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영웅 삼손 이야기

요한일서 2:15-17; 갈라디아서 6:7-9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16절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혼동을 주지 않습니다. 16절을 보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육신의 정욕,
둘째는 안목의 정욕,
셋째는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세 가지의 문제는 영원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에서 볼 때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에서 볼 때 결국 죄와 연결됩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에서 볼 때 우상 숭배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영원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우상 숭배이며,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15절은 이를 분명하게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

또한 요한일서 5장 21절에서도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속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않기 바랍니다. 이는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그 안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영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붙듭니다. 그것은 영생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붙드는 자들의 특징은 이 세상 가운데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요한이 쓴 서신으로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쓴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을 읽으면서도, 기도를 하면서도, 심지어 주 예수님을 사랑하면서도 어느새 방심한 틈을 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그 인생을 낭비하게 되면서 비참에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성도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러한 성도로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은 대표적으로 삼손과 롯이 있습니다. 두 사람을 다 논하고 싶지만 오늘은 삼손만 다루어 보겠습니다.

삼손은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깊게 빠진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은 비참하고 허무했습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이신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삼손에 대해 물어보면 대단히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들 중에는 자녀들에게 “너희는 삼손처럼 되거라”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삼손에 대해 설교하는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지독한 멍청이이며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며 결코 삼손을 본받으라고 권하는 일이 없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삼손의 이름을 가진 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들이 볼 때 삼손은 그저 술과 여자에 취하여 인생을 낭비한 방탕아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삼손을 믿음의 영웅으로 삼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삼손의 이름은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 11:32).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적인 관점에서 삼손을 볼 때 삼손은 거룩한 삶에 대한 본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믿음의 영웅입니다. 삼손은 우리에게, 성도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따로 구별되어 부름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또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성도들은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이 세상에 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삼손은 죄 가운데 인생을 낭비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성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삼손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무한한 은혜를 입증하는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죽음을 앞둔 삼손의 마지막 순간들은 그의 온 마음과 영혼이 주님께 철저하게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삼손은 마지막 삶 속에서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을 이룹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계획은 삼손의 죄악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믿음의 영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더 길게 남겨두셨다면, 삼손의 남은 삶은 죄와 세상과 사탄을 대항하여 철저한 승리를 이루는 거룩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삼손의 생애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성경은 삼손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사사기에서 무려 13, 14, 15, 16장을 걸쳐 삼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한 절만 기록되어도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의 많은 분량이 삼손에게 할애된 것은, 삼손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이에 그러한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간략하게 삼손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먼저 삼손이 사사로 지내면서 보낸 20년 기간에 대한 요약은 단 한절로 요약됩니다. 사사기 16장 1절입니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라.”

이 말은 결국 그가 하나님과의 나실인의 언약을 완전히 깨뜨리고 육신의 정욕와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노예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는 습관적으로 세상과 짝을 합니다. 저번에는 가사의 기생에게 들어갔었는데 이번에는 소렉 골짜기의 기생 들릴라에게 들어갑니다.

그는 들릴라와 지내면서 그녀가 자기를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마침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립니다. 즉,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하나님을 배신하고 기생 들릴라를 택합니다.

지금 삼손의 이러한 결정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20년 동안 사사로 지내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특권과 힘을, 죄를 짓는데 사용하여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과 영적인 눈은 심히 어두워져서 지독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기보다 기생 들릴라를 택하였습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 그를 떠나시고 갑자기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삼손의 눈알을 뽑아버렸고, 이에 삼손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삿 16:18).

삼손은 하나님과 기생 들릴라 사이에서 믿음을 저버리고 정욕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생 들릴라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면 들릴라가 삼손을 진정으로 사랑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기생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하기는커녕 돈 버는데 잠시 유익한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속고 이용당하고 버림 받게 되어 있습니다.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삿 16:19-21).

사랑하는 여러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힌 성도는 마침내 세상에서 눈이 뽑히고 그 삶이 학대와 수치를 당하는 자리로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 중에 원수가 포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의 영이 떠난 삼손은 마귀의 손아귀에 떨어져 불레셋 백성들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삼손이 당한 비참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삼손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원수의 손아귀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조롱과 학대는 끝이 없었습니다. 원수의 손에 떨어진 신자는 한없는 비굴함을 맛보게 됩니다.

이제야 삼손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에게 사명을 주고 따로 택하여 사사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 크신 은혜에 오히려 죄악에 물든 삶으로 보답한 자신의 부패함을 기억합니다. 이에 삶을 탕진한 자신을 향해 분노하게 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눈이 멀어 살던 자신을 보며, 더 이상 허황된 것들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세상의 정욕에 물든 기간 동안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눈이 멀었던 자기 인생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못했던 어리석고 교만한 자아를 발견합니다.

