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65) - 예언자의 세계(20)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5:21).

예레미야의 슬픔은 너무도 크다. 우리의 애가도 너무 크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해로부터 73년이 흘러가고 있다. 진정한 나라의 회복과 해방은 아직도 먼 것처럼 보인다. 남북이 분단되어 이토록 오랫동안 민족의 허리가 잘려 있는가.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特甚)하시니이다”(애5:22).

분단이 심화되고 있어서 이제는 북한은 더욱 딴 민족,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보는 것 같다. 이제는 한 나라, 한 겨레라고 하기 에는 너무 이질적인 존재들이 되었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애5:20).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간지 70년 만에 귀환하는 역사가 일어났다(주전597-525년). 하지만 우리는 외세에 의해 신탁통치가 이뤄지고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지금도 휴전 상태로 전쟁 중에 있다. 세계 유일한 분단 민족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가는 그 비극의 끝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돌이킴이라고 결론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애5:21)

예레미야 애가는 각 장이 각자 개별적인 노래로서 나중에 지금과 같은 느슨한 형태로 구성되었다. 이 노래가 작성된 것은 바벨론 지역 보다는 팔레스틴에서 지어진 것 같다.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멸망 될 때에 지어진 것이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애4:17).

애가 기자는 멸망사건을 보며 증인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생생한 보고를 하고 있다. 이 애가가 예레미야 예언서와 연관되어 체험적으로 기록된다.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대하35.25).

사실상 예레미야는 이러한 나라의 비극에 대하여 탄식하며 노래를 하였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8:21). 예레미야서나 예레미야 애가서가 이집트로 붙잡혀 간 상태에서 저작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는 학자(쉬미트)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예레미야의 영성과 성경의 증거를 통해 예레미야서가 예레미야가 기록하였음을 알게 된다.

예레미야 애가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은 분명하다. 예레미야 애가가 특별히 첫 탄식시는 의식(liturgy)과 관련해서 쓰여 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탄식시는 어떻거나 금식의 의식적 절기나 주전 587년 멸망의 두려운 일 들 속에서 정기적인 날에 간격을 두고 기념하는 애도시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 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슥7:4-5).

이 예레미야 애가는 신명기 역사서와 같이 역사적 반성을 한다. 바벨론 포로 시기의 관점에서 역사적 회고를 한다. 왜 이러한 멸망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말한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고백한다. 그리고 애가는 기도로 이러한 재앙이 일어난 상황을 설명한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기소하고 심판을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애2:1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창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으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 날과 같이 하였도다”(애2:7).

여호와의 분노가 재앙을 가져오게 한다. 이스라엘의 죄가 긍극적인 재앙의 원인이 된다.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애2:2).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 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애1:8).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프란테스코 하예즈, 1867

한 민족의 비극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이렇게 길고도 깊은가. 우리 민족의 우상 숭배의 역사가 길어서인가, 해방이후 유물론을 추구하는 북한이 인신(人神) 우상숭배로 인해 재앙이 계속되는 것인가. 애가는 그 원인이 선지자의 죄로 인해서 그렇다고 한다(애4:13).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애2:14). 이러한 재앙의 와중에서 하나님께 탄식기도를 하지만 위로받지 못한 상태가 된다.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질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애2:18). 이러한 간절한 부르짖음과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5:21).

예레미야 애가는 아무리 재앙이 크고 비극이 깊고 슬픔이 길어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은 지극히 크다고 말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애5:19).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도 통일을 바라고 바라며 소망하고 희망을 가진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을 것을 돌이키시겠고”(롬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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