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7) -임승훈 박사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자연계의 신비나, 동물들의 세계를 그린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동물의 왕국을 다룬 다큐에서 프로그램마다 하이에나는 어디에나 등장한다. 저 흉측한 동물이 왜 자꾸 등장하는 거지? 짜증이 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하이에나의 특징을 몇 가지 알게 되면서 그런 마음은 말끔히 사라졌다.

첫째, 하이에나는 동료애(同僚愛)가 매우 강한 동물이란 사실이다. 생김새나 목소리가 천박스럽게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먹이 사냥을 할 때도, 동료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들은 특이한 목소리를 발하며 동료애로 똘똘 뭉쳐 해결한다. 둘째,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독수리나 까마귀가 대자연의 청소부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하이에나의 역할에는 못 미친다. 이 또한 자신의 생존뿐만 아니라 새끼들을 각별히 돌보고자 하는 자녀사랑(새끼愛)의 발로이다. 셋째, 하이에나는 몸집이 작지만 지혜롭고 매우 용맹하다. 열대기후의 사파리(safari)에서 볼라치면 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은 하이에나뿐이다. 넷째, 하이에나가 짝짓기를 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 어떤 동물보다도 정열적으로 오래도록 사랑을 즐긴다. 다섯째, 하이에나는 모계의 리더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위계질서가 충실하게 지켜진다. 심지어 모계 리더(암컷)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린 하이에나(암컷)가 리더가 되어도 위계질서엔 변함이 없다. 질서에 배반이 일어나면 철저한 응징이 이루어진다.

감사운동을 하는 데서도 하이에나의 특징처럼 연대의 귀재, 질서를 지키며 리더 우선 습관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집념, 지혜와 용감성, 삶을 즐기는 자세 등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감사운동 이야기에 앞서 감사(感謝)의 의미를 알아보자. 먼저 한자풀이로 볼 때 느낄 감(感)에 사례할 사(謝) 자를 쓴다. 감(感)은 느낌이나 생각을 말할 때 사용하는 글자이며, 사(謝)는 인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전적으로는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담아 인사한다.’고 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사례할 사(謝)를 찬찬히 뜯어보면 무엇인가가 분명하게 다가온다. 감사란 말 (言)과 몸(身)과 마디마디(寸)를 굽히고 접어서 인사한다는 의미다.

이것을 임효주는 그의 책 『감사, 그 놀라운 이야기들』에서 ‘감사란 모든 사물과 대상에 대하여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라 하면서 여기에 ‘창조의 동력’이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 성품학교에서는 감사를 가리켜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의 작가 양경윤 씨는 감사를 가리켜 ‘쓸수록 힘이 나고 하루가 행복해지는 마법의 한 줄’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설명을 종합해 볼 때 감사란 ‘상대에게 입은 은혜를 알리거나,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담아 인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상대방이란 사람, 동식물, 물건을 포함하며, 첨단 전자 시대답게 이제는 문자, 카톡, 카스, 페북 등 IT매체라든지 SNS 상의 모든 글도 포함하는 게 자연스럽다.

여기서 필자는 감사운동을 가리켜 ‘하이애나’운동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기독교적 관점을 꿰뚫는 통찰이라고나 할까? ‘하이애나’는 언어유희에 가까운 조합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글자 조합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의미를 유추해보면 이런 뜻이다.

하-하나님 사랑, 이-이웃사랑, 애-사랑, 나-나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주장을 담는다. 혹자는 갑자기 웬 사랑 타령인가 생각할지 모르나, 사랑 없는 감사는 매우 무미건조하다. 감사의 진정성은 사랑에서 나타난다. 사랑하지 않은 채 감사하다는 인사말은 그저 고개 짓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서적 근거를 찾아 필자의 이야기를 한발 더 나아가보기로 한다.

(1)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28-31)

(2)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누가복음 10:25-28)

(3)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신명기 책에 나오는 위 부분은 이스라엘인들이 ‘쉐마’라 하여 특별히 자녀들을 가르칠 때 적용하는 말씀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여호와를 힘껏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살아계시던 시대에 한 서기관(율법교사)이라 이름하는 한 사람에 의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고 예수님의 대답에서 이웃사랑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는 다시 바울의 목회서신 갈라디아서에게서, 그리고 야고보기자에게서, 이는 다시 레위기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이며 그리스도인의 표상으로 강조되고 있음을 본다.

-“온 율법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4). 바울은 여기서 온 율법은 이웃 사랑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한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야고보는 이웃 사랑을 가리켜 최고의 법(율법, 말씀)이라고 진단하며 이를 잘 지키면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맞다. 어떤 이는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이웃 사랑하겠다고 나선다. 어떤 이는 가까운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물론 예수처럼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내어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십자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감은 만인의 표상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모두 예수님 흉내를 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심하고 따를 수는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하이애나’ 운동을 주창한다. 혼자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함께 하면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함 없이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며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것 또한 의미 없다. 이기적인 사람 운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감사운동의 목표는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까지 사랑하기로 옮아감이다. 하이에나(hyena)처럼 연대하고 뭉쳐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자면 역설일까.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풀자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죽기까지 헌신하고, 죽기까지 사랑하고, 현실에서 누리지 못한 것은 죽어서 천국복락을 기약하며 나아가자는 것이 기독교신학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신앙적인 측면 보다는 현실에서의 삶(우리의 삶의 자리, Zitzim Leben)을 설득하는 데는 진행이 있어야 하는데 감사운동과 감사이야기는 논리(또는 理論)가 아니라 실천이다. 감사는 반드시 사랑의 메시지와 더불어 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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