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소명으로 청소부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남산자락, 베드로 마을(두터운 바위 마을, 厚岩洞), 양선교회(Goodness Church), 이맹영목사.

오늘날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성직자의 소명 문제이다. 즉 소명 받지 않은 사람이 목사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사명(missionary)과 소명(calling)의 명제를 명쾌하게 구분하지 못한 것이 한 원인이다.

소명과 사명의 정의를 규정한다면 사명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그리고 소명은 그리스도인이 된 각 사람에게 그가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와 더불어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주님이 친히 부르셔서(召) 명(命)하여 부여한 일이다. 그래서 이 일을 천명(天命)이라고 부른다.

즉 요셉에게는 세계식량문제(세계경제)와 모세에게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해방문제의 소명이 있었고, 그들의 소명 속에서 횃불언약(창15:13-17)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사무엘에게는 제사장으로, 다윗과 솔로몬에게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의 일을, 예레미야에게는 예언자로,  바울에게는 이방인 전도자로, 마태에게는 유대인 전도자로, 마가에게는 로마인 전도자로, 요한에게는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주셨다.

그런데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 목사가 되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신학교에 가는 사람이 있다. 결코 그리해서는 안된다. 목사가 되어야 할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가르치는 직업인 성직의 부름을 받은 사람만이 가야야 길이다(Calling).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사명은 하나지만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은사와 더불어 명하는 소명(천직)은 이 땅의 모든 직업이 여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수 천 가지가 된다. 그래서 Calling이라는 단어는 직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Vocation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함께 한다.

이러한 소명을 구약시대에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직책과 그 직책에 부합한 능력을 공급받기 위하여 온 회중 앞에서 제사장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는 위임식이 있었다(레8장). 그 대상은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세 부류의 사람이었다. 다윗 왕도 사무엘에게 기름(관유) 부음을 받고 성령 충만하여 왕의 소명을 잘 감당하였다. 그러나 특권층(레위지파)에게만 허락되었던 구약시대 제사장은 "오직 말씀(Sola Scriptura)으로"라는 종교개혁정신에 의하여 만인제사장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신약의 말씀이 실체화되었다(벧전2:5,9; 계1:5-6).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모든 직업은 목사직만 성직이 아니라 모든 직업이 성직이다. 다만 목회직을 일반직과 구별하는 차원에서 거룩성을 가일층 부여하여 성직자라고 부른 것이다. 이런 진실한 배경에서 만인제사장이라는 신적인 어휘가 일반화 된 것이다.

그러므로 넘치는 은혜 자체를 성직의 부름이라고 착각하지 않기 위하여 절제의 은사가 필요하다. 넘치는 은혜 속에서 나를 어떠한 소명자로 부르셨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즉 어떠한 직업인으로 부르셨는가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명하면 성직자라는 그릇된 공식에 얽매이면 안되고 모든 직업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 즉 천직(天職)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달란트의 소명자가 다섯 달란트의 소명자가 되어서도 안되고 그 반대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그릇된 소명으로 목사가 되어 있는 사람보다 바른 소명으로 청소부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렇게 볼 때 각자의소명, 특별히 성직자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바른 성직자의 조언과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영국 속담에 목사가 되지 아니할 사람에게 목사가 되라는 말은 가장 큰 저주라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먼저 우리를 부르신 사명을 잘 깨닫고 그 후에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은사와 더불어 부여된 소명(천직)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에 부합하는 일이다.

선지자 모세처럼, 제사장 사무엘처럼, 왕 다윗처럼!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