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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이 땅의 교회의 첫 번째 설교 – 요엘의 예언의 성취

사도행전 2:14-21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교회의 변화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교회에서의 가르침에 대해 알고 싶어하게 만듭니다. 예루살렘에 성령이 강림하자 그곳에 모여 있던 120명의 갈릴리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방언을 통해 찬양과 기도와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교회가 공식적으로 탄생하였고 신자들에게는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그 변화는 그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면서 감당할 수 있는 감사와 기쁨과 평강과 황홀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과 함께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연합되어 거룩한 성품과 삶으로 변화합니다. 더 이상 죄와 죄의 쾌락이 신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도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고소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보혈로 그를 믿는 자기 백성의 죄값을 다 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신자들은 그분의 권능으로 분명히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가 없는 신자는 가짜 신자입니다. 참 신자라면 반드시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와 그분이 보내신 성령에 의해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면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권능이 없이는 사람은 결단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즉,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죄를 이기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 능력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따라 신자들이 믿음으로 행하면 그 마음과 삶이 거룩하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죄를 이기는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는 참 신자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넉넉히 감당하게 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과 불신자들이 교회를 향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결국 교회의 지체들로 인하여 교회에 발을 딛게 됩니다. 그러면 마땅히 주의 종이 선포하는 복음을 듣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120명의 그리스도의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자 초자연적인 방언의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열방 나라들로부터 온 유대인들 및 이방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각각 그들이 그들의 언어로 갈릴리 신자들의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행 2:12) 하며 그 기이한 기적 앞에서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그 중 불신자들은 교회가 보이는 강력한 변화에 대해 조롱하며 이릅니다.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행 2:13)

이로 인해 베드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자연스러운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을 자세히 보면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열두 사도가 다 일어선 것입니다. 열두 사도가 일어섰다는 것은 베드로가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열두 사도가 일어선 가운데 베드로가 설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얼마나 권위가 있는 모습입니까? 그 권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갖는 권위입니다. 이처럼 주의 말씀을 더하거나 감하지 않고 대언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살전 2:13)

그리고 12사도의 대표인 베드로가 이 땅의 교회에 있어서 첫 번째 설교를 합니다. 

베드로가 소리 높여 외칩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여! 오늘 발생한 사건 때문에 여러분이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제가 설명드릴 터이니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말한 것은 성령으로 방언을 말하는 현상은 술 취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지금은 오전 9시인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이 술을 먹고 취한 것이 아니랍니다”(참조, 행 2:15).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삶이 크게 변화되면 주변 사람들이 크게 의아해 합니다. 
“아니,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 변한 거지”
또한 주변 불신자들은 도무지 여러분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저 사람 바보 멍청이 아니야’라고 조롱하며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나도 과거에는 당신처럼 내 실속만 차리는 이기적인 존재였습니다. 돈 밖에 모르며 살았고, 자존심 하나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교만과 죄악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로 이 세상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세상 것들이 하늘의 것들에 비하면 너무나 가치가 작아 마치 배설물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충만하여 매일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넘치며 마음이 평화롭답니다. 당신도 이러한 평강의 마음과 삶을 누리고 싶지 않나요? 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지요? 더 이상 이기적인 내 존재에 시달리지 않고 변화된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신지요?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로 오세요. 복음이 성경대로 선포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주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시며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답니다. 저는 구원을 얻어 지금은 천국 백성이랍니다. 이번 주에 교회에 오세요.”

지금 베드로가 그렇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 강림의 사건은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모인 자들은 오순절 때문에 사방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찾았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구약을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언급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라”(행 2:16).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요엘서를 요약하고 그 내용을 오늘 베드로가 왜 그의 설교에서 인용하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요엘 선지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브두엘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전 선지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남유다를 위해 예언을 하는 선지자로서 아마도 이미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은 상태에서 바벨론 제국의 공격을 멀리 내다보며 예언하는 것 같습니다.  

요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두 종류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각각에 대해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다른 하나는 주의 공동체를 향해 공격하며 괴로움을 주었던 모든 세상 나라들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때의 여호와의 날은 주의 공동체 가운데 믿음과 충성으로 인하여 남은 자들에게는 큰 회복과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요엘서는 엘리야 때처럼 심판이 주어지는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그 심판은 이미 치러진 심판으로서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의 심판입니다. 또한 요엘 1장 6절을 보면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라고 하여 완료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종류의 메뚜기에 의해 온 땅이 기근과 궁핍에 빠져서 비참에 이르렀든, 또는 아하스 왕 때에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왕이 남유다를 공격하는 상황이든, 혹은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공격하여 예루살렘 성만 무너뜨리지 못하고 모든 유다 성읍을 정복하여 남유다를 폐하가 되게 한 사건이든,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권합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욜 1:13-14). 

