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분별을 위한 신학좌표》라는 책을 쓴 저자로서

고경태 목사

영(靈), ‘령(靈)’으로 두음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두음법칙이 우리 어법에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래서 성(性)씨(氏)에서는 예외적으로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이(李)는 리(李)라고 한글표기해도 무방하다. 가장 먼저 적용한 씨들은 류(柳), 림(林), 라(羅) 등이 있다. 두음법칙이 한글창제원리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언어사용의 편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다. 두음법칙이 작용해서 ‘령분별’이 아니라 ‘영분별’이라고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분별(分別)’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름과 틀림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다름이 틀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분별’은 다름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다.

틀림은 ‘리(離)’이다. ‘분리(分離)’는 하나에서 둘이 되는 틀림이고, ‘분별(分別)’은 하나에서 서로 다름이다. 영분별은 틀린 영을 찾자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름을 잘 인식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분별을 해야 질서와 조화가 가능하다. 선한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분별 능력이다. 분리 본성은 사탄, 마귀(魔鬼)에게 있다.

‘구(區)’에 있는 ‘분별(分別)’, 구분(區分)과 구별(區別)이다. ‘구분’은 한 공간 안에서 차이(差異)를 따라 정리(整理)한 것이고, ‘구별’은 성질(性質)을 따라 다른 방을 정리(整理)한 것이다. 예 1) 교회에서 직분(職分)은 구별(區別)하고, 직분 안에 구분(區分)은 목사와 장로, 집사이다. 예2) 교회에서 성도를 구분하는 것은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세속 가치를 사용하면 안 된다.

리(離)와 연결된 어휘, 분리(分離)와 별리(別離/이별(離別))이다. ‘분리(分離)’는 한 개체에서 나뉘는 것이고, 유사어는 ‘이탈(離脫)’인데 한 개체가 모체에서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다. 별리(리별)은 잠정적으로 분리된 상태이고, 어느 한쪽이나 양쪽이 다시 하나를 원하는 상태이고, 하나가 되지 못한 상태이다.

‘분(分)’은 나누다는 뜻이다. 구분(區分), 분리(分離), 구분과 분리는 상당히 다른 뜻임을 앞에서 제시했다. 구분은 하나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분리는 하나에서 둘이 되는 것이다. 분리시키는 행동을 ‘분할(分割)’이라고 한다. 분리는 서로 합의에 의해서 분리되는 것이고, 분할은 타력(他力)에 의해서 박리(剝離)되는 것이다.

다른 두 개체가 모이는 것을 ‘이합(離合)’이고, 모임에서 흩어지는 것은 ‘집산(集散)’이다. 인생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이다. 인간은 이현령 비현련(耳懸鈴 鼻懸鈴)을 능수능란(能手能爛)하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분별(分別)’을 하기 위해서는 ‘계량화(計量化)’를 해야 한다. 계량화를 위해서는 캐논(cannon, 잣대)이 필요하다. 필자는 캐논을 ‘좌표(座標)’라고 제시했다. 자기 좌표는 유동적이고, 타인의 좌표도 유동적이다. 절대 좌표와 자기 좌표를 명확하게 인식하면, 타인의 좌표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학함에서 절대좌표를 연구자가 고백해야 하고, 자기좌표도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자기좌표를 절대좌표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무서운 독단이다. 절대좌표가 없는 것도 문제인데, 자기좌표를 절대좌표로 놓는 것은 더 위험하다.

지도자는 반드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분별력을 길러야 하는데, 분별력 향상은 자기좌표와 절대좌표를 명료하게 아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람을 아는 지식을 제시했다. 필자는 절대좌표와 자기좌표로 제시한다. 필자는 신학진술을 목표로 하지 않고, 신학과 신앙분별을 목표하기 때문에 ‘좌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참고) '분별(分別)'은 451년 칼케돈 신경의 핵심 네 단어를 이해하는데 유익하다. "혼합없이, 변화없이, 분열없이, 분리없이(inconfuse, immutabiliter, indivise, inseperabiliter)"는 한 위격(성육신(Deus-homo, Anhypotatia)의 신인위격)의 두 본성의 신비적 연합에 대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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