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7일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자 가장 먼저 나타난 일이 형이 동생을 죽인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인과 아벨사이의 이해관계나 인간관계가 원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일 뿐이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쫓겨난 인생이 자기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들과 경쟁하면서 가지게 된 근본적인 미움과 증오와 적대감이라는 본성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가만히 보십시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 불신과 갈등과 대립이 있습니다. 같은 민족인데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우리사회의 존립자체를 위협하는 긴장과 갈등과 대립과 적대감이 있습니다. 휴전선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력이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끼리 사는 가정 안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고부간, 부부간, 부자간에 갈등이 있습니다. 직장의 상사와 부하직원간에, 동료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과 적대감이 있습니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갈등이 잠재해있습니다. 여야 간의 정치권에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고 갈등이 없는 것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잠잠할지 몰라도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휴화산 같은 적대감이 삶의 모든 영역과 관계 속에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도 불신과 갈등과 대립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인종간의 갈등과 대립, 빈부간의 갈등과 대립, 종교 간의 갈등과 대립, 나라와 나라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늘 있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이 사는 곳에 이런 갈등과 대립과 미움과 증오가 존재한다고요?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타락한 본성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책임지고 지키려는 자기중심적인 이 부패한 본성이 근본적으로 치료되지 않고는 사람은 어떤 좋은 것이 주어져도 그것을 미움과 대립의 씨앗으로 만들어버리고 그것을 통해 오히려 사람과 사람사이를 원수 되게 합니다.

11-14절에 그때와 이제, 너희와 우리, 멀리 있었고 가까워졌고, 원수 되었고 하는 모든 표현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관계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가까워지기 전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율법을 가지고 오히려 율법을 가지고 있는 자신과 율법이 없는 이방인을 구별하고 분리하는 담을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할례의 좋은 의미를 가지고 오히려 할례 받지 않는 이방인들과 할례 받은 자신들을 구별하는 담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율법과 할례가 오히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미움과 증오와 적대감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할례만이 아닙니다. 자기중심성을 가진 인생들은 하나님이 주신 많은 좋은 것을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차별시키는 막힌 담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돈을 가지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돕고 섬기는 일에 사용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인생은 돈을 자신을 강화하고 유지하고 지키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돈이 담이 됩니다. 담이 되어서 돈 있는 자와 돈 없는 자가 차단이 되고 거기서부터 증오가 생기고 적대감이 생깁니다. 지식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남이 모르는 것을 알면 그것을 가지고 모르는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밖에 모르는 인생은 남이 모르는 지식을 자기를 위한 강화의 수단으로 유지의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 좋은 지식이 또 다른 담이 됩니다. 학력이 담이 되어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나뉘고 그 사이에 갈등과 미움과 적대감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 막힌 담이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생명과 화합과 사랑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분리와 차단과 거절과 그에 따른 분노와 미움과 증오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들, 노사문제, 사회문제, 정치문제, 민생문제, 미워하고 욕하고 다투고, 증오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분노하고 원수가 되며, 서로 속이고 죽이고 시기하는 문제는 바로 이 막힌 담이 원인입니다. 이 막힌 담을 단순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감정이나 이해관계에서만 풀면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죄 때문이며, 죄가 만들어놓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막힌 담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괜히 분을 내기도 하고 화를 낼까요? 사람들이 왜 욕을 합니까? 요즘은 여학생들도 욕을 합니다. 왜 전부 욕을 합니까? 분노가 속에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회학자는 우리가 욕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적당히 욕을 해야지 욕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미친다는 것이죠. 욕을 하지 않으면 다른 쪽으로 그 분노가 터져 나올 수 있으니까 적당한 욕 문화는 권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마땅히 있어야 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어서 나오는 근본적인 분노가 욕한다고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왜 아이들이 오트바이를 타고 미친 듯이 달립니까? 왜 아이들이 가수만 보면 자기 오빠도 아닌데 ‘오빠!’ 하고 난리를 칩니까? 하나님과 멀어지니까 아무나 보고 오빠하고 그냥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엉뚱한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이죠.

왜 사람들이 남을 공격합니까? 누구도 자기를 위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을 은폐하고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남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 아닙니까? 개가 왜 짖을까요? 두려워서 짖습니다. 왜 사람들이 남을 공격한다고요?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기가 약하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불화가 있을 수밖에 없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 자기를 유지하는 살벌하고 무정한 관계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의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가까워졌다고 말씀하고(13절), 그리스도가 우리의 화평이라고 말씀합니다(14절). 그리스도가 자기의 육체, 곧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원수된 것과 막힌 담을 허물고, 나아가 인간과 인간사이의 원수 된 것, 모든 미움과 증오와 적대감의 막힌 담들을 허시고 소멸하셨다고 말씀합니다(14-16절).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흘리신 피 외에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만들어놓은 막힌 담이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허물어져 정상적인 화목의 관계가 되지 않고는 결코 사람과 사람사이의 화평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흘린 피가 아니면 인간은 가망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구약을 전부 압축해서 한마디로 하면 너희 인간은 예수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밖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터지게 하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도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상대가 누구라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분노하고 적대감을 나타내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선지자, 사사들을 통해 그렇게 열심을 가지고 당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전해도 이스라엘이 안 들었다하는 것이 구약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너희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가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무엇으로 그들이 용서받았습니까? 그리스도의 피의 예표가 되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통해 용서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인간은 안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구약의 내용은 한마디로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가 직접 오셔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쫒아내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말 안 듣더라, 결국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려야만 되고 성령이 오셔야만 고쳐지는 게 인간이다 하는 것이 신약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 외에는 인간이 고침 받지 못하고 하나님께 가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 전체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화목케 하는 것만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불화와 원수된 것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16절)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은혜 안에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인생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죄를 치료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회에서 누가 유일한 희망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분의 피로 문제의 원인을 치료하고 남들과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유일한 희망인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을 자기 안에서 새롭게 지은 새로운 인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5절).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새 사람입니다. 새로운 인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합니까? 미움과 증오와 적대감과 분노를 처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인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일시적으로 미워할 수 있고 분을 낼 수 있고 증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또 상대방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압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오랫동안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불쌍하죠. 그리스도밖에 있기에 자기도 알 수 없는 분노와 상처로 저렇게 살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이 불쌍하죠. 그래서 기꺼이 양보하고 져주고 한발 물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새 사람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 맨 날 당하고 속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살면 우리는 어떻게 사냐고요? 하나님이 불쌍히 보십니다. 이것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는 인생과 하나님이 불쌍히 볼 틈이 없을 정도로 자기가 자신을 잘 책임지는 인생 중의 누가 더 복되겠습니까? 전자입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속이 없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그럼 하나님이 불쌍히 보십니다.

말씀을 맺을까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우리 안의 분노와 미움과 증오를 십자가로 치료받고 남을 불쌍히 여기면서 손해보고 양보하면서 미움과 증오와 적대감과 분노로 가득한 세상을 화평케 하는 자들로 지음 받은 새 사람들입니다. 한 주간도 주의 은혜 가운데 이렇게 새 사람으로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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