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호 집사(광주 성결교회)

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로는 서울에서 생활을 했으며 군 생활도 잘하고 전역을 했다. 전역 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고 귀국 후에는 국내의 지방 현장에서 근무를 했다. 건설회사 근무 10여년 후에 섬유업종의 중소기업으로 직장이 바뀌었다. 그 동안에 결혼도 했고 딸 둘을 낳은 후에 아들이 태어났다. 고난과 신앙생활은 그 아들이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이 되었다. 

1986년 서울의 잠실벌에서는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아시아인의 이목이 잠실로 향하고 있을 때에 잠실아파트에 살던 우리는 작은방에서 잠실운동장의 불꽃놀이를 직접 볼 수 있었고 마라톤 경기도 작은방의 창문을 열고서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실벌의 축제와는 정반대로 우리 가족은 일 년 간의 병원 생활을 해야만 했다. 아들이 출생하고 72일 만에 최초로 발병이 되었고 13개월 때에 네 번째로 재발이 되면서 수술을 했으니까 거의 일 년 반 동안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동안에 아들이 네 번, 그리고 엄마가 두 번, 119구급차를 불러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었고 그때마다 입원해서 병원생활을 했다. 아들이나 엄마가 아파서 입원을 하게 되면 나는 그 때마다 병원에서 출퇴근을 했다.

또한 집에 남아 있는 딸 들은 할머니나 이모, 고모 등에게 맡기어서 친척집으로 보내져야 했다. 아들한테는 누나들 이지만 이제 겨우 다섯 살과 세 살!   엄마의 손길이 항상 필요한 때 이었다.  딸 들은 엄마하고 떨어지기 싫다고 울고불고 하면서 헤어졌지만 어디를 가든지 엄마를 찾아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돌아 왔다.  그런 딸 들이 너무나 불쌍하게 느껴지며 가슴이 아팠다!

나는 퇴근 무렵이면 병원의 아내한테서 전화가 온다. 아내는  집에 가서 챙겨 올 것하고 병원 밖에서 사 올 것 등을 얘기해 주면 나는 준비해서 병원으로 가져갔다. 집에서 짐을 챙기기 위해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엄마 손 잡고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러다가 아빠가 나타나면 "아빠~~~" 하면서 달려가서 안기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그 때마다 친척집에 맡겨진 딸 들이 더욱더 보고 싶어 졌다.

아파트의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가서 집에 도착하면 집안은 음침할 정도로 어둡고 썰렁하며 차거운 기운만이 집안에 가득 했다. 병원에 가져 갈 것을 모두 챙겨가지고 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면서 병원에 도착하면 온종일 간호 하느라고 지친 아내와 수액주사를 꽂고 있는 아들이 반겨줬다. 비록 병원의 입원실 이지만 가족이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반갑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런 생활이 일 년에 여섯 번을 반복 했던 것 이었다.

아들이 두 번째로 퇴원한 후에 몇 일이 안 되었을 때에 아내가 쓰러졌다, 아이가 퇴원 하면 첫 번째는 보리차를 먹이고 두 번째는 수입 음료로 세 번째는 우유까지 단계별로 먹이는데 그 판단은 보호자가 아이의 소화상태를 계속 지켜보면서 바꾸어 주어야 했다. 그러니까 보호자가 한시도 떨어지면 안 되는 그런 시간에 엄마가 쓰러진 것이다. 아내를 데리고 급하게 응급실로 갔더니 다시 중환자실로 입원시켰다.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 집에 있으면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가 걱정되고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가면 집에 있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내 정신을 갖고 생활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생아인 아들과 자신이 아파서 거의 일 년의 반을 병원에서 생활하며 산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아내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산후 우울증도 함께 겪었다. 오후만 되면 아내는 불안하고 무섭고 깜짝 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그 때 주변에서 교회에 나가라는 전도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아내는 교회보다는 무당을 찾았고 유명하다는 스님도 찾았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스님이 남쪽으로 이사하라고 해서 성남으로 이사를 했고 그 곳에서 순복음교회의 조장님 한분을 만나서 신앙생활이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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