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진화론과 창조론

3. 과학주의와 과학의 한계

  (1) 창조과학이론

  (2) 유신진화론 혹은 진화적 창조론       

  (3) 지적설계론

4. 성경을 위협하는 신학적 폐해

5. 창세기 1장의 ‘날’과 창조 및 초기 인간들에 관한 문제

6. 결론

한국개혁장로회신학교장, 실로암교회 목사

6. 결론

우리 시대에 가장 위험한 풍조들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명석하고 관대한 자로 만들고 싶어하는 어쭙잖은 심성이다. 자기와 상이한 다른 사람의 견해와 주장을 겸손하게 경청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무시한 주장조차 수용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도 아담과 하와가 보았으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를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과 모든 인간들이 보았던 것과 동일한 해와 달과 별들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밤하늘에 뜬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과 북극성, 북두칠성을 비롯한 여러 별자리들을 쳐다보며 하나님의 오묘한 권능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오만함은 극에 달해 있다. 그 가운데 과학을 빙자한 ‘과학주의’의 발흥은 실제가 아닌 것을 실제인 양 포장한 채 어리석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불신자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그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그 두려운 일에 앞장서는 자들 가운데 소위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학자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다. 그런 자들은 신앙을 관념으로 생각하며 ‘과학주의’를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극히 부분적인 것을 판단 근거로 삼아 과학주의적인 사고를 하면서 그것이 마치 확증된 과학인 양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신앙이 어린 자들이 불신자의 잘못된 연구 결과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자들을 진취적이며 관대한 기독교인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는 결코 인간들의 과학적인 노력과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근본 자세이다.

오늘날 우리는 유신진화론을 내세우는 과학주의자들을 엄히 경계하며 저들의 왜곡된 주장을 조심해야 한다. 신앙이 어린 자들은 그것이 마치 과학인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된 사실 그대로 믿는 성도들은 문자주의자나 근본주의자 혹은 맹신적 성경주의자로 매도당하게 된다.

교회는 과학주의에 기초한 유신진화론 혹은 진화적 창조론이 비성경적인 주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창조과학 이론의 경우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오해를 사게 될 우려가 있다. 성경에는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신비로운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지적설계론은 불신자들의 과학적 사색에 의한 주장으로서 겉보기와는 달리 정통기독교의 창조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유신진화론이 성경을 언급하면서도 성경의 교훈을 정면으로 대항하는 위험한 성격을 지닌 이론이라는 사실이다. 에덴동산과 그 안에 심겨져 있던 선악과나무,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닮게 지으신 아담과 하와의 존재를 무시하고 저들을 통해 들어오게 된 죄의 문제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의미 없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참된 기독교 신앙이라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창조에 연관된 모든 내용들을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아갈 수 있을 따름이다. 거기에는 전능자 하나님의 놀라운 의도가 담겨 있다. 또한 그 모든 사실들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과학적 연구로도 그에 접근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이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겸손하게 만든다.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바는, 일만 년과 46억년이나 138억년이 인간들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들의 상식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태도는 극히 지양되어야 한다. 사도 베드로가 쓴 편지 가운데 그와 관련된 중요한 교훈이 주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전3:7-9)

피조물인 인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에 대한 것을 다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만 알아갈 수 있다. 인간들의 이성과 경험, 특히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하나님 의 창조 사역을 규정짓고자 하는 욕망은 타락한 인간들의 죄성에 기초할 뿐이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언급한 베드로의 교훈은, 인간의 판단으로 감히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연관된 모든 사역을 가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오직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참된 지식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성도들이라면 이에 대해 지극히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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