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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7일간 (2)

제5일 세족식과 최후의 만찬

묵상 구절: 마태복음 26:17~30, 마가복음 14:12~26, 누가복음 22:7~23, 요한복음 13:1~30

[요한복음 13:4~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잡히시기 전날인 바로 오늘, 주님은 희생과 섬김, 사랑의 약속을 위해 제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곧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를 지셔야 하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질투와 경쟁으로 가득 차 있는 그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고 준비하자 제자들은 크게 당황했고, 베드로는 절대로 자기 발을 씻지 못하시게 했습니다.

[요한복음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는 왜 예수님이 자신의 발을 씻지 못하시게 했을까요?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 발을 씻기는 행동은 그 당시 노예가 주인에게 섬기는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보다 더 높고 나이가 많고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은 의무적으로라도 잘 섬깁니다. 그것도 때로는 불평불만하며 억지로 할 때가 많습니다. 하물며 나보다 어리거나 모자라거나 지위가 더 낮은 사람을 섬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은 섬김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서로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발을 씻어주라, 서로 용서하라, 서로 짐을 지라, 서로 덕을 세우라,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 무엇보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우리는 나보다 더 낮은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삶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나요? 나의 섬김에 차별은 없나요? 내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근본적인 이유는 제자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기 원하셨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꺼이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을 씻어주실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섬김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하면 섬길 수 있지만, 거꾸로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섬기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진정한 섬김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세상은 자기 권리를 찾으려고 혈안이지만 우리가 서로를 향해 자발적인 섬김을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써 자기 영광을 취할 권리를 포기하셨고, 오병이어처럼 엄청난 이적을 행하시고도 세상적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포기하셨고, 십자가를 지실 때 쏟아지는 온갖 모욕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원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셨고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고, 가롯 유다가 주님을 팔아 넘길 것을 아셨음에도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섬김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보이고 실천해야 할 소명의 최우선은 ‘섬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최후의 모습으로 섬김을 보여주신 것은 섬김이 제자의 삶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고별사를 남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어서 떡과 포도주의 의미를 설명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신이 드릴 희생 제사, 그리고 자신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한 자들이 받을 영적 유익을 시각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26~28]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성찬식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는 신비한 연합이며,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살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미 하나님의 계획은 확정되었지만, 처참한 고통을 몸소 겪으셔야 했던 예수님은 인간의 성정을 가지셨기에 슬픔과 번민 속에 기도하십니다. 고통의 잔이 그냥 지나가길 간구하면서도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길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그 잔을 마시지 않고는 안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확고하다면 복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십니다.

[마가복음 41~42]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통을 대신 지어야 함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그 뜻을 따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나를 위한 희생이었고, 예수님 피는 나를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희생이 없는 섬김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약속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온전한 희생은 진정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내 안에 주를 닮은 온전한 희생과 진정한 사랑이 있는지, 주님의 살과 피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주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지, 나는 주님께 딱 붙어 있는지 아님 멀찍이 떨어져 있는지ᆢ

내가 주님께 드릴 고백은 무엇인지… 그토록 피하길 원했던 고난의 길을 담대히 가시는 예수님, 쓴 잔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셨던 예수님의 헌신을 생각하며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나 자신의 삶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헌신과 섬김을 기억하며 오늘은 배우자와 아이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기쁨으로 실천해보세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세족식과 최후의 만찬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이기심과 죄, 욕심과 아집과 자존심을 버리게 하시고, 주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제 삶 속에서 매일매일 실천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다시 무장되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만이 해답이며 십자가 사랑만이 방법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사 응답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고, 집중적인 기도의 포문을 열게 하소서.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을 향한 시선이 더욱 뚜렷해지게 하시고,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비상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 쓰임받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윤남철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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