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 항상 기뻐하라"

아르바 미님(Arba Minim, Four Species)

레위기 23장4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즉 초막절에는 화를 내거나 싸우면 안되며 슬퍼해도 안된다. 이때는 기뻐하라는 명령을 받은 시기이다. 

느헤미야 8장을 보면 7월1일 나팔절에 모든 백성이 수문앞 광장에 모여서 새벽부터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와 레위인들이 특별히 만든 나무 강단에 서서 율법책을 낭독하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 뜻을 깨닫게 해주자 모든 백성들이 애통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울고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그 이튿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더 자세히 여호와의 율법을 알고 싶어서 에스라에게 와서 율법책을 보니, 그 동안 칠월에 있는 장막절을 지키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선포하고 율법책에 있는대로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키라고 공포하고 그대로 행했다.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찌니라 하였고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 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신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느 8:13-18)

이날에는 아름다운 나무실과와 종려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서 7일간 즐거워하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4가지는 '이 땅의 사방'을 의미하며  이 네가지 식물을 '아르바 미님'(Arba Minim)이라고 부른다.

1) 아름다운 나무실과: 에트로그 Etrog : 큰 레몬처럼 생긴 과일 : 맛과 향이 좋음

2) 종려나무(date palm tree)의 가지 : 룰라브 Lulav : 잘 익고 녹색이며, 잎이 닫혀 있다 : 맛은 있으나 향이 없음

3) 무성한 가지: 하다심 Hadasim, Hadass : 떨기나무(myrtle tree, 은매화)의 가지로 잎이 있는 큰 가지 : 향은 좋은데 맛이 없음

4) 시내 버들 : 아라보트 Arabot, Aravah : 버드나무(willow tree)의 가지 : 맛과 향이 모두 없음

토라(Torah)에서는 왜 아르바 미님 의식을 명령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지만, 수천년동안 랍비들은 다양한 해석을 제시해왔다.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는(the midrashic collection Leviticus Rabbah 30:12) 4가지 유형의 유대인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첫째로 아름다운 나무 실과인 에트로그(Etrog)는 맛과 향기가 모두 있으며 토라를 공부하고 선한 행동을 하는 유대인을 상징한다. 둘째로 맛은 있으나 향기가 없는 종려나무 룰라브(Lulav)는 토라를 연구하하지만 선한 행동을 하지 않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셋째로 향기는 있으나 맛(taste)이 없는 무성한 가지 하다스(Hadass, Myrtle)는 율법을 공부하지 않지만 선을 행하는 유대인을 말한다. 넷째로 시내 버들인 아라바(Aravot)는 맛과 향기 모두 없으며 율법을 공부하지도 않고 선행도 하지 않는 유대인을 상징한다.

예일 대학의 교수인 폴 블롬(Paul Bloom)은 “First Person Plural”에서 수시로 하나의 식별 가능한 실체로 생각되는 우리의 성격이 실제로 우리 심령의 깊은 틈에서 서로 상호 작용하는 많은 다른 "자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 자아 중 하나가 다른 자아를 통제하여 독점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처럼 우리 안에는 에트로그와 룰라브, 하다스 그리고 아라바와 같은 네 가지 성격이나 성향이 모두 존재한다. 때로는 세련되고 현명한 에트로그처럼 행동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라바의 거칠고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악한 부끄러운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합리적이며 현명한 존재로 보고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의 내면에 있는 아라바가 우리의 창의력, 성공하려는 욕망,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웃고 삶을 즐기는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처럼 초막절 마지막날에는 우리 내면의 아라바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통하여 다른 좋은 성격들과 통합된 삶을 살아가도록 외치는 것이다. 

아르바 미님을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전인적 인간"이 되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하면서, 토라는 마침내 "전인적 인간이 되는 길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이들이 아르바 미님을 들고 흔드는 것은 진정으로 행복한 춤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 19:7-8)

수콧(초막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러한 네가지 성향 중에 어느 하나만을 더 강조하지 않고 모두 똑같이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 앞에 흔들며 축복기도를 하게 된다. 물론 맛과 향이 모두 있는 에트로그는 묶지 않고 다른 세가지만 하나로 묶는다.

아르바 미님에 흠이 없는지 살피는 모습

이 네가지 식물은 모두 잘 자라기 위하여 물이 많이 필요한 식물들이다. 그래서 이제 건기를 지내고 우기를 맞기 전에 이 식물들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흔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히 내려주셔서 농작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아르바 미님은, 이것을 들고 여호와 하나님께 축복 기도를 해야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식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도할 때 손에 들어야 하는 아르바 미님을 고르기 위해 세심하게 어디에 흠이 없는지 살피며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것을 고르며 기도를 위한 준비를 한다. 특히 맛과 향이 있는 에트로그는 돋보기까지 동원하여 흠이 없는 것을 고르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얼마나 흠없는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르바 미님에 흠이 없는지 살피는 모습

