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25)-임승훈 박사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과도한 감사만큼 아름다운 지나침은 없다” -라 브뤼에르

중독(中毒)은 유해물질에 의지하려는 약물중독이나 또는 그에 대한 정신적 의존증을 일컫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의 것들은 대개 중독성이 있다. 건강을 위한 복약(服藥), 몸을 튼튼하게 하는 운동, 기호식품이라 하는 녹차, 커피, 술과 담배 등, 부자가 된다고 착각하게 하는 복권, 도박 등이 모두 그러하다. 약은 좋다 해도 중독성이 있다. 늘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 약은 어떤 세포는 살리고 병세를 낫게 하지만 또 다른 한쪽으로는 건강을 멍들게도 한다. 섬세한 진단과 관찰이 필요하다.

과거 필자가 근무하던 기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본부 총무이신 대선배께서 몸이 허약한 후배 국장에게 보약을 권했다. 자신이 그 보약을 먹었는데 좋더라는 것이다. 후배 분이 꼭 같은 보약을 지어먹었는데 상당한 부작용이 생겼다. 얼굴과 몸 전체가 부어올라 보기가 민망하였다. 누구에겐 보약(補藥)이라도 누구에게는 해(害)가 될 수 있다. 다도(茶道)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하는 말이 있다. ‘알고 먹으면 보약 모르고 마시면 독’이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보약의 처방도 이와 같다. 전문 한의사와 철저한 체질분석을 통한 투약이 필요하다고 본다.

운동을 하는 것도 중독성이 강하다. 등산에 몰입하면 국내 100대 봉오리를 오른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몸에 이상이 오는 것도 모른다. 자칫하면 가정이 파괴되기도 한다. 낚시에 중독되면 동행시킨 어린 아들이 물에 떠내려가는데도 ‘뉘 집 자식이여~?’라면서 정신을 못 차린다. 자전거를 타다가 아마추어 철인3종 선수로까지 변신했던 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무릎관절이 망가지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테니스에 미쳤던 효창동의 어떤 사장은 운동이 재미가 있으니까 사업체가 망하는지도 모르고 매일같이 테니스채 들고 운동장에 나왔다고 고백한다. 중독의 심각성을 일컫는 말이다.

연예인들이 마약관련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카메라의 조명을 늘 받고 있으니 숨 돌릴 틈이 없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자신의 삶은 잃어버리고 쫓기는 삶이 시작된다.’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내가 잘 사는 건지 아닌지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땐 극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마음이 허전하여 마약의 유혹에 현혹된다. 한번 접하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렵다. 마약의 강한 중독성 때문이다. 알코올, 담배(니코틴), 대마, 아편 문제가 모두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도박은 중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도박에 손을 대는 순간 그는 아내와 가정을 잊는다. 직장도 버린다. 심하면 자식이 죽어도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다. 한국의 잘나가던 수출 중견기업체의 한 사장님, 강원도 정선 땅에 어려운 조손가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러 내려갔다가 정선카지노 호텔에서 묵었다. 카지노가 어떤 곳인가 호기심에 내려갔다가 중독되어 수년째 하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공영방송을 탔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시집간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내려가지 못했다. ‘내가 미국 간다고 죽은 딸이 살아나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극심한 도박중독증세가 몰고 온 한 가정의 파국이었다.

