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바지 유감

평일에 교회에서 일을 보다가 점심 약속도 없고, 아내가 밥을 차릴 수 없는 날에는 사택에 가지 않고, 교회근처 동네 집 밥집에 간다. 그 집의 음식이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우리 식탁과 같아서 나는 그 식당을 ‘집 밥집’ 이라 부른다. 오늘도 동네 그 ‘집 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마침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집 밥집’ 주인 아주머니와 계모임을 하는 모양이다.

한 잔의 술이 돌고 돌다가 다들 마지막 잔을 채우고는, 그 중 하나가 잔을 들어 건배를 외친다. “청바지~~~~!!” ‘.... 엥?’ 의아해하는 나를 의식한 듯, 일행이 일순간에 한껏 목소리를 높여,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다~~~~!!!” 

‘...흐흐흐’ 그러고 보니 다들 6학년

쯤은 되어 보이는데, 나름 청바지 비슷한 옷들을 입은 모습들이다. 아마도 이 우렁찬 코스프레를 위해 준비한 단체복 같으다. 그렇게 한 바탕 외치고 난 뒤 여기저기 불쑥 불쑥 취기가 오른 혀를 내 둘리기 시작한다.

“걔는 몸에 좋은 것 가려서 온갖 좋은 것만 먹더니, 암 수술을 세 번이나 했다더라...”

“자기 깜 량에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어쩌자고 그 비싼 벤츠를 사서 신랑까지 고생을 하게 만들어...! 하여튼, 그 집은 여자가 문제야!!”

“그래, 맞아!! 남자도 여자를 잘 만나야 말년이 평안 한 거여!!”

밥을 먹는 동안 불과 10여분이지만 그야말로 이제 방금 청춘을 시작한 이들로 인하여 내 밥상이 흔들린다. 정신없이 밥을 먹으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청춘은 ‘언제나 소란 하다!’ 는 것과 ‘주변을 전혀 개의치 않고 행동한다는 것’ 과 또한 청춘은 ‘혼자보다 여럿이 모이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 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 소리를 듣고서도 여전히 침묵하는 교회는, 복음의 야성을 숨긴 채 세상의 시선과 판단에 눈치를 보는 교회는, 증인이 되라고 짝을 지어준 것을 둘이 하나 되기조차 버거 워하는 교회는, 너무 조용한 교회는, 세상 풍습과 사조에 숨죽여 주눅이든 교회는, 소통이 막혀 서로가 고립된 교회는... 청춘이 못 된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인 복음의 능력을 상실당한 채, 세상 눈치만 살피고, 교회 안에서 부터 서로 편견과 질시와 비난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팔.바.지.다!.

나만 생각하고, 팔 장을 낀 채, 바른 복음을 외면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공동체!

나팔바지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을 지나서 지금은 아주 유치한 패션이 되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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