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28)-임승훈 박사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 해독제, 방부제다” - 존 헨리

 

필자는 2년 전부터 감사운동을 펼치고 있다. 감사운동이 생활의 기쁨, 웃음만 선사하는 게 아니라 크고 작은 질병들이 낫는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기에 신유 간증에 도전하였다. 일본 규슈대학 명예교수인 이케미 유지로는 ‘감사의 말’이 암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규명하였다. 스트레스학설의 창시자인 한스 셀리 박사는 자신이 말년에 말기암에 걸렸는데 생활 속에서 암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가장 큰 힘이 된 것이 바로 ‘감사’라고 하였다. 이들은 공히 감사가 가져다주는 치유효과를 의학적으로 규명했다는 사실이다.

베체트라는 질병은 날 낫지 않기로 유명하다. 1937년 터어키 의사 베체트가 발견했다고 하여 붙여진 병명이다. 베체트는 심한 구내염(口內炎), 외음부 궤양, 피부점막 및 눈, 신경계, 소화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증상을 나타내는 ‘전신성혈관염’으로 특히 구강 및 외음부 궤양, 안구질환이 많다. 발병원인은 밝혀진 바 없지만 대개 면역체계의 불균형, 유전적 요인, 감염 등의 문제로 보고 있다. 

딸의 경우는 23살 연초에 발병하였으나 베체드 진단을 받아내는 데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무슨 질병인지를 몰라, 입안에 염증이 나면 이비인후과를 찾아갔고, 외음부에 궤양이 나면 산부인과를, 팔꿈치나 무릎에 붉은 발진이 나면 피부과를 전전해야 했다. 산부인과에서는 해괴한 소리(?)의 핀잔으로 수모를 겪었기도 했다. 대학 3학년인 청년이 잘 걷지를 못하고 통증을 호소해대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은 흐르고 병명은 못 찾고, 몸은 아프니 휴학을 반복하면서 대학 3학년은 지루하게 흘렀다.

그날은 무릎과 팔꿈치 붉은 반점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답답하니까 내가 다니던 상도동의 이화피부과를 찾았는데 담당과장이 대학병원에 당장 데려가야 한다며 베체트병 의심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하였다. 서울까지 매번 올라 다니기는 시간 제약이 많으므로 인하대학병원으로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느냐고 했다. 허락이었다. 가족들과 모두 의논하고는 지영이의 아픔을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다. 우리 주거지와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일단 진단을 받고 치료받아야만 여러 가지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첫날은 진단을 받는데 실패했다. 구강내염, 외음부 궤양, 무릎 주변 발진이 동시에 나타나야만 베체트병 진단을 받을 수 있는데 이중에 한곳이 발진이 없다는 것이다. 귀가하고는 한주일 뒤 다시 입원하였는데, 마침 세 곳에 이상증세가 나타나 비로써 확진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루에 소요된 돈은 150여만 원씩이나 들었다. 베체트 의심 검사뿐 아니라 여러 가지 건강검진을 병행하는 바람에 진료와 확진비용이 추가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소견으로는 발병 1년6개월 만에 확진판정을 받은 것도 늦은 것은 아니라고 귀띔해 주었다. 우리 큰딸이 베체트 환자가 된 것이다. 당시 베체트 진료비는 비싼 편이어서 한번에 18~28만원이 소요되었는데, 확진판정을 받음으로써 80%의 의료비 감면혜택을 받게 되었다(현재는 90% 감면). 정부에서도 이 질병이 면역체계의 불안으로 인한 난치성 질환임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다.

마침 한 후배 기자의 소개로 세브란스에 베체트에 관한한 국내 최고 전문가로 소문난 방동식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첫날부터 안심이었다. 불안해하는 우리가족과 지영이를 보면서 방동식 박사는 이렇게 위로하였다. “지영이가 어린데 어려운 병에 걸렸구나.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하면 일상생활은 물론 부부생활에도 아무 문제가 없지... ‘그저, 감기 걸렸다’라고 생각하고 잘 관리해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의 우리 가족에게, 글쎄 점잖은 의사선생님, 그것도 베체트에 관한한 최고 권위자 선생님에게서 침착하게 다독이는 말이 나오니 부모로서도 안심이 되었다.

어떤 의사들은 환자에게 위협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보면 수술을 유도하려는 것인지, 내심 과잉진료를 가늠하는지는 모르지만 대개의 의사들은 그런 상투적인 말을 하여 환자들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방동식 박사의 경우는 아니었다. 그러기에 당사자인 지영이는 얼마나 기뻤을까? 그렇게 방 박사와의 만남이 2~3개월에 한 번씩 이어지게 되었다.

