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정감리교회 담임목사 · 2014년 6월 1일~현재 · 경기도 양주

전쟁의 승자와 패자가 만났다.
종전 협상을 위해서였다.
패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요구를 받아들여야겠소?"
패장의 머릿속엔 전쟁 포로, 전쟁 배상금, 전범 처리 ...
이런 단어들이 그득했다.
승자가 대답했다.
"요구사항은 단 하나입니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먼 길이니 타던 말도 그냥 가져가시오.
귀향하는 데 필요한 식량은 우리가 어떻게든 준비해 보겠소."
패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것은 남북전쟁 종전협상 장면이었다.
북군 총사령관인 그랜트 장군은 남군 총사령관인 리 장군에게
허무할 정도로 관대한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막대한 전쟁보상금, 관련자 처벌 등과 같은
까다로운 요구를 했더라도 패장인 리 장군이
이를 거절키는 어려웠을 것이다.
협상이 타결되고 리 장군이 항복문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북군 진영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병사들은 연병장에 모여 함성을 질렀고,
포병들은 대포를 쏘아댔다.
이 광경을 본 그랜트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단호히 명령했다.
"적에게 승리했을 때 하는 어떤 행사도 당장 중단하라.
남군은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다."
그랜트는 응징보다는 통합의 가치를 택한 것이다.

적을 형제로 돌려 놓는 것이 정치입니다.
형제를 적으로 돌리면 전쟁이 펼쳐집니다.
눈 앞에 이익보다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올바른 지도자입니다.
그런 지도자가 보고 싶지만
어찌 고래를 또랑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높은 이상을 품은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수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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