그런데 중독성 없는 것이 있다. 독서와 감사이다. 독서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다. 여기서는 감사만을 이야기해보자. 감사의 특징 가운데 가장 강력한 특징은 중독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 말로 끝난다면 감사, 그것은 맹탕에 불과하다. 헌데 감사는 몸을 건강하게 한다. 분명한 사실이다. 감사에 치유가 있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에 가장 강력한 힘은 감사하는데서 나온다. 감사하면 기쁨이 오고, 감사하면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감사하면 얼굴에 미소가 머물게 된다. 정신건강이 좋아진다. 또한 내적 건강에도 청신호가 켜진다. 감사에 성공하면 모든 것에 성공하게 된다. 이는 곧바로 면역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면역체계의 역량이 대폭 강화된다. 감사가 중독이 없다는 사실도 흔치 않은 발견이지만 감사에 성공하면 치유가 뒤따른다는 사실 또한 나만의 발견일까? 금세기 최고의 스트레스 연구의 레전드라 불리는 한스 셀리(1907-1982)는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한 가지를 말한다면 그것은 ‘감사’(感謝, appreciation)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 스트레스의 권위자 이시형 박사도 ‘감사’ 만큼 스트레스 정화제가 없고, 감사만큼 강력한 스트레스 치유제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저분이 사람인가 생각된다. 감사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水), 공기(空氣), 빛 등에도 감사해보자. 인간의 생체(生體), 인간의 몸뿐 만 아니라 우주과학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더욱 신기한 세계일뿐이다. 나를 태어나게 하신 부모님께도, 나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늘의 그분에게도 감사하자.

감사는 물과 같이 무색(無色) 무취(無臭)하며 투명하다. 감사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힘도 없는 것 같고, 주장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물을 보라. 아무 힘이 없을 것 같지만 바위를 뚫고, 대자연을 변화시킨다. 최근의 혁신 기술 분야에서는 물을 이용하여 강철을 자른다. 물에도 감사하며 살아보자.

감사도 물과 같다. 어떻게 들려지고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된다. 감사는 자체 동력이 없다. 사람에게 들려져야만 한다. 감사는 사람이 들어 써야만 된다. 감사로 축복해야 행복감정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이 흘러나오고 감사를 베풀어야 은혜가 흘러넘친다. 감사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감사해야 힘이 나온다. 감사하지 못하면 좌절한다. 특히 감사에 실패하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공기를 보라. 공기 또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로써 무색무취(無色無臭)의 투명한 기체가 아닌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것이 흡사 없는 것 같지만 그것 없이는 단 1분도 살수 없는 존재가 우리 사람이 아닌가. 공기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기의 존재에도 감사하자.

우리나라의 마지막 등대지기로 알려진 분이 지인의 형부다. 4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의 중요한 동서남단의 끝자락 무인도의 등대지기였다. 정년을 앞두고 신문방송매체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하자며 떠들썩해지더니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 헌데 어느 날 외출하여 인도를 걷다가 덤프 트럭이 지나면서 사고를 당했다. 바퀴에 튄 돌에 그만 얼굴을 맞았다. 사고차량은 지나가버렸고, 사고 여파로 그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외모도 잃었다. 그 후로는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거기서 죽었다. 믿음의 사람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믿는 이에게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며 위의 분을 원망했다. 가족들에게도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다. 끝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감사에 실패한 사례에 속한다. 그는 정말로 감사할 수 없었을까?

‘우리나라에서 한해 교통사고로 4천3백 명이 목숨을 잃는데 나는 죽지 않았구나, 감사하다.’

‘가수 이동우 씨는 교통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는데 나는 한쪽 눈만 잃었으니, 감사하다.’

‘큰 돌이 튀어 얼굴이 크게 다치는 상황에서도 한쪽 눈은 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

‘덤프트럭도 그 기사도 찾지 못했지만 건강은 되찾으니, 감사하다.’

‘큰 돌이 튀어 얼굴에 맞았지만 여타의 다른 뼈는 상함이 없다니, 감사하다.’

‘아내와 같이 걸었는데 나만 다치고 아내는 안 다쳤으니, 감사하다.’

‘비록 장애는 얻었으되 여러 가지 나라가 마련한 혜택도 누리니, 감사하다.’

만약 그분이 덤프트럭의 큰 사고로 한 쪽 눈을 잃고도 감사하며 과감하게 세상으로 나왔더라면 그는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같은 프로그램의 강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7)

“감사는 중독이 없다 다만 치유가 있을 뿐이다” -임승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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