지영이가 베체트에 걸린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로서의 자가진단이다. 지영이는 음악을 하던 아이인데 고 3이 되고 5월쯤, 뒤늦게 미술로 전공을 바꾸는 악수를 두었다. 힘들게 공부하면서도 지영이가 기뻐하니 부모가 탓할 수가 없었고, 그림을 잘 그린다는 교수와 지도교사의 평가가 있으니 피곤하였으되 나름 잘 견디어 나갔다.

좋은 대학엔 떨어졌고 그나마 서울예술대학에 합격하여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때부터가 더 문제였다. 순수예술(미술) 분야가 아닌 응용분야 중에서도 실내건축 디자인학과였다. 건축도면 가운데서도 설계도면에 내부 인테리어도면까지 보아야 함은 물론 캐드를 비롯한 컴퓨터설계까지 해야 하는 상황. 부모이긴 해도 그녀에게 지워진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헌데 공부해나가면서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5,6명씩 합동으로 연구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란다. 그 중에서도 연약한 딸이(늘 40킬로 대) 발표 책임을 맡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그냥 묻어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안산까지는 실제거리가 멀지 않으나 당시의 대중교통으로 돌아가다 보니 등하교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렸다. 아마도 이것저것이 지영이에게 공부부담+체력부담+식욕저하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아픈 가운데서도 졸업과 동시에 KBS에서 1년의 인턴십 일자리를 얻었는데, 1년 후 또 MBC에서 1년 인턴십 과정을 허락받은 후 1달간의 휴식기가 되자 몸도 마음도 피곤한데 몇 주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하였다. 기도 가운데 부모의 허락이 떨어지니 혼자 나름 치밀하게 준비도 했고 부족한 것은 독일인과 결혼하여 사업을 하고 있는 경원 언니와 상의하고 조언을 들었다. 또 독일과 네덜란드 여행은 언니가 손수 운전해주기로 하고 출발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과 스페인까지 꼭 3주간, 콘셉은 박물관, 미술관의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스케줄을 잡았다. 미술학도답게 세계사에 담겨진 미술 그림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계기를 삼고자 함이었다.

헌데 신기하게도 유럽여행을 하고 귀국한 뒤로 그의 베체트 병세가 확연하게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유럽여행 후 엄청난 힐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다는 기색, 통증은 줄고,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너무나도 좋은 징조이지만 무엇이 그녀의 질병을 치유하고 있었는가? 세브란스 진료 후에는 점점 확연하게 좋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뿐이었다. 담당 의사도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지영아! 유럽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니?”

“무슨 일이라뇨?”

“아니, 네 마음이 즐거워지는 어떤 유쾌한 일이 있었느냐고”

“아하! 그것이요? 서너 가지였는데요”

“무엇들인지 말해봐-”

“응-, 하나는 프랑스의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았을 때였는데 ‘교과서에서만 보던 세계적인 작품을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다니...’, 순간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돌고는 ‘하나님 감사해요.’라는 생각이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밀려오는 느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또 하나는?”

“이탈리아 남부 해안에서 였는데, 특히 아말피 해안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백사장이며 구름이며 그날의 운치가 너무너무 고즈넉하니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평생 잊혀 지지 않을 그런 장면으로, 그간 막히고 답답했던 나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세 번째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는 바티칸에서였어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작가가 4년에 걸쳐 작업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올라가 천정을 보고 작업하기를 4년간 그렸다는 한국어 해설을 들으며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 감사해요’를 수없이 속으로 외쳤어요."

" 마치 감사의 마음은 거대한 나무 뿌리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듯해요. 북쪽 에덴에서 아래쪽 노아시대까지 41.2미터를 뒤로 뭉치면서 큰 그림화폭을 흡사 머리에 다 담으려는 듯이 천천히 감상을 하는데 사람들 발에 밀리고, 등에 밀리고, 사진촬영자에게 떠밀리면서 약 15분정도 고개를 쳐든 채 천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건 예전에 상상할 수 없던 감동, 놀라움, 벅참이었지요.”

“....”(나도 수년전 그 맛을 보았기에 지영이의 맘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영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필자는 지영이의 여행 가운데, 감격 감동과 벅참을 넘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내가 갑상선에 큰 문제가 생겨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훈련, 감격, 감사와 위로받는 사건을 통해 나은 것을 주목하였으며, 나 자신의 피부병이 나은 것은 물론, 축농증, 잦은 설사복통들이 2년 전부터 엄청 호전되었다는 사실, 그런데 그것이 나와 우리 가족의 감사모임과 무관하지 않음을 지면을 통해 간증하며 보고 드린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편 107:20),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이사야 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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