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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덕담】언약의 의무규정은 언약의 내용을 지향해야2
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KAPC 뉴욕동노회장, 총신대 및 합신대학원 졸업

하나님의 백성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의 토대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이시고 나의 하늘 아버지 이시며 나는 그의 백성이고 자녀라는 언약의 내용을 어떤 경우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언약 관계의 토대에서 모든 것이 출발해야 하고 끝까지 견지되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도모가 언약의 내용 즉 그 관계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나 전도나 봉사나 그 어떤 선한 활동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향하고 심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 백성의 근본적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고 부가적 기업은 땅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의 백성에게 기업이 되시지만 부가적으로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은 그 기업을 통해 하나님을 구체적 삶으로 섬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언약의 의무규정이 십계명이고 그 외 모든 율법은 십계명을 구체화 한 것인데, 십계명이나 십계명을 구체화 한 모든 율법은 기업의 내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언약 백성의 의무규정은 거의가 부가적 기업 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가적 기업으로 땅을 주신 것은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땅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복은 땅으로부터 나옵니다. 생존의 조건이고 모든 복의 출처인 땅을 지키고 개발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모든 방법과 과정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땅을 근거로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과목을 제배하는 것은 생존의 수단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미 주신 명령이고 가르침이지만 인간은 그 명령에 대해 왜곡과 오해를 반복해 왔습니다. 바울이 명시적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가 종교 개혁을 통해 사람들이 비로소 인간의 모든 생존활동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들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것은 구약에서는 제사였고 신약에서는 예배이지만, 그 외의 모든 인간 삶이 하나님 섬기는 방법이라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방법만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이며 태도라는 사실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제사나 예배만 경건 되게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삶이 경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땅은 단순히 생존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이용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땅을 대하고 이용하는 방법과 자세가 하나님께 제사나 예배를 드리는 자세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인 땅을 의인화 하여 다루시고 계심을 사려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고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말씀대로 이행하여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고 진멸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사실을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 18:24,25)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인들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후일에 유다의 바벨론 포로 사건을 예시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벨론 포로 사건은 실제로 땅이 유다인들을 토하여 낸 사건입니다. 레위기 26장 43절의 “그들이 내 법도를 싫어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그 땅은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리라.”는 말씀은 유다의 바벨론 포로 사건이 그들이 안식일과 희년을 지키지 않음으로 땅이 곤란을 당하게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의 말씀입니다. 유대의 바벨론 포로는 땅이 가나안인들을 토하여 낸 것처럼 그들도 토하여 내고 그들이 떠나 있는 동안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의 땅에 대하여 보여주신 이 같은 관심과 배려는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언약의 차원에서 행하신 명령이고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7일째 쉬시면서 그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에 대해서 우리는 두 측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안식일이 여호와의 안식이라는 사실이고(레 25:4), 둘째는 사람을 위해 제정된 안식일(막 2:27)이라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제정된 것이라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 강력한 명령으로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안식일을 제정하셨지만 여호와의 안식일로 규정해 놓으신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할 수 없는 엄중한 명령임을 시사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언약관계에서 떨어져나가게 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명령에는, 당사자가 지키는 것 뿐 아니라 그와 관계된 모든 이들도 지키도록 하는 것까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이를테면 한 가정의 가장은 온 가족이 안식일에 쉬도록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고, 그가 기업의 사장이라면 사원 모두를 안식일에 쉬게 해야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가장이나 사장 혼자서 쉬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주어진 안식일 명령에 포함된 대사회적 명령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식일 명령은 대자연의 지평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게 하는 것은 비교적 납득하기 쉬우나 땅을 쉬게 하라는 명령은 납득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실행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 명령이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 살았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증명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된 이유가 땅을 안식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가 된 죄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온 민족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나아가 종교적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총체적으로 죄를 범했다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성경이 이스라엘이 범한 그 모든 죄를 결국 땅으로 하여금 안식하지 못하게 한 죄라고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란 하나님께서 쉬신 안식일에 인간 뿐 아니라 땅도 쉬도록 하신 명령의 엄중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안식일 명령은 언뜻 생각하면 지키기 쉬운 명령 같습니다. 일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쉬라는 명령이기 때문에 쉬운 명령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명령이 결코 쉬운 명령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만나를 먹으면서 욕심대로 많이 거두어 썩게 되었고,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허탕 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부주의해도 물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날 정치계나 기업이나 교회 안에서 저질러지는 재정비리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그렇게 되는 것을 걱정하시며 경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이 말씀은 실제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물질을 앉히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하신 말씀이고, 그 무서운 왜곡을 저지르면서 하나님을 위한다며 그릇된 확신에 사로잡혀 있던 종교 지도자들과 하나님 나라 백성 모두에게 주신 경계의 말씀입니다.

황상하  joseph19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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