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역임. 도서출판 교회와성경 편집인 https://www.facebook.com/ChurchAndBible

페르시아 제국(BC 539-33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일명 크세르크세스, BC 485-464년) 시대에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에스더서의 사건은 아하수에로 3년(BC 483년, 에 1:3)에서부터 아하수에로 12년(BC 473년, 에 3:7)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에스라 6장과 7장에 언급된 사건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이때는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제1차 귀환자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BC 515년)된 이후였다.

1.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한 자들은 성전 제의를 재수립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성전 재건에는 20여 년(BC 536-515)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것은 적대자들의 반대 공작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주변 적대자들의 반대로 인하여 성전 재건 공사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었다. 그 후에도 대적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지속적인 박해를 가하였었다(에스라 4장 강해 참고).

이스라엘 공동체는 대적자들의 박해를 받아가며 성전 재건을 이룩했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서 신앙 공동체를 확고히 세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도 점차 와해되어 가고 있었다. 비록 성전이 재건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소망했던 메시아 왕국 건설은 아직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대적자들의 박해는 그들의 삶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이스라엘 공동체는 점차 주변 정황의 상황에 따라 변질되어 갔던 것이다.

특히 페르시아의 속주인 사마리아의 관리 아래 있던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더 이상 다윗 왕국과 같은 정치 체제를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과 주변 이방인들과 하나의 정치 체제 아래에서 산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여건 속에서 점차 그들과 교류를 확대시켜 나가면서 마침내 이스라엘 공동체 역시 사마리아 속주의 한 일원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이방인들과의 잡혼이었다. 잡혼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을 와해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의 신앙을 회복한 인물이 2차로 귀환(BC 458년)한 에스라였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국가적인 체제가 아닌 신앙 공동체로서 신령한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일깨웠던 것이다.

한편 페르시아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공동체를 멸망시키려는 적대 세력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사건은 아하수에로 12년(BC 473년)에 발생했는데, 그것은 사울 가문의 후손인 모르드개(2:5)와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 가문의 후손인 하만(3:1)과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 의해 고관으로 세움을 받았으며 왕의 신복들조차 그 앞에 절하는 고위직에 오르게 되었다(3:2).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을 함으로서 그를 높일 수 없다는 자세를 취했고 이 일로 말미암아 급기야 하만의 공작으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가 몰살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은 것은 하만이 페르시아의 고위직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하만이 아말렉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아말렉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선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적대 세력이었으며 철저하게 진멸되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출 17:16; 민 24:20; 신 25:17-19).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르드개는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울 왕가의 후손이었다. 결국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오래된 적대 관계가 모르드개와 하만의 적대 관계로 역사상에 표출되었던 것이 에스라서의 주된 줄거리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의 갈등은 출애굽 시대부터 계속된 것이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행군할 때 가장 먼저 아말렉 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 그 시초였다. 이 때부터 모세는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 17:16)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신 25:17-19; 출 17:14; 삼상 15:23)하라는 명령을 부여받았다. 성경에는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의 계속적인 갈등을 기록되어 있다(삿 3:13; 5:14;6:3, 33; 7:12; 10:12; 삼상 27:8; 30:13-18).

이스라엘의 왕국 체제가 출범한 후 사울 왕은 아말렉 족과 그 왕인 아각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사울은 이 명령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하고 말았다(삼상 15장).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이 되었고 마침내 다윗에 의해 사울의 왕조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삼상 28:18). 그리고 사울은 자신이 아말렉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한 병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삼하 1:8). 심지어 히스기야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아직도 멸절되지 않은 아말렉 족과 싸워야 했다(대상 4:43). 이처럼 사울과 아각의 후손들간의 갈등은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속간의 오래된 반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에스더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세부적인 사항들을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 하만은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전체 유다인들에게 분노를 가지기 시작했다. 하만은 유다인들이 페르시아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법률대로 살기를 고집한다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고발하였다(에 3:8).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명분이었고 그 내부에는 페르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멸절시키려는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 하만의 음모를 알지 못하는 아하수에로 왕은 급기야 아달월(2-3월) 13일에 유다인들을 멸절시키라는 칙령을 내리도록 하만에게 허락하고 말았다.

모든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고 했던 하만의 조서(에 3:13)는 사실상 사울이 아말렉 족속에 대해 실패한 일(삼상 15:3)을 대신 반대로 이스라엘에게 행하려는 음모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하자 모르드개는 자신의 사촌동생인 왕후 에스더를 설득하였고 우연하게 발생한 것처럼 일련의 일들로 인하여 상황은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유다인들을 증오하고 죽이려 했던 원수들이 오히려 화를 입게 되었다.

