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교단의 탄생과 총신대학교 설립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1906-2002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1906-2002)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8년 장로교목사가 되기 위해서 프린스턴 신학교에 입학하여 메이천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메이천이 설립한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옮겨서 1931년에 졸업했다. 그리고 미국장로교회(PCUSA)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는데, 1936년에 조직된 정통장로교회(Orthodoxy Presbyterian Church, OPC)에 합류했다. 그리고 1년 뒤 1937년 OPC를 떠나서 성경장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 BPC)를 조직했고, 페이스신학교(Faith Seminary, 1937년)을 설립했다.

프랜시스 쉐퍼는 1935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1937년 매킨타이어가 주도하는 성경장로교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의 페이스 신학교로 이적해서 첫 졸업생이기도 했다. 그리고 매킨타이어는 미국기독교협의회(American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1941년, ACCC)와 국제기독교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1948년, ICCC)를 설립했다.

매킨타이어는 WCC(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를 추구했다. 주된 사상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배격이었다. 매킨타이어는 한국에 30회 이상 방문하며 한국교회 특히 예장합동 교단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WCC를 배격하던 매킨타이어는 1959년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분리될 때 방한하여 박형룡 박사와 함께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1959년 매킨타이어는 합동교단 설립과 총회신학교를 설립할 때에 재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ICCC가 후원하는 재정으로 총회신학교 운영을 도왔다. 1963년에 백남조 장로가 사당동 산 31번지를 헌납했고, ICCC가 교사(校舍) 건축 자금을 도와서 지금의 총신대학교 사당동 캠퍼스가 세워졌다. 총신대학교 설립과 동자동 합동총회건물 구입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95세인 2002년에 소천되었다.

그의 신학은 박형룡 박사와 함께 보수주의 신학으로 평가되며 전투적인 성향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깊게 남겼다. 칼 매킨타이어는 근대주의에 맞서는 우익의 저항을 조직한 지도자로서 원래 교양 있는 보수주의자인 J. 그레셤 메이천(J. Gresham Machen, 1881-1937)의 제자였다.(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미국에서 근본주의는 반지성주의 라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매킨타이어를 근본주의라고 평가하는 가운데, 라은태 목사는 “매킨타이어는 장로교 목사이고 진정한 성경주의자”로 존중한다.

칼 매킨타이어 박사는 공산주의와 종교적 자유주의의 지칠 줄 모르는 적수이었다. 그는 흔히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와 많은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서 혹평을 받았으나, 2002년 3월 매킨타이어의 죽음 이후 풀러신학교 교장 리차드 모우는 솔직하게 매킨타이어를 보다 더 호의적인 빛으로 논평하였다. 그는 매킨타이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 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소비에트 진영의 정교회들로부터 온 방문자들을 따뜻하게 영접했을 때 원수에게 도움과 위로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분, 이들은 공산주의 정부의 공작원들입니다!'라고 주장하려 했다.(중략) 에큐메니칼 지도자들과 같이, 나도 그의 비난들을 광신적 폭언들이라고 물리쳤다.(중략)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저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의 다수가 참으로 그들의 마르크스주의 정부의 의식적 지도자들임을 알고 있다.(중략) 내가 아는 한, 에큐메니칼 개신교계에서 아무도 그들이 그의 비난들을 물리쳤던 그 신사적 태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비록 한 사람이지만 우리가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믿었다.(중략) 매킨타이어 박사, 당신이 옳았다!"(Christianity Today, 21 May 2002; Calvary Contender, September 2003).<김효성의 “매킨타이어 박사가 때 늦은 사과를 받음”, 합정동교회 홈페이지에서)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1906-2002) 사진제공 장병준 교수

서울 장신대 정병준 교수는 "칼 매킨타이어는 한국교회에 근본주의 신학을 확장시켰고 재정지원을 통해 장로교 분열과 침례교 분열, 성결교 분열에 개입했고 교회 분리주의자들을 양산했다"면서, "냉전 상황에 있는 한국교회 안에 WCC에 대한 흑색선전을 일삼았다"고 매도했다.(한국기독공보, “'WCC=공산주의?' 발원지는 어디인가(上)”에서) WCC가맹교단인 예장통합 교단의 신학자로서 매킨타이어를 그렇게 혹평하고 매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예장합동 교단 소속 학자들이나 목사들이 매킨타이어를 근본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처사이다. 아니면 자기들이 개혁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예장합동 진영을 떠나서 WCC 가맹교단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2013년 부산 WCC 총회가 개최되자 예장합동 교단은 자체적으로 WCC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토론을 갖기도 했다. 이젠 공산주의에 대한 대립이 아닌,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대립으로 전환되었다. 1950년대 용공 논쟁이었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네오막시즘(Neo-Marxism)과 연관한다.

개혁주의 신학의 반대파들이 칼 매킨타이어를 극우 보수주의 또는 분리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매킨타이어의 후대의 모습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리주의자로 매도당하기도 했지만 결코 이단적이라고 규정한 신학자와 진영이 어디에도 없다. 칼 매킨타이어는 메이천과 프란시스 쉐퍼를 연결하는 고리이고, 예장합동 교단의 탄생과 총신대학교에 중대한 기여를 한 사실에 대해서는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칼 매킨타이어를 부정하는 교수는 총신대학교를 떠나야 할 것이며, 칼 매킨타이어를 부정하는 목사들은 합동교단에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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