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기독교 역할 및 활동 고찰

일제시대 당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사참배 반대 운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강경교회 앞 마당에 있는 항일운동 비석

 

독립운동 선봉 선 기독교정신 이어가

   기독교와 가톨릭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지난 6월 15일,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정기 수요 집회를 이어 가면서 지난해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간 체결한 ‘한일합의 무효화’를 촉구했다. 줄곧 이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신대대책협의회(상임대표 윤미향)는 지난 6월 9일 설립된 정의와기억재단에 한국정교회,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루터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등과 연대해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이 수요집회는 매주 수요일 낮 12시에, 대학생 소녀상 지키기 농성단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인이 민족에 대해 선도적인 자세를 갖춘 것은 일제시대 항일운동에서 정점을 맞이했었다.
   이러한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소개된 때는 19세기 말로 20세기를 거치면서 남쪽 인구에 25% 내외를 차지하는 남한의 주류 종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굳혀 왔다. 특히 개신교는 외세의 침략 및 개화와 척화의 논쟁 속에서 일반 민중 사이에서 급속하게 전파되었고,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을 통해 성장을 했다. 또한 3·1운동의 성공을 통해 개신교는 잠재력과 결집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개신교는 우리나라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 왔다.
   사실 한국에 천주교는 이미 16세기 경부터 ‘서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서학은 조선 정부와 마찰이 있었고, 개신교 또한 1910년 조선이 일제의 식민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국가권력과 심한 마찰을 일으키며 갈등을 빚게 되었다. 이는 당시 개신교가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고 항일적 태도를 분명히 했던 점에 기인한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일제는 1906년에 설치했던 통감부를 총독부로 바꾸고 조선총독부가 한국을 지배하게 됐다. 헌병경찰제를 주요 골자로 한 무단통치를 실시함으로써, 각지에서 일어나던 의병운동과 민족지도자를 색출·검거했다. 이 당시 일제의 탄압에 대한 민족적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리고 일제의 폭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1919년 3·1운동을 통해 개신교가 항일 독립운동과 불가분한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3인의 민족대표 가운데 16명이 목사, 장로를 포함한 개신교계 사람들이었고, 체포된 주동자들의 22퍼센트인 1719명이 개신교인들이었다.
   개신교는 정치 집단은 아니지만, 집회·결사·언론의 자유를 빼앗겼던 일제 초기에는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들이 유일한 조직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을 통해 일제는 폭력으로 통치할 수 없음을 알고 문화통치를 하게 된다. 1920년대 문화 통치를 통해 일제는 억압을 완화하고 이전보다 많은 자유를 허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일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책’으로, 고차원적으로 한국민을 다스리기 위한 정책이었다. 또한 이 시대에 독립운동은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좌·우로 나뉜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각각의 운동을 전개하게 됐다.
   1930년대에 일제는 ‘민족 말살 통치’의 시작으로 한국민을 일제화 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세계적 대공황이 있었다. 경제적 해결을 위해 일본은 대륙 침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어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민족 말살 통치’를 강화해 나갔다. 이 당시는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 사상과 인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등 황국신민화 정책을 통해 식민지 우민화 정책을 펼쳤다.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근 35년을 일본의 식민지 아래서 살아온 역사를 우리는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역사교과서 문제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 속에서 절대 타협을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한국인으로써 자긍심을 가지고 끊임없는 기독교인의 역사 참여를 통해 현재 뿐 아니라 미래의 우리 자손들에게 훌륭한 유·무형의 유산을 물려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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