그러면서 그 비참 가운데에서도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고 두려워하며 절망합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욜 1:15). 

그리고 요엘서 2장으로 넘어가면 여호와의 날이 이를 것을 두려워하며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하라고 합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욜 2:1-2). 

남유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예언의 경고의 직접적인 성취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요엘 2장 20절을 보면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라고 하는데 남유다의 입장에서 장래에 임할 북쪽 군대는 바벨론 제국을 뜻합니다. 

자, 지금 요엘 선지자와 남유다의 처한 상황은 실제 메뚜기로 인해 남유다 성읍 전체는 물론이요, 심지어 제사장들이 있는 예루살렘 성읍까지 전부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또는 앗수르 제국에 의해 비참하게 공격 당하여 기근과 가난과 궁핍이 최고 절정에 이른 상태입니다. 

그런데 아직 남유다를 향한 여호와의 날은 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내리는데 있어서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엘은 그들에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욜 2:12-17). 

그러나 우리는 지금 구약의 역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남유다의 백성은 이러한 요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직 소수의 남은 자들 외에는 남유다 전체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더니 결국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남유다가 겪은 비참과 수치와 궁핍은 우리가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요엘은 그 당시의 남유다 백성을 향하여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만이 주의 백성이 살 길임을 외칩니다. 그러면서 요엘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선포합니다. 이런 부분이 늘 복음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욜 2:18). 
우리는 이미 이전에 다니엘서 9장을 통해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때문이 아니라 땅과 관련한 안식년 및 희년 제도 언약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하는 내용을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이 대답은 70년 동안 안식을 누리는 땅을 보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 되었던 남유다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장면을 그리게 됩니다.
[19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4)시리라 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욜 2:19-22)

요엘서 2장 21절은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쳐 부수고 포로되었던 유대 백성이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내리는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남은 자들이 자기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통한 죄 사함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가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 계시하여 줍니다. 그것이 바로 요엘 2장 23절 이하의 말씀인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성령 강림 및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방언을 말하는 장면을 이 구절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일단 요엘서에서 가져오겠습니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23-32)

아직 회개의 기회가 있을 때 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회개하면 하나님은 친히 메시아의 구속을 근거로 하여 시온의 백성들에게 죄사함과 기쁨과 감사와 풍성함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요엘 2장 23절은 원어로 보면, 그리스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또한 성령의 역사도 나타납니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욜 2:23-24). 

(키 나탄 에뜨 하모레-ㅎ 르 츠다콰 봐 요레드 라켐 게쉠 모레-ㅎ 부-말코쉬 바-리-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라는 원어는 (하모레 르 츠다콰)라고 하여 “의로운 비” 또는 “의로운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분이 가을과 봄 비를 가장 처음으로 보내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원어로 2장 23절을 오래 연구해 보니, 23절은 “너희 시온의 자녀들이여! 기뻐하라. 여호와 너희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 그 이유는 주께서 너희에게 ‘의의 선생’을 보내셨고, 그는 처음에, 그리고 그 이후로 너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요엘 2장 23절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이 보내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이든 신약이든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그의 보혈로 씻겨 주실 것이며, 또한 성령을 보내심으로 시온의 자녀들의 마음에 촉촉한 비를 봄이든 가을이든 보낼 것입니다. 23절은 놀랍게도 의의 선생은 가장 처음에 비를 보내실 뿐만 아니라 항상 비를 보낼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말하였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구약의 마지막 계시를 받은 말라기의 예언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선생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더더욱 의의 선생으로서 자기 백성에게 의의 옷을 주실,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를 소개합니다.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8-10). 

그러므로 요엘 2장 23절은 의의 선생이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시고 나아가 우리 죄를 감당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고, 또한 그가 보내실 성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와 성령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회개하는 주의 백성을 향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뚜기로 황폐하여졌든, 심지어 불신자들의 가장 센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든, 그리고 심지어 더 무서운 미래가 다가오더라도 아직 회개가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의의 선생을 보내 주시고, 나아가 의의 선생과 함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보내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은 이러한 복음을 구약 백성에게 전한 후에 성령의 시대에 대해 언급합니다. 베드로의 인용을 정확하게 보면, 요엘이 성령의 시대를 ‘그 후에’로 말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그것을 ‘말세’로 바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을 따라 구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엘 때에는 분명하게 알지 못했지만, 신약에 따르면 요일 2장 28절 이하는 ‘말세’에 대한 내용을 예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수 차례 확인한 것처럼 신약 성경에서 말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얻으신 후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신 그 때부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때까지가 말세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는 맨 처음의 교회 역사 가운데 첫 번째 설교인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6-21)

사도행전 2장에서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은 말세의 시작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의의 선생께서 보내신 성령입니다. 이때 성령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로부터 모이는 시온의 백성들과 연관됩니다. 그들은 남녀노소 존비귀천을 막론하고 성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 때문에 황홀함과 감사 가운데 기도하며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나눌 것입니다. 

