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종교개혁 신학세미나

제2종교개혁연구소(소장 임태수 목사)는 오는 9월 26일 제6회 제2종교개혁신학 세미나를 "루터 종교개혁을 넘어서는 제2종교개혁"이라는 주제로 아래와 같이 열린다.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기념 세미나들이 이곳저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들 세미나들에서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루터가 가르친“오직 믿음으로만”의 구원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믿음으로만”의 구원론 때문에 오늘의 한국교회의 위기가 왔는데,“오직 믿음으로만”의 구원론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만”을 구호로 내걸었지만,“행함”도 강조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만”의 주장이 너무나 강해서 루터가 말한 “행함”은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 이제 우리의 구호를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제2종교개혁이 주장하는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구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야고보서에 나타난 행함 있는 믿음”(임태수 박사)과 “칭의와 성화의 바른 이해”(김영한 박사)를 통해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의 제2종교개혁신학을 심도 있게 살펴보게 된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시는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셔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넘어서는 제2종교개혁운동을 위하여 기도해주시고 적극 참여하여주시기 바란다.

임태수 박사(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호서대 명예교수)

제6회 제2종교개혁신학 세미나

주 제: 루터 종교개혁을 넘어서는 제2종교개혁

일시 : 2017년 9월 26일(화) 오후 1시-5시

장소 :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서울 종로구 연지동 135. 전화: 02-741-4361 ‧ 4370)

전화 : 임태수 010-5239-5469 제2종교개혁연구소

31089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고 2길 49(두정동 1847)

Korean: http://cafe.daum.net/secondreformation

English: http://cafe.daum.net/secondreformation2

 

강의주제 및 일정

제1강좌: 13:00-14:00

임태수 박사(호서대 명예교수) : “야고보서에 나타난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I)

(1)“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루터) 아닌, 복음의 서신”

(2)“야고보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루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휴식: 14:00-14:10

제2강좌: 14:10-15:20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ㆍ기독교학술원 원장) : “칭의와 성화의 바른 이해”

제3강좌: 15:20-16:30

임태수 박사 : “야고보서에 나타난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II)

(3)“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

(4) 두 종류의 믿음 : “행함 있는 믿음”과 “행함 없는 믿음”

(5) 두 종류의 의(義) : “믿음으로 의(義)”와 “행함으로 의(義)”

종합토의: 16:30-17:00

야고보서에 나타난 행함 있는 믿음

   - 임 태 수 박사(호서대명예교수/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

1.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 아닌 “복음의 서신”

종교개혁자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폄하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루터는 1522년 9월에 출판된 이른바 「9월성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야고보서를 비판하였다.

첫째, 야고보서는 바울과는 반대로 “행위에 의한 의(義)”를 가르친다.

둘째, 야고보서는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설교하며,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만”을 설교한다.

셋째, 요한복음, 바울서신 등 다른 책들과는 달리“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야고보 서신에는 복음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루터가 말한 바와 같이 야고보서가 지푸라기처럼 무가치한 책인가? 그렇지 않다. 루터가 야고보서를 무가치한 책으로 본 것은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는 종교개혁의 관점 때문에 야고보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였지, 결코 야고보서 자체가 무가치한 때문은 아니었다. 루터는 야고보가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만을 설교한다”고 말했는데, 야고보서는 복음서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복음의 서신”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야고보서는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에 관해 말한다.

야고보는 1:1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주”(kyrios)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야고보서에 “주”(kyrios)란 말이 15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5번은 하나님을 가리키고(3:9; 5:4,10,11[두번]), 10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1,7,12; 2:1; 4:10,15; 5:7,8,14,15). 이것은 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kyrios)로 인정하고 야고보서를 썼음을 말해준다.

다음으로 야고보서에 사용된 12개의 “믿음”(pistis)이란 명사 가운데서 1:3,6; 2:1,5,14,17,18,20,26; 5:15 등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말하고, 나머지 2개만(2:22,24)이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에 대하여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2:19,23에서 “믿는다”(pisteuō)는 동사 형태로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에 대하여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야고보서에 사용되고 있는 믿음에 관한 말은 명사와 동사를 합하여 모두 14개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0개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말하고, 4개가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인 믿음”에 대하여 말한다. 다시 말하면 야고보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야고보서 전체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3. 행함 있는 믿음(fide cum opere)으로 구원

1장에서 행함을 강조한 야고보는 2장에서는 더욱 강도 높게 행함을 강조한다. 야고보는 2:1-13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때, 부자들은 환영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냉대하는 행태를 비판하면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2:14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질문한다. 행함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어서 2:15-17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5-16절 말씀은 마 25:31-46의 최후심판비유를 연상시킨다. 이 비유에서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입힌 양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천국)에 들어가는” 은혜가 주어졌지만(마 25:34-40),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보고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지 않고,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입히지 않은 염소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지옥)에 들어가라”는 저주가 주어졌다(마 25:41-46). 이 최후심판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야고보는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야고보가 말한 구원의 길이,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길과 같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행함 없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주어지지 않고, “행함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만 구원이 주어지는 구원론이 복음서와 야고보서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야고보의 구원론은,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복음서의 구원론(마 7:21; 24-27; 25:31-46; 눅 10:25-28; 요 5:29; 8:51-52))과,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바울서신의 구원론(고전 6:8-10; 13:1-7; 갈 5:19-21; 앱 5:5)과 일치한다.

이런 의미에서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 아니요, 복음서와 같은 구원의 진리를 담고 있는 “복음의 서신”이다. 복음서와 바울서신, 그리고 야고보서가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행함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Faith alone, without works, justifies, makes free and saves)고 주장한다. 이런 루터의 주장은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주장이다. 루터의 이런 “오직 믿음으로만의 구원론”은 성경적인 제2종교개혁의 “행함 있는 믿음(fide cum opere)으로의 구원론”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4. 두 종류의 믿음 : “행함 있는 믿음”과 “행함 없는 믿음”

2:18에서 야고보는“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야고보는 두 종류의 믿음 즉 “행함 있는 믿음”과 “행함 없는 믿음”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행함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행함 없는 믿음”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루 속히 우리가 “행함 없는 믿음”을 “행함 있는 믿음”으로 바꾸지 않으면, 비어가고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5. 두 종류의 의(義):믿음으로 얻는 의(以信義化)와 행함으로 얻는 의(以行義化)

2:21-23에서 야고보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아브라함이, 행함으로도 의롭다함을 받은 사실을 설명한 다음, 2:24에서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의(義)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됨”(以信義化)과 “행함으로 의롭게 됨”(以行義化)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은 루터 이후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인정되고 있지만,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가 2:24에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고, 복음서(마 5:20; 마 25:37)와 바울서신(롬 2:13; 8:4)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 아니요 복음서의 진리를 담고 있는“복음의 서신”이다.

이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루터의 종교개혁신학을 넘어서서, “행함 있는 믿음(fide cum opere)으로 구원”, “두 종류의 믿음 즉 ‘행함 있는 믿음’과 ‘행함 없는 믿음’”, “두 종류의 의(義) 즉 ‘믿음으로 얻는 의’(以信義化)와‘행함으로 얻는 의’(以行義化)를 주장하는 제2종교개혁신학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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