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찬의 [바이오 토픽]

인간과 로봇 간의 상호작용에는 궁극적으로 섹스가 포함될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읽어내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로봇'은 급성장하는 연구분야 중 하나다. '영리하고 개인적이며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친구에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과 로봇 간의 관계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측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로봇이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 섹스다.

지지난주 영국에서는 그 문제가 다뤄졌다. 섹스봇(sex robot)에 대한 공론화를 목표로 하는 「책임있는 로보틱스를 위한 재단」의 권고 보고서가 발표되자(참고 1), 많은 언론들이 앞다퉈 그 이슈를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프트 로보틱스(soft robotics)와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이 발달함으로 인해, 최소한 기본적인 형태의 섹스봇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다.

섹스봇의 영향력은 전통적인 성 보조기구(sex aids)들과 현저하게 다를 수 있다. '그런 로봇들은 의인화되고 여성과 가까워지고 포르노그래피에서 영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우려를 자아내는 것은 타당하다. 심지어 동 보고서에는 "아시아에는 이미 돌 매춘업소(doll brothel)가 존재하며, 조사에서 나온 잠정적 증거에 따르면 섹스봇과 로봇 윤락업소에 대한 시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보고서들을 읽는 순간, 과학자들은 뉴스매체들의 우선순위를 문제삼고 싶은 충동이 일 것이다. 그러나 섹스봇에 대해 따질 건 분명히 따져야 한다.

이런 보고서에서는 섹스산업을 잘 다루지 않는 편이지만, 섹스산업이 인간의 삶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섹스기술산업의 전세계적 시장규모는 미화 300억 달러로 보고되어 있으며, 포르노그래피 산업의 수익은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연간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에 반해, 2013년 학술출판시장의 규모는 약 250억 달러였다.

현재 섹스봇을 생산하는 업체는 네 군데에 불과하며 전부 미국에 자리잡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업체들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 업체들은 아직은 로봇보다는 돌(doll)을 더 많이 만들고 있다. 그러나 관련 업체인 어비스 크리에이션즈(Abyss Creations)의 CEO 맷 맥멀런에 따르면, 그의 회사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가 발달함에 따라, '섹스를 위해 설계된 로봇'도 발달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짝사랑일지언정 유대관계가 형성될 것이다.(병사들은 폭발물처리 로봇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생겨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몇몇 연구자들이 로봇과의 관계에 대한 이슈를 신중하게 다루고 있지만, 사회적·법적·도덕적 함의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성 관련 기술(sex-related technology)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더욱 희귀하며, 지금껏 행해진 연구는 (특정 절차를 따르라는) 통고와 상이한 해석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중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가 한 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로봇이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만질 경우, 인간은 생리적 각성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분야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대체로 '허접하고 센세이셔널하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된 초창기 학술회의(「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에 대한 국제회의」)가 런던 시티 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주최측에서 그 토픽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임에 따라 인근의 골드스미스 대학으로 장소를 바꿨다.

그러나 연구가 어렵고 터부(taboo)가 존재한다고 해서, 정당한 과학적 질문을 던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학계에서는 '인간-로봇 상호작용'의 영향은 물론, '인공지능이 가미된 섹스기술의 프라이버시'라는 초미의 이슈도 검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부 '똑똑한 토이'들이 해킹을 당할 수 있으며, 개인화를 위해 수집된 정보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데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섹스봇의 세계와 기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백인 중산층 남성'이다. 섹스기술의 연구와 개발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성 다양성(gender diversity)을 개선할 경우, 성적 대상화(objectification)와 같은 폐해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제품을 만들 경우 섹스봇의 잠재적 이익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는 이 '성장산업'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이번 보고서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학자들은 그 대화에 참여하여, 증거에 기반한 토론(evidence based discussion)을 벌여야 한다.

※ 참고문헌
1. http://responsiblerobotics.org/wp-content/uploads/2017/07/FRR-Consultation-Report-Our-Sexual-Future-with-robots_Final.pdf

※ 출처: Nature 547, 138 (13 July 2017) http://www.nature.com/news/let-s-talk-about-sex-robots-1.22276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업에서 근무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일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다.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면 매일 아침 이런 최신 과학기사를 접할 수 있다. 진화론의 교과서로 불리는 《센스 앤 넌센스》와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다룬 화제작 《자연의 발명》을 번역해 한국출판문화상 번역부문 후보에 올랐다. 옮긴 책으로는 《핀치의 부리》, 《물고기는 알고 있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곤충 연대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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