삼손은 원수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학대를 받으면서 깨어 살지 못하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얼마나 이를 갈았겠습니까? 얼마나 자신을 증오하며 자기 머리를 쥐어 박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성경을 잃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암흑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워주는 거짓 음성을 따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이 땅의 교회 안에는 현대의 삼손들로 가득합니다. 세상 정욕에 눈이 멀어, 진리에는 눈이 감긴 자들로 가득합니다. 육신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노예된 자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만일 돈을 따라가고 명예를 따라가며 권력과 세력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아가 시간이 날 때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음란을 엿본다면 우리 역시 삼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 인생 끝은 삼손의 끝과 다를 바 없을 것을 성경은 경고합니다.

예배보다 여행이 좋아서 주일 예배를 빠진다면 그 사람이 삼손이 아니겠습니까? 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보다 드라마에 심취해 있다면 그가 바로 삼손이 아니겠습니까? 음행과 음란에 물들면 망하는 것을 알면서도 거룩한 삶을 저버리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에 빠져 있다면 그가 바로 삼손이 아니겠습니까? 이생의 자랑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가 다름 아닌 타락한 삼손이 아니겠습니까?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세상)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6).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 삼손의 삶을 살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업이 파괴되고 건강을 잃고 원수의 포로가 되기 전에 주께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인생의 가장 쓰라린 비극을 지나기 전에 삶의 방향을 돌이켜 안전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기 바랍니다. 행여나 거짓 신자로 드러나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후 6:2).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창조주 너의 하나님을 기억하라”(전 12:1-2).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속이는 안개입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만이 영원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엄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회개하는 자들에게 한없는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지만, 끝까지 대항하는 자에게는 엄중한 주의 위엄을 나타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삼손 같은 주의 자녀들을 반드시 징계하시고 비극을 체험하게 만드십니다. 비참과 수치를 맛보게 하십니다. 그때의 아픔은 지옥의 아픔을 방불케 합니다.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0-31).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가 값싸게 대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치러졌는데 구원 받은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썩을 자랑들을 위해 산다면 그것이 말이나 됩니까? 결코 주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드시 블레셋의 손에 그 사람을 넘겨 말로 다할 수 없는 수치와 고통과 부끄러움과 실패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리기 위함이며, 또한 부패한 삶 가운데 정신 못 차리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회개하고 정신차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삼손에게 발생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이기 때문에 죄악과 세상으로부터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여 그 자리에 있자 하나님은 그를 세상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삼손을 원수의 손에 잠깐 두십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눈알을 빼내고 그를 짐승보다 못한 자리에 던져 큰 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장 삼손을 죽일 수 있었지만, 맘껏 조롱하며 악한 재미를 보기 위해 삼손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지독한 수치 가운데 두기 위해 살려둡니다. 그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들의 사사인 삼손이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 보여줄 생각이며, 반대로 블레셋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우상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풍성한 삶인지 서로 축하하고자 삼손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들은 삼손의 멸망을 보면서 “보라.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라고 하는 삼손을 보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죄악 가운데 있지만 우리가 훨씬 더 의롭지 아니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저 인간들은 하는 일마다 실패하지만 우리는 훨씬 더 성공하지 아니하였는가! 자 보라, 결국 우리가 훨씬 더 잘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다곤 신이 훨씬 더 위대하다. 우리가 제대로 인생 선택을 하였다. 그 증거로 저 멍청하고 타락한 비참한 삼손을 보라”고 외칠 생각이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삼손은 ‘원수들의 손에 조롱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더 낫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 혼자 수치를 당하는 것은 괜찮은데, 가족과 교회와 주의 나라까지 자기 때문에 망신과 조롱을 당하고 있으니 삼손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괴로웠겠습니까? 분명히 이 즈음에는 육체의 고통보다 그의 정신적인 고통 및 영적인 고통이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사사기 16장 22절입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은 그의 머리털이 자라날 때 다시 주의 언약을 기억하였습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기억하였습니다. 인생의 실패에 대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는 수치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상황도 그대로 똑 같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마음이 변하였습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데리고 최고의 재미를 볼 생각입니다. 더불어 삼손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릴 계획이었습니다.

사사기 16장 23절 이하입니다.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삿 16:23-27).