수콧(장막절)에는 사람들이 에트로그(etrog)와 종려나무가지와 화석류와 시내버들을 들고 아침 기도를 드리기 전에 동서남북 사방을 향해 흔들면서 축복기도를 하는데, 아름다운 나무 실과인 노란색의 에트로그만 왼손에 들고 나머지 3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오른손에 들고 흔든다. 특히 이는 동서남북 사방의 의인과 죄인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초막절 셋째날이 되면 이스라엘 통곡의 벽 앞에서 오전에 '브라카트 코하님'이라고 부르는 제사장의 축복 예식이 있다. 이날 '코헨(Kohayn, Kohen, Cohen)'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통곡의 벽 제일 앞에 나아갈 수 있는데, '코헨'이라는 이름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던 가문이기 때문이며, 히브리어로 제사장을 '코헨(כֹּהֵן Kohen)'이라고 한다. 해마다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이 통곡의 벽 앞에 모여들지만, 그들중 '코헨'이란 이름을 가진 유대인들이 제일 앞자리에 서게 된다.

통곡의 벽 앞에 기도하러 모인 코헨 제사장들

'코하님(כֹּהֲנִים‎ Kohanim)'은 코헨의 복수형으로 제사장의 가족을 뜻한다. 제사장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성막과 성전에서 매일 제사 의식을 위하여 섬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코하님의 자손들 중에는 코헨이란 성을 갖지 않은 이들도 있으며, 유대인이 아닌데도 코헨이란 성을 갖고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코헨이라는 성이 많이 변형되었다.

Cohen, Cowen, Cahn, Cahan, Carne, Cohn, Cone, Conn, Conway, Cohan, Cohaner, Cahanman, Chaplan, Keohan, Kaplan 

유대인들의 성을 보면 아론슨(Aronson), 코헨(Cohen, Kohen), 카간(Kagan), 카하나(Kahana), 카플란(Kaplan), 카츠(Katz), 래파포드(Rappaport) 등의 이름이 있는데,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의 조상들이 과거에는 제사장(priest)또는 성직자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형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의 아들들의 후손들이 제사장직을 맡게 하셨다. 이 직분은 누구보다 정결하고 구별된 직분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섬길 수 있도록 특별히 선택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제사장의 역할이 사라졌지만, 그들의 후손들이 큰 명절에는 백성 앞에 나와서 율법을 낭독하기도 하고, 축복 기도도 한다.

제사장 '코헨(כֹּהֵן)'들은 '탈리트(Talit)'라고 하는 기도 가운을 뒤집어 쓰고 기도한다. 이 탈리트는  광야에서 텐트 생활을 했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들은 전심을 다해 합심하여 유대인을 위한 축복기도를 한다.

탈리트를 입고 기도하는 코헨

특히 통곡의 벽 광장에는 수돗가가 있는데, 이들은 정결례에 의해 그곳에서 손을 씻는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축복기도가 끝나면 수돗가에서 금주전자를 들고 "코헨?"하면서 제사장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진짜 성전이신 예수께서 오심으로 더이상의 성전이 필요없어졌으므로 예수님의 예언대로 A.D.70년에 성전이 파괴되어 레위인의 직무가 사라졌지만,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3 절기 중 유월절과 초막절에는 레위인과 제사장을 볼 수 있다. 이날 레위인은 제사장들의 손을 씻어주기 위하여 금주전자를 들고 제사장들을 섬기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초막절의 크라이막스는 마지막날이다. 이날은 명절의 큰 날로 아르바 미님을 들고 토라 주위를 일곱 바퀴 돌며 기도한 후에 버들가지를 바닥에 내려쳐서 완전히 부순다. 이는 그들의 죄가 그렇게 완전히 부숴지고 구원을 받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이날에는 여기저기에서 버들가지를 바닥에 내려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버들가지를 바닥에 내려치는 모습

유대인들은 기도하러 갈 때에 반드시 자녀를 데리고 간다. 한국인들은 교회에 기도하러 갈 때에 아이를 놔두고 가거나 누구에게 맡기고 어른들만 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기도하는 경건의 습관을 갖도록 반드시 기도하러 가는 곳에 자녀를 데리고 간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신앙을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추석은 가족들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차례를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상숭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주안에서 기뻐한다. 이날 떨어져있던 가족들이 원근각지에서 와서 함께 모이는데, 가족들이 모인 7일 동안 부모는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줄 수 있는 날이므로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은 초막절에 가족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나님을 배운다.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쳐주는 아버지

유대인들의 리더들은 성경을 더 알고 싶어서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를 찾아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자마자 그들은 귀로만 듣고 끝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를 보였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초막절을 지키라는 명령을 하나님께서 하셨으나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 이후로 한번도 그 말씀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조상들의 불순종을 깨닫자 그들은 회개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말씀에 기록된대로 최선을 다해 초막절을 지켰다.

그들이 초막절을 하나님의 지시대로 열심을 다해 지키게 되었을 때에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기쁨'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께서 주시는 선물이 '기쁨'이며, 항상 주안에서 기뻐하는 삶이 진정한 안식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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