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화 권사(국제학박사, 전 광주광역시 시의원)

홍인화 권사(국제학박사, 전 광주광역시 시의원)

얼마 전 개봉 중인 영화 ‘1987’을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물고문을 당하다가 죽어 간 박종철이 불쌍해서였고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이 안타까워서였다. 영화를 보면서 1987년이 그대로 겹쳤다. 또 전남대 정문ㆍ금남로ㆍ서현 교회 앞에서 백골단과 대치하며 자유를 외쳤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화 ‘1987’은 한국영화 사상 1987년 6·10 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상업 영화다. 최루탄과 삐라 속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필자(83학번)는 이 시기가 특별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필자의 남편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서 김천교도소로 이감되어 형을 살고 있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에 모두가 분노하며 싸웠었다. 그때 남편은 감옥에서 6월 항쟁이 있는 줄도 몰랐다가 석방되었다.

영화 ‘1987’은 박종철의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해 이한열의 죽음과 그리고 그 두 사건이 촉발한 6월의 어느 날까지를 영상에 담았다. 민주주의를 탄압하던 이들과 민주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각각 내부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고민을 하였는지를 섬세하고 사려 깊게 접근하고 있었다. 단순한 영웅적 서사나 선악 구도로 시대를 봉합하는 게으름을 비켜나간다. 대공수사처 처장과 남영동 고문관들의 반공 정서 이면에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냉전이라는 트라우마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또 그들의 광기가 누군가를 어떻게 피와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누가 이에 맞서려 했는지 등을 통해 개인의 서사와 아픔, 그리고 갈등을 놓치지 않은 채 시대를 성실하게 기록하였다.

영화는 1987년 6월 항쟁의 어느 날에서 끝이 나지만 대한민국은 그 이후에도 군부 독재의 재연장, IMF 경제위기, 세 월호 사태, 대통령들의 비리와 구속과 탄핵 등 국민을 낙심케 하는 사건들로 얼룩진다. 물론 호헌 철폐와 5·18 진상 규명, 남북 정상회담과 촛불 혁명을 통한 정권교체 등 희망의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2017년에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던 시민이 거리로 나와야 했던 한 해였다. 극단적 대립과 혼란이 있었지만, 법에 근거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민주적 대통령 선거로 극복해 가고 있다. 피와 최루탄이 사라지고 법과 선거라는 민주적 정당성으로 사태를 해결한 것은 우리 사회가 30년 전보다는 분명 진보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1987년은 어느 한 명이나 어느 한 집단이 일궈 낸 그들만의 특별한 전시와 추억의 시간이 아니다. 언론인과 종교인ㆍ공무원과 의사ㆍ검사와 교도관ㆍ학생과 평범했던 시민이 현실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진실을 갈망하며 힘을 모아 시대를 바꿔 간 시간이었다. 30년이 지난 2017년에도 그러했듯이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은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하다”고 했다. 촛불 혁명에도 많은 국민은 경제 위기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신음하고 있으며 북핵 위기로 한반도는 안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1987년에도 그랬고, 2017년에도 그랬듯이, 국민은 앞으로도 공동체의 여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갈 것을 믿고 염원한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이 아직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1987’에 등장하는 인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는 지난 2017년 세 월호 유가족들이 5·18 묘역을 방문하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

“30년을 살다 보니까, 살아온 것도 허무하고 이렇게 왜 살고 있나를 내가 나한테 물어보고 싶고 괴롭습니다. 세월이 간다고 잊힌 것도 아니고 없어진 것도 아니고 어딘가 모르게 끌려갑니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는데 3년이 지난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걱정이 됩니다. 누군가가 죽은 이한열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짊어지고 살아갈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합디다. 죽은 사람은 모른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른대요. 와서 불러도 몰라요. 말도 없어요.”

영화의 만든 사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이자 83학번이던 필자가 87년 그날 함께 불렀던 노래, ‘그날이 오면’의 ‘그날’은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위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아직도 피를 머금은 채 그렇게 굴러가고 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