이처럼 하나님의 명예가 삼손에게 달리게 됩니다. 다곤 신이 과연 하나님보다 위대한 신입니까? 삼손의 하나님은 과연 삼손을 버리시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삼손이 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삿 16:28).

삼손이 기도한 것은 눈을 뜨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에게 발생한 모든 수치와 모독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에게 맡겨진 사사로서의 사명을 마지막 순간이라도 감당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는 평생 사사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이라도 사사다운 사사로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사의 사명은 원수를 무너뜨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의 백성을 보호하는 것인데 그 일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기도를 응답하셨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거짓 우상 다곤과 비할 데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언약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참 신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따라서 삼손과 이스라엘은 다곤 신과 블레셋 백성 앞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즉, 삼손은 진심으로 회개한 가운데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에 그는 원수에게 승리하여 믿음의 영웅이 된 것입니다.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삿 16:29-30).

물론 이 장면은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됩니다. 또한 삼손의 믿음과 그 정신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보호하려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삼손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흔히 놓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사사기 16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삿 16:31).

삼손은 다곤 신전에서 죽었습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체는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장사되었음을 입증하는 기록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 약속의 땅에 묻혔습니다. 그의 시체는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내용을 알려줍니다.

구약에서 주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힌다는 것은 미래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어떻게든 가나안 땅에 묻으려고 돈을 주고 그 땅을 사서 장사 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구약 백성들은 이 땅에서 호흡을 마치며 장래의 부활을 바라보았습니다.

삼손의 시체는 약속의 땅에 묻혔는데 이는 그와 그의 가족들이 장래의 부활을 믿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또한 삼손의 삶이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마치게 된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삼손의 모든 죄악은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 아니었다면 결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으며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삼손은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바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죄 사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사의 명예와 사명을 회복하였고, 나아가 미래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며 가나안 땅에 장사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실수의 삶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함을 받고 해결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사명과 품위를 회복할 수 있으며 또한 미래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대 실패로 인생을 마무리하던 베드로를 기억합니까? 그는 저주 가운데 예수님을 부인하고 낙심한 채 세상에 돌아간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거나, 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먼저 손 내밀지 않으셨다면 그는 회복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되셨고, 나아가 베드로를 찾아와 먼저 손 내미셨으며, 심지어 비참과 패배 가운데 있던 베드로를 다시 사도 직분에 앉히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님과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손을 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삼손 같지 않은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를 회복시키는 힘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용서하심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삼손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용서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능합니다. 그분 안에서는 그 어떤 죄악도 용서함 받아 새 출발 할 수 있고, 그분 안에서는 그 어떤 원수라도 이기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새롭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또한 그분 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는 비록 삼손처럼 실패하여도 장래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언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삼손은 20년 가량 죄악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으나 마침내 구원을 얻었습니다. 삼손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삼손이 20년의 죄악의 삶에서 거룩한 삶으로 회복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현재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반드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우리 인생을 헛되게 보낸 것에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평생을 주를 위해 살 수 있었을텐데, 탕자처럼 인생을 낭비한 것이 가장 수치가 되고 가장 큰 후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철이 들어서 제대로 주를 위해 살아보려고 하는데, 문제는 인생의 끝이 다가온 데 있습니다.

만일 회개함으로 정신을 차린 삼손이 그 훗날에 들릴라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가정하면 상상 외로 그 기생이 추녀인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더럽고 악한 뱀과 같은 여인인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창녀가 얼마나 간교한지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신의도 없는 오직 겉모습만 회 칠한 무덤 같은 지옥의 여인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천하고 더러운 계집에서 자기 인생을 걸었던 사실에 대해 한없이 어이가 없어 할 것입니다. 그러한 더럽고 멋없는 여인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며 하나님을 저버렸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없이 뼈저리게 후회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보이는 것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며 사는 소망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한 자들이고,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 자들이며 하나님에 의해 징계를 받아 거룩하여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 받은 백성들로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시간이 없어서 주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회개함으로 주께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창조주 너의 하나님을 기억하라”(전 12:1-2).

이 시간 당장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여온 삶을 회개하고 정리하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한 주의 나라를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기 바랍니다.

극악한 죄악은 갑자기 발생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더러운 세상을 사랑하며 자주 즐기면서 판단이 흐려지다가 갑자기 극한 죄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극한 죄악은 그 인생을 순식간에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기 바랍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요 2:15-17; 갈 6:7-9)

우리 모두 이 시간 새로운 다짐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남은 삶을 철저하게 주 하나님과 교통하는 살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삼손의 배신녀 들릴라 이야기 바로가기 ☞http://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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