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역임. 도서출판 교회와성경 편집인 https://www.facebook.com/ChurchAndBible

느헤미야는 BC 444년 예루살렘 성 재 건축을 마친 후 적어도 아닥사스다 재위 32년(BC 432년)까지 12년 동안 유다 총독으로 재임하였다. 12년이 지나자 느헤미야는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가 얼마 동안 페르시아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년 정도로 추측된다. 그가 떠나고 나자 유다에서는 모세의 율법까지 범하는 중대한 잘못들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 왔을 때에는 그 정도가 심해져서 전폭적인 개혁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1. 언약 공동체의 지속적인 개혁의 필요성

느헤미야서에서 볼 때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귀환, 재건축, 회복의 단계를 거쳐 언약 갱신으로 나아갔다. 특히 언약 갱신과 체결식을 통해 잡혼의 금지(10:30), 안식일 준수(10:31) 그리고 성전 제의에 대한 지원(10:32-39)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탄생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공동체는 끊임없는 개혁과 갱신을 필요로 하였다. 이것은 제사장 국가로 세워진 이스라엘의 주된 관심사였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사사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개혁을 필요로 했다. 이 개혁은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4-6)는 말씀의 구현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다윗 왕국 시대와 솔로몬 제국 시대는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이 가장 현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였다. 그러나 다윗 왕국의 한계나 솔로몬 제국의 분열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개혁의 대상임을 역설하고 있다. 심지어 선지서들까지도 왕국의 몰락이 이스라엘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으로 묘사되었었는데, 그 심판의 원인은 지속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3차에 걸친 바벨론의 포로 귀환 시대에서도 이스라엘 공동체는 개혁의 대상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1차 귀환자들은 성전 재건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조직적인 외부 세력의 반대로 말미암아 성전 재건 사업을 미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의 책망을 받은 후에야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다. 2차 귀환자들의 당면 문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에스라의 말씀 개혁이 아니었다면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조차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3차 귀환자들 역시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문제점들은 성대한 예루살렘 성 봉헌식 이후 급기야 그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 통치에 순종할 것을 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잡혼 금지와 안식일 준수와 성전 제의 지원에 소홀히 하고 만 것이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속적인 개혁과 갱신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전과 성벽을 갖춘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가 이처럼 부패의 길에 서 있다는 것은 시온의 회복에 대한 선지서들의 메시지가 유형적인 성전이나 성벽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 완벽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견고한 성벽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막강한 나라로 부상했던 솔로몬 제국이 분열되었던 것처럼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만이 하나님의 예언이 최종적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부패는 그곳으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옛 것의 회복이 아닌 전혀 새로운 출발을 가진 새로운 길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옛 것의 회복은 결코 새로운 출발이 아니며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느헤미야서는 율법에 대한 요구를 성취함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하기보다는 전혀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2. 새로운 질서의 세계에 대한 기대

느헤미야의 개혁은 먼저 이방인과의 차별성을 재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1-3절).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신 23:3)는 규례에 따라 이스라엘 무리에 섞인 이방인 무리들을 몰수히 분리시켰다.

이와 관련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도비야가 제사장 엘리아십과 연혼 관계를 이용해 성전에서 한 방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도 해결되었다(4-9절). 이 방은 백성들이 성전에 바친 곡식들을 저장하는 곳이었다. 도비야가 암몬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성전에 들어와 살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이 일로 인하여 도비야가 성전 곳간에서 거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느헤미야는 그 사실을 확인하여 백성들이 십일조와 레위인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백성들을 위해 성전 제의 직무를 감당해야 할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생업을 위해 종사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이것은 성전에서 봉사해야 할 직분자들이 성전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을 불러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고 레위인들을 복귀시키고 백성들이 십일조를 내도록 감독하게 하였다(11-17절).

이와 더불어 안식일 준수의 문제점도 바로 잡았다. 안식일을 모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다. 느헤미야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안식일을 모독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고 지적한 사실(렘 17:19-27)을 상기시키며 안식일에는 어떤 상행위도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안식일에는 레위인들에게 성문을 지키게 함으로서 백성이 범죄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17-22절).

느헤미야가 개혁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잡혼이었다.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는 잡혼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였지만(10:30)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은 유다인들이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자녀들이 히브리어가 아닌 이방인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를 바라볼 때에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이 문제를 대처했다(25-27절). 심지어 제사장들조차도 통혼의 죄를 범하고 있었는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혼인했던 것이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사역에 가장 큰 대적자였던 산발랏이 은연중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와해시킨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엘리아십의 손자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추방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을 통해 느헤미야가 바라보았던 것은 옛 질서의 회복이 아니었다. 느헤미야는 잡혼, 안식일 모독, 성전 제의 불이행이야말로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악으로 간주했다. 때문에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를 순결하고 정결하게 보존해야 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장차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도래할 것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여호와의 공의와 말씀 통치가 구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을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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