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처방(5) : 왜 나의 구원이 흔들리는지? 그 이유를 점검하라

이대희 목사/ 예즈덤 성경하브루타 연구소 소장,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전 서울장신대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 대학교 성경학 박사과정 수료,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이대희 지음, 베이직북스, 2016 세종도서 올해의 책 선정) <유대인의 탈무드식 자녀교육법> 외 200여권의 성경공부와 하브루타 관련 도서 출간. 지난 20여 년 동안 성서한국, 성서사람, 성서교회 비전을 갖고 한국형 예시바 성경학교인 예즈덤성경학교에서 (매주 월요일) 하브루타 방식으로 66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유대인교육과 밥상머리를 오랫동안 연구했으며 현지 이스라엘의 정통 마을과 회당과 가정, 미국의 유대인 공동체를 방문하여 안식일과 회당예배와 탈무드 토론에 참여한 경험과 15년 넘게 밥상머리를 전파하고 있는 유대인자녀교육 전문가이며 사회적으로도 수많은 강연 경력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원을 얻었지만 실제 이 세상에서 삶은 구원 받은 자처럼 살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우리는 한번쯤 정말 자신이 구원 받았는지 의문을 제기 한다. 정말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면서 심한 자책감을 가질 수 있다. 정말 구원을 받지 않아서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연약한 육신의 모습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가 말씀을 잘 실천하지 못한다 해서 영혼구원까지 의심하는 것은 아직 구원을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영혼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그렇다면 왜 육신까지 구원하여 온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죄악에서 출생했기에 영혼은 구원을 받지만 육신은 아직 구원을 완전히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여기서 구원의 혼란이 생긴다.

육신이 온전히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죽어야 해결된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육신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그 육신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비로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온전하게 된다.

이것을 오해했던 한 사람이 성경(요 3장)에 나온다. 그는 바리새인 중에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그러면 사람이 두 번째 모태로 들어갔다가 난다는 말입니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고 말씀하신 장면이 나온다. 니고데모는 영적으로 거듭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그것을 육적인 구원으로 오해를 했다. 이것은 지금 우리 구원의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이 자꾸 흔들리는 이유는 니고데모와 같은 혼동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구원을 받은 것은 영적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영적 사건이다. 만약 육신적인 행함으로 이해를 하면 구원에 혼동이 온다.

영은 영이고 육은 육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온전히 들어가는 것은 죄악 된 육신의 장막을 벗는 그날에 완전히 이루어진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에서 살 수밖에 없다. 물론 영으로 충만하면 그 영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은 성령이 충만할 때 이루어지는 일이다. 보통 때는 성령 충만함이 없다 보니 육신에 이끌리며 죄를 범하다 보면 자꾸 구원받은 사실 까지 의심이 생긴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 하니까 예수님처럼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가 늘 성령으로 충만하기 어렵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일지라도 세상에서 여전히 육신의 지배를 받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한 것을 우리 주님은 잘 아신다.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 하신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먼저 연약한 자신의 육신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육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날마다 회개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구원 이후에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다. 때때로 넘어지고 힘들어도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일어선다면 그것이 구원 받은 자의 모습이다. 그렇게 힘쓰다 보면 언젠가는 주님이 우리 속에서 구원을 이루실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영의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육의 온전한 구원의 날을 소망하며 사는 존재다.

 

구원은

자기가 죽었다고 인정하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다

 

구원에 대한 믿음도

날마다 자기가 죽은 자로 여기면서

구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다

 

 

6.25 한국전쟁 긴박한 전투 중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성찬식을 드리는 미군들, 출처: << 국가기록원 제공 >>
* 6.25 한국전쟁 중 미군 주일 예배, 개울가에서, 1950.8.15., 한국전선, 출처: << 국가기록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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