그런데 요엘서와 베드로의 첫 설교에는 마지막 여호와의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가짜와 진짜를 가르는 날이고, 가짜들은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마지막 전쟁을 치르는 날입니다. 계시록은 이를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오고 나면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따라서 의의 선생으로 인한 죄 사함도 없고 성령님으로 인한 풍성하고 촉촉한 단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멸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죄를 범하면, 처음에는 팥중이와 같은 약한 메뚜기로 인한 해를 입히십니다. 그래도 죄를 지으면, 더 센 메뚜기로 인한 해를 입게 하십니다. 그래도 죄를 지으면 느치로 인한 해를 입게 하시고 여러가지 비참과 궁핍과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죄를 또 지으면 독침을 지닌 황충에게 당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죄를 지으면 주의 백성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되면서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과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방불한 무서운 징계와 심판이 곧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누가 감히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분이 징계하려 하실 때 피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우리가 인생 가운데 비참하여지고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매번 주시는 여호와의 날이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날은 불순종하는 주의 자녀들에게는 계속 점점 더 강해지는 징계로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순종하는 자녀들은 더더욱 비참과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회개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마지막 여호와의 날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험한 상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요엘서를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린다고 하여 마지막 여호와의 날을 피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 중에는 가짜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남은 자들, 신실한 참된 신자들만이 마지막 여호와의 날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 

그러므로 교회 다닌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있다고 마지막 여호와의 날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신자여야 여호와의 날을 피할 수 있습니다. 진짜 신자가 누구이며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기회가 있을 때 참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만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피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그들이 진짜 신자들입니다. 즉,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는 자가 진짜 신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겉으로만, 입술로만 회개하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의 선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기 때문에 회개하는 그 순간부터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복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맘껏 예배드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 때에 하늘로부터 한량없는 단비, 성령의 단비, 성령의 봄 비와 가을 비를 마치 오순절 날처럼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우리를 박해하며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조롱하던 불신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이 더더욱 하나가 되어 주의 백성과 그리스도를 대적할 때 그들은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패하고 망한 썩는 냄새가 온 세상에 진동할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주의 원수를 심판하시는 큰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붙들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신자들은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고 무화과 나무와 포도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기에 힘을 얻으며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장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전에는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로 인해 해를 입었지만 다시는 그런 일들이 없고 도리어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조롱하고 욕하던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영원한 수치를 당하며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먹되 풍족히 먹고, 쉬지 않고 좋으신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송할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그 이후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죽음을 지날 때에도 우리를 그분의 보좌로 인도하시고 심지어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때 새하늘과 새땅을 마련하여 주시면서 우리에게는 썩지 않는 영원한 부활의 몸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지금은 성령을 무한하게 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얼마든지 구원을 베푸시며 하늘의 신령한 단 비를 부으실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은혜가 넘치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짜와 진짜가 뚜렷하게 분리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철저하게 성령으로 충만하여 진짜 신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하늘보좌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은혜로 차고 넘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한 곳에서 주의 은혜를 방해하거나 대적하는 자가 있을 때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친히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 사건이 바로 곧바로 이어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무섭지 않다면 계속 죄 가운데 달려가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가짜로 판명되면서 영원한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이기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는 은혜의 때입니다. 즉,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때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그러나 그 기간은 여러분의 호흡이 붙어 있는 때까지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죽음을 지날 수 있으니, 만일 회개하지 않고 은혜의 때에 은혜를 붙들지 못한다면 그는 죽음과 함께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또한 때가 되면 순식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수 있으니, 그 때가 여호와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에는 영원토록 회개의 기회는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 

그러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주의 재림이 임하기 전까지는 이 땅에서 호흡하는 한, 아직 죄 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의 보혈은 누구든지 믿는 자들의 죄값을 치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과 함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내적인 변화와 함께 거룩한 성품을 갖게 되면서 죄악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온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이 예배 가운데 여러분의 작은 죄라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들기 바랍니다. 만일 회개가 진정으로 마음을 찢는 간절하고 진실한 회개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보내어 하늘의 단 비를 맛보게 하시며 감사와 감격 가운데 기뻐 뛰며 노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복락을 누리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thebloodof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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