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목사

‘값싼 은혜(Cheap grace)’? 문자란 기록하면 되는데, 그것이 의미를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값싼 은혜’라는 문자는기록할 수는 있지만, 그 의미가 형성될 수 있는 문자 조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창안한 사람은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이다. 본회퍼 목사가 ‘값싼 은혜’라는 어휘를 제안한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 그 상황을 규정한 상황적 어휘이다.

신학함에서 상황에 대한 인식과 문서(Text) 중심을 잘 고려해야 한다. 본회퍼가 제창한 ‘값싼 은혜’는 상황 인식을 철저하게 고려해야 할 어휘이다. 본회퍼가 사용한 ‘값싼 은혜’는 히틀러의 파시즘에 동조한 독일 루터파 국가교회를 향한 비판이었다. 당시 히틀러 치하의 아리안 민족주의를 기초로 한 만행에 동조하는 독일교회를 철저하게 거부한 것이다. 결국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과정까지 참여하게 된다(cheap grace vs costly grace, <제자도의 대가>).

신학자 본회퍼의 천재성, 창조성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그가 학문을 시작할 무렵, 형성된 나치 정권에 즉각 항거했고, 결국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전혀 의미가 없지만, 본회퍼에게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만약’ 본회퍼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오래 살면서 신학을 했더라면, 칼 바르트보다 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심오하고 예리한 필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독일 신학이 약해진 한 이유도 본회퍼의 절명(絶命)이라고 보고 싶다.

‘값싼 은혜’, 본회퍼는 히틀러 나치 정권을 옹호하는 교회가 안위하는 모습에 값싼 은혜라고 배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사정권에 편승한 교회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치 정권과 군사 정권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나치 정권은 민족우월주의를 기초로 ‘타 민족’을 말살하는 것이었고, 군사 정권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자기 민족’을 압제하는 형태였다. 히틀러 나치와 대한민국의 군사 정권은 성질이 전혀 같지 않다.

그리고 독일은 기독교 사회였고, 대한민국은 다종교 사회이다. 독일 교회가 나치 정권에 준 것은 ‘죄의 칭의’, 타민족 압제의 정당성이고, 한국 교회가 군사 정권에 준 것은 ‘아부와 굴종’이다. 신학 구도에 의해서 군사 정권에 유착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탐욕과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두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값싼 은혜’을 부착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국은 기독교화된 사회가 아니고, 샤머니즘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기복주의’라고 하는 비판은 정당하지만, 비기독교 사회 구조이고 기독교 정치 원리를 교회에 적응시키지도 않은 구조에 ‘값싼 은혜’를 대입시키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한국 교회는 ‘값싼 은혜’가 문제가 아니라, ‘기복주의’와 ‘유교적 계급의식(사농공상)’이다. 그리고 성급하게 서구 사상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한 예로, 한국 교회에 만연한 ‘직분주의’를 ‘값싼 은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계급의식(호칭 문화)’에 기초한 것으로 보아야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 36년의 충격이 이제야 완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문과 일본어 사회에서, 한글로 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 100년이 되지 않는다. 한글로 학문을 구축할 수 있는 지식 구조를 만드는 것을 추구하자. 외국 개념을 한국에 넣어서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추구하려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다. 기초 구조가 없는 한국 지식 사회에 붙어 있는 외국 개념을 잘 정립해서, 기초가 튼튼한 한국 의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더 많은 외국 개념을 우리의 튼튼한 구조에 부착한다면 멋진 의식 체계를 수립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기복주의와 신비주의가 심각하다. 세계교회는 신비주의로 점철되었다. 신비주의는 두 방향으로 정당성을 갖고 있다. 한 방향은 열정주의로 포장해서 정당성까지 확보했고, 다른 방향으로 합리주의로 포장해서 정당성을 갖고 있다. 신비주의의 거장인 스웨덴보그(Emanuel Swedenborg, 1688-1772)의 사상이 논란이 될 정도로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 교회가 ‘값싼 은혜’를 구축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기복주의와 세계교회의 신비주의의 소용돌이에 한국 교회가 함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학문은 ‘기복(祈福)’과 ‘신비주의(神秘主義)’를 싫어한다. 인간성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계시 학문은 계시의존 사색을 하기 때문에, 기복과 신비주의가 들어올 수 없다. 그 세계에 '값싼 은혜'도 불가능하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세상, 공의와 자유가 실현되기 때문이다(요 1:14,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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