏠림현상이 아주 심하다. 흡사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인생 자체가 불행하다는 듯이 죽을지 모르고 뜨거운 전등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나방처럼, 어딘지도 모른 채..., 꼭대기에 올라가면 신천신지(新天新地)라도 있는 양 친구들을 짓밟으며 기어오르던 애벌레¹처럼 우리의 이웃 불쌍한 한국인들은 몰려가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떤 이는 학벌 우선순위에 심취해 사는 이가 있다. 학벌 하면 적어도 SKY 대학은 되어야지 라며 그 외의 사람들을 업신여긴다. 배움은 요긴하고 필수적인 인생사이지만 잘못 배우면 그 아는 자가 오히려 세상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가 부천 살 때의 이야기다. 건물주가 서울대 출신이었는데 그는 입만 벙긋하면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부동산 중개인 사무실을 차려놓고 늘 거기서 동네 친구들(건달?)을 모아 그림 공부(화투 또는 마작놀이)에 열을 올렸다. 그의 아내가 동네에다 불고기 음식점을 내었는데도 남편은 마찬가지였다. 저녁 시간만 되면 근질거려서 계산대에서 일어나 서성거린다. 몇 해 뒤, 남편의 하고 다니는 꼴이 너무나 싫다며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반년 만에 그 주인공이 동네에 다시 나타나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사장님, 언제 돌아오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인즉 “캐나다? 심심해서 못 살겠어요.” 그림 공부(화투놀이)하고 싶어 돌아왔다는 얘기였다.

어떤 이는 건강이 최고라며 건강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영양탕, 단고기, 풍천장어, 염소탕에 각종 보양식들을 먹기 위해 전국의 맛 집을 찾아다닌다. 뽈록 나온 배에 어기적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흉한지..., 과연 먹는 것들이 다 몸에 좋다는 말인가? 아니다. 체질에 따라 어떤 분은 ‘열 내고 양기를 돋우는 음식’이 좋은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차가운 음식류를 먹어야 하는 ‘속에 열을 품고 있는 분’도 있다는 것이다. 열(화)이 속에 있는 분이 열 내는 보양식을 섭취한다면 이는 오히려 몸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자취하며 작은 누님들과 함께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 보니 식사를 제 때에 먹지 못하고 자랐다. 우유를 매일 사 먹는 친구가 부러웠고, 학원에 한번 등록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자취생활이 대학에 입학하여 해병대에 차출될 때까지 이어지다 보니 나는 군 생활이 천국과 같았다. 왜냐하면 해병대 내무생활이 힘들고 진해 훈련소 입영훈련이 힘들었지만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대 전 경험하지 못한 행복이었다.

어떤 이는 자녀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며 자녀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수입에 비해 과도한 교육비를 쏟아 붓는가 하면, 자녀교육이라는 명분 때문에 기러기부부를 자처하고 부부간의 행복을 포기한 채 10여 년 이상을 떨어져 산다. 누구를 위한 인생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떤 이는 예쁜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행복이라며 생김새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 뚱뚱한 사람을 예전엔 ‘배사장님’이라며 칭찬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취급한다. 자기 자신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의미에서다. 하지만 함부로 외모를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서 있기도 어려운 사람에게 운동이 부족하다며 근육을 키우라면 상대를 너무나도 모른 채 함부로 말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 행복이라며 기업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윤추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법을 어기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안 걸리면 다행이고 걸리면 재수 없었다’고 여긴다. ‘남불내로’² 인 셈이다.

이런 사회에는 한 사람의 성공을 위해서 수많은 실패자와 들러리들만이 만들어진다. 1등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듯이, 몇몇 사람만을 위한 사회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요, 행복하지 않은 나라다. 사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가리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코미디 쇼가 희화화하는 바가 무엇인가?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특정인 기득권자들이 우선하는 공정하지 못한 나라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행복은 결코 거창한 구호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활 속의 작은 것 속에도 넉넉히 들어 있다. 1등 한 사람은 나의 뒤에 있는 2등과 3등과 수많은 친구들을 기억해야 한다.

고시³에 합격한 사람들은 나의 합격을 있게 해 준 수많은 경쟁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따듯한 사회요,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배려가 있고 섬김이 있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다. 한국인들에겐 이런 것들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행복하지 못하다.

 

<각주>

1)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서울; 시공주니어, 2017)

2)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 불합리한 이 사회를 꼬집는 신조어 사자성어다.

3)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교사임용고사, 일반 공무원시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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