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9일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미국 역사상 최대의 구두쇠라고 알려진 히티 그린이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이분이 1916년 세상을 떠났는데 저금통장에 1억불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1916년에 1억불이면 도대체 얼마입니까? 그런데도 이 할머니는 평생 차가운 오트밀만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데우는데 드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래요. 이 할머니가 얼마나 구두쇠인가 하면 아들이 다리가 아파서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도 그냥 두면 혹시나 나을까하고 병원 가기를 미루는 분입니다. 결국 아들의 다리는 고통 가운데 방치되다가 절단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일 억불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장 부자이면서도 가장 극빈자처럼 살았던 이 할머니처럼 사시겠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얼마나 유익하게 사용하겠습니까? 없어서 그렇지 있다면 누가 이 할머니처럼 살겠습니까?

그러나 에베소서를 쓰고 있는 사도는 이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성도와 교회의 현실이 되지 않도록 서론적인 인사가 끝나자 말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어마어마한 통장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 사도는 3-14절까지의 긴 문장을 중간에 쉼표도 없이 단숨에 설명합니다. 개역한글성경은 3-6, 7-10, 11-12, 13-14절의 네 문장으로 번역해놓았지만 원래 헬라어 원문으로는 3-14절까지가 하나의 문장입니다. 어떤 학자는 자신이 헬라어를 읽으면서 만난 문장 중 가장 괴물 같은 문장이라고 할 정도로 긴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긴 문장의 골자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지금 사도가 말하는 신령한 복이 무엇일까요? ‘신령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뉴마티코스’는 성령께 속하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복이란 성령께 속한 복이며 성부가 성령을 통해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복은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다는 것은 땅의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인위적인 복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노력이나 사람의 실력을 뛰어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복이며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복이 있습니다. 건강의 복, 재물의 복, 자식들이 잘 되는 복, 명예의 복, 다 귀한 복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복들은 영원한 복이 아니라 잠시잠간의 복이고 실체적인 복이 아니라 그림자 복입니다. 영원하고도 참된 진짜 복은 사도가 소개하는 신령한 복입니다. 하늘에 속한 복이며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복이 아니라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을 통해서 택한 자들에게 주시는 주권적이고도 일방적인 복입니다.

문제는 이 복이 하늘에 속한 복이고 신령한 복이어서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당장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복이 아니기에 사람들이 귀한 줄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가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4-6절까지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를 열거하고 나서도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함이라고 하고, 7-12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는지를 말하고 나서도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함이라고 찬송을 말합니다. 그리고 13-14절에서는 성령이 그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설명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고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후렴구를 더합니다.

무슨 뜻이죠? 하나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통해 우리 각 사람에게 마련해주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는 영적통장의 어마어마한 실체를 안다면 어떻게 찬송하지 않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부요한 자이면서도 가장 가난한 자처럼 끝없이 이 땅의 무엇에 목말라하며 사는 우스운 현실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이 신령한 복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저와 여러분의 눈을 열어주셔서 바울이 감격 가운데 소개하고 있는 이 놀라운 복에 대해 깨닫고 감사하고 찬송할 뿐 아니라 가장 부요한 자로 이 복을 누리고 나누어주고 사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실 에베소서는 전부 이 신령한 복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수도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배워가도록 하고 오늘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도가 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이단의 괴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추종자를 박멸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서 유대 당국에게 공문을 받아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멸하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이단의 괴수라고 믿었던 인물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바울이 받았던 충격을 상상해보십시오. 이 깨달음은 사도 바울의 생애를 완전히 뒤집어놓았습니다. 바울의 감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1:2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고 했죠. 1:5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집에도 아버지가 있는데 왜 저 사람들은 또 다른 아버지를 부를까? 그냥 하나님, 거룩한 분, 지존자, 절대자, 이렇게 고상한 단어가 얼마나 많은데 꼭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일까? 더군다나 이북에서 오신 분들은 ‘아바지’라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아들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복인지요?

특별히 요즘 제가 육신의 아버지의 연로함과 그로 인한 연약함을 보면서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세월이 흐르면 자식들이 돌보아드려야 할 연약한 아버지입니다. 기억도 없어지고 정신도 없어지고 힘도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며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늘의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를 돌보시는 쇠하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눈도 빼어주고 간도 빼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는 마음뿐일 때가 많습니다. 아니 마음과 달리 육신이 늙고 쇠하면 오히려 자식의 눈이 필요하고 자식의 간이 필요하고 자식의 돌봄이 필요한 것이 이 땅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우리 아버지는 눈과 간만이 아니라 당신의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고 죽어 마땅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아들의 지위를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연약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영원토록 돌보기 위해 친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아버지의 영원한 보호와 양육과 사랑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과 은혜는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방해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부어진 복이고 심지어 창세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예정된 복이고 때가되어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진 복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복은 우리가 아껴서 모아 만든 복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력으로 쟁취한 복도 아닙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조건도 없고 자격도 없지만 그의 기쁘신 뜻대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함을 입어 누리게 된 정말 예상 밖의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고 고달플 때 삶의 현장을 잠시 벗어나 자연으로 나가 지친 마음을 힐링 하곤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치고 힘들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묵상해보면 힐링을 넘는 찬송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세상 모든 풍파가 여러분을 힘들게 할 때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고 낙심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묵상해보십시오. 세상 걱정근심이 우리를 누르려고 할 때마다 세상의 권세가 우리의 앞길을 막을 때마다 가만있지 마시고 오늘 사도가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설명하고 있는 하늘의 우리 아버지가 마련해주신 엄청난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고 세어보면서 힘을 얻고 이 복을 누리고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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