이 때 대적자의 괴수였으며 총 지휘자였던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준비한 높은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을 당하게 됨으로서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과 그 왕을 희생 제물(herem)로 삼으라는 명령이 성취되기에 이르렀다. 이 때 하만의 열 명의 아들도 처형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아말렉 족의 마지막 남은자들이 모두 제거되었다.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지 560년만의 일이었다. 운명이 뒤바뀌자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처형한 사람들의 재산을 차지하지 않았다(9:10, 15). 그들은 사울이 그랬던 것(삼상 15:9-19)처럼 아말렉 족의 재산을 탐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이스라엘이 적들로부터 안식을 누리는 것은 아말렉 족속의 멸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미 모세가 유언으로 남긴 말속에서 예견된 것이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9). 이 임무가 완성되었을 때 이스라엘 공동체는 비로소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에 9:22)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에 의해 가나안 땅이 정복되고 그곳에 제사장 나라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다윗 왕국이 들어서고 솔로몬 제국의 찬란한 문화가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된 사건은 결국 아말렉이 아직도 진멸되지 않았다는 것과도 어떤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아말렉 사건을 되돌아봄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진군하는 것을 방해하는 최초의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반신국적 세력은 아말렉과 같은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아말렉이 철저히 진멸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적대 세력이 무너졌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아말렉의 멸망은 사울 왕이 실패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여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공동체와 이방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시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세상의 여러 강대국들에게 오랫동안 굴복 당해야 했다.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등의 지배력이 그들을 제압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에스라서이다. 에스라서는 이방 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 속에서도 진정 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여호와에 대한 충성이며 신앙 공동체로서 건재하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순종 아래 있다면 어떤 적대 세력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외부의 세력들에 의해 유린된 것은 힘이나 무력과 같은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문제 곧 신앙의 순수성의 문제로부터 야기된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야 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반 신국 세력의 특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서 가져야 할 신앙의 순수성을 바로 세워야 했다.

이스라엘에 향한 적대적 세력들 앞에서 에스더서는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에 4:14) 얻을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다른 데’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암시하고 있다. 곧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유다인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목적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는 영원할 것임을 에스라서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 주관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2. 에스더서의 메시지

에스더서의 주된 관심사는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부림절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에스더서의 주제로서 너무 빈약하다. 왜냐하면 당시 부림절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절기가 아니었다. 아울러 부림절은 성전 제의와 관련된 이스라엘의 절기도 아니었다. 오히려 에스라서는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을 실제적으로 이끄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에스더서에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필연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언뜻 보면 룻기처럼 너무나 잘 짜여진 각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적재적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누군가 짜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 결코 우연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왕후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위를 당한 것(1:21-22)은 모르드개의 조카인 에스더가 왕후로 책봉되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에스더는 다른 여자들처럼 치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자연미만으로도 왕의 마음에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모르드개는 우연히 왕의 내시들이 왕을 모살하려 한 일을 알게 되고 이 공로로 모르드개의 이름은 왕의 일기에 기록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왕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반면에 하만은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았지만 왕으로부터 은 일만 달란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이 상급은 모르드개에게로 돌아갔다.

몇 년이 지나 모르드개가 하만의 음모를 알고 에스더에게 알렸을 때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았음에도 왕 앞에 나아갔고 왕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왕은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왕의 연대기를 시종으로 하여금 읽게 하였고 시종은 모르드개에 관련한 사건을 읽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하만의 음모는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유다인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한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끊임없이 암시되고 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 백성에 대한 섭리적인 보호하심의 결과였음이 밝혀진다. 이처럼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통치에 대하여 기록하면서도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시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하여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운명론과는 철저하게 구분된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역사를 이끄시는 목적들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그럴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신실성을 신뢰하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3-14)는 모르드개의 말은 인간의 책임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에스더서는 성경의 다른 구속사적인 사건들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속사적인 사건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곧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지속적인 갈등의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 17:16)는 모세의 선언이 마침내 에스더서에서 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라”(신 25:17-19)고 지시하신 여호와께서 아말렉을 제거시키신 바로 그 하나님이셨다.

이 사실은 구속사의 흐름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모르드개나 에스더처럼 구속사의 흐름에 참여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전한 믿음과 순종뿐이다. 이것은 사울의 불순종과 그 결과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후손들이 어둠의 세력 아래 고통을 받았던 일의 종착점이다. 따라서 우주를 다스리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에스더서는 역사의 주권자로서 하나님을 가장 명확하게 증거하는 책인 것이다.

3. 반 셈족주의(Anti-Semitism)에 대한 이해

유다인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일컬어지는 반 셈족주의는 애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애굽은 히브리 노예들을 적절한 수로 유지시키기 위해 출산한 사내아이들을 죽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히브리인들을 가나안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유월절 사건을 가져왔고 이로 인하여 애굽은 무력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이방 민족의 침략은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 민족들은 반 셈족주의의 화신처럼 이스라엘을 침략했고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들에 의해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반 셈족주의가 가장 왕성하게 나타난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지속된 에돔과의 적대감에서 시작되었다. 에돔과 이스라엘의 적대 관계는 다윗 왕국에 의해 일단락 되었지만 이후로도 에돔은 세력을 얻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그러나 이보다도 뿌리깊은 반 셈족주의는 아말렉과의 적대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출애굽 시대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적대 관계는 무려 1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런 점에서 아말렉은 반 셈족주의의 대표적인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는 적대적 성질과 아말렉의 적대적 성질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다른 이방 족속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반면 아말렉의 적대 관계는 하나님의 경영과 상관없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아말렉은 하나님의 나라를 스스로 대적하는 반신국적 세력으로 대표되었던 것이다.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 17:16)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반 신국 세력의 화신으로 단정하셨음을 선포한 것이다. 이것은 아말렉의 적대 관계를 하나님 나라 건설을 방해하고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의 대표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아말렉 족속은 지상에서 영원히 멸절되어야 할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때문에 에스더서가 반 셈족주의자들에 대한 대응의 차원이나 보복의 차원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에스더서는 반 셈족주의에 대한 징벌을 말하기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에스더서는 반 신국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자의적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제사장 나라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범민족적이며 우주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오로지 유다인들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순순한 신앙을 통해 세계 모든 민족이 여호와의 신앙에 동참할 것을 위해 존재하였다. 단,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적대적인 세력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했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없어야 했다. 그리고 반 신국 세력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심판하신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세상의 모든 세력이 여호와의 통치 아래 들어와야 할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