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중부교회 최연석 목사 고별설교(2018년 4월 22일)

시편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마가복음15;21~23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최연석목사, 여수중부교회 담임, 전 여수YMCA 이사장, 설교집 <동행>

덜컥, 아무 생각 없이 신학교를 지원하였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불타는 소명이나 심지어는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마저도 없었다. 몇 년에 걸친 낭인 생활에 지친 탓도 있었을 것이고, 젊은 날 누구나 가졌을 법한 존재의 근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 어떤 선입견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출석했던 교회의 목사님에게 늦게서야 세례를 받고 원서를 제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학교가 한신대만 있는 것으로 알았다. 여기에 등록금이 싸다는 것, 그리고 성적이 좋으면 장학금이 있다는 것도 솔깃한 면이 있었다. 이런 나의 생각과 기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입학시험을 보는데 가장 자신이 있었던 영어시험 마지막에 이런 문제가 나왔던 것이다. 다음을 영작하시오.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도 않고 목사가 되려고 하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1. 허접한 꽃들의 축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강해하면서 그 제목을 ‘허접한 꽃들의 축제’라고 달았다. 처음에는 기이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뜻이 아니었다.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핵심경전인데 그 시작이 이렇다는 것이다. 어느 날 부처가 1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탁발을 하고 설법을 하신 내용이라는 것이다. 더 알기 쉽게 말하면 허다한 거지나 다름없는 허접한 무리들과 함께 계시면서 가르친 내용이라는 것이다. 

신학교 수업은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폼을 재느라고 기독교 사상사, 기독교 교리사 등을 읽어보았던 나에게 대부분 수업은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일 뿐이었다. 게다가 입학하던 해에 긴급조치가 발동되어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광주 경찰서에 잡혀가 석 달이 지난 다음 풀려났다. 그리고는 사회과학 서적 몇 권을 먼저 읽은 죄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거의 매주 시위를 하는 데에 성명서를 작성해 주고, 소위 배후에서 암약한 인물이 되었다. 거의 실제상황이다. 그렇게 어찌어찌하여 5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많은 선배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목사가 되려는 생각은 거의 없었고 목회가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던 시절이었고 한 학기를 보내고 다음 학기를 기약할 수 없었던 경제적 형편도 한 몫을 했던 것이다. 

물론 신학교 시절이 나에게 깨우쳐 준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신학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라면 ‘신에 대한 학문’인데 놀랍게도 신학은 고상하고, 신비롭고, 거룩한 것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학은 인간학이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나름 이렇게 번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학은 인간의 삶, 삶의 형편에 대한 학문이다. "신학은 인간 삶의 허접하고 자잘구레한 삶의 구석구석을 들추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고상하고 거룩한 진리는 바로 허접한 인간의 일상을 설명하고 바로 잡아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성경이 증언한다. 성경의 거의 모든 내용이 그렇다. 문둥병자, 맹인, 혈루병, 걷지 못하는 자 등 이런 병든 자에게 기적을 베푸신 이야기, 배고픈 자를 먹이신 이야기, 불의한 권력을 질타하신 이야기, 율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종교계급에 대한 이야기 등은 모두 ‘허접한 삶’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나중에 교회는 이것을 신학화 하였고 교리로 만들어 다시 율법학자들의 길을 따랐을 뿐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사도신경이다. 거기에는 예수의 나고 죽으심만 있지 ‘일하신 모습, 무엇을 했는가/가르쳤는가’에 대한 것은 한 줄도 없다. 단언하건데 예수의 삶은 ‘허접한 꽃들의 축제’였다. 산상수훈에서 8복을 가르치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은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 않은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지 않은가.

2.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물론 나는 불타는 소명감으로 목회를 시작한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처럼 그렇게 시작한 사람도 없지 않다. 부르심을 받자마자 자신의 그물을 버리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출발한 베드로도 있다.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가 여기서 목회하는 동안 여러 번 소개한 인물이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신비한’ 인물 구레네 시몬이다. 그가 신비하다는 것은 특별히 거룩한 부름을 받았다든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다. 물론 구별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예수의 부르심을,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갔다는 것이다. 이역만리에 살다가 명절이 되어 고향 땅을 밟게 되었고, 마침 그 때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형을 받아 골고다로 가는 행렬이 있었는데 그 행렬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가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쓰러지자 호송하던 로마 군인이 그를 지목하여 대신, 억지로 지고 갔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떤 기록도 없다. 다만 바울이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어머니로 부르는 대목으로 보아 그 ‘억지로 진 십자가’를 통해 그 가정은 초대교회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나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다행이냐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성경의 그 많은 인물 중에 나 같은 그런 존재도 있구나. 내가 다윗을, 바울을 그 누구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억지로, 떠밀려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닌가. 그런 세월을 사십 년을 지냈는데 이것을 어찌 은혜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학창시절에 가까이 했던 시 중의 하나가 김수영의 시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다. 아마 시인은 모처럼 창경원이라고 가서 가족과 외식이라도 한 모양이다. 큰 마음을 먹고 갈비탕이라도 시킨 모양인데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읊는다.

『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탄식한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기독교의 모든 신학을 알고, 성경의 모든 것을 가르치려던 지난 내 세월이 이렇지 않았을까. 내가 감당했던 십자가의 모양이 그랬지 않았을까. 상놈은 나이가 양반이라더니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3. 동백꽃 피고지고 스물여덟 해

내가 한 후배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정말 마음에 찔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부친이 목사였으니까 모태에서부터 교회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살과 피, 골수까지, 아니 내가 지닌 모든 것이 교회로부터 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다. 내가 어디 땅을 파서, 무슨 기술이 있어서 십원 한 장을 벌었던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지금도 한국교회에 대한 깊은 회의를 털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비판적인 이야기도 숱하게 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물으신다면, ‘너는 뭐냐’고 물으신다면, ‘네가 시무했던 교회는 뭐냐’고 물으신다면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동백꽃 피고지고 스물여덟 해인데, 아니 마흔 해를 헤아리는데, 너는 도대체 뭐냐. 

지난 번에 드렸던 말씀을 다시 드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실수도 많았고 그래서 때로 상처를 받은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면서 말씀드린다. ‘해후’라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랑해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어. 내가 가르치고, 기도하며,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결과야 어떻게 나왔든지 가르치며 기도했던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목사는 죽을 준비, 설교할 준비, 이사 갈 준비를 하라고 젊었을 때부터 선배 목사님들에게 배웠다. 설교할 준비는 그런대로 했었고, 이사 준비는 십년을 목표로 했는데 30년이 다 되어간다. 죽을 준비는 아직 못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동백꽃 피고지고 스물여덟 해를 보냈다.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동백꽃을 보면서 지어보았던 짧은 시가 있었다.

동백꽃은

지고서도

그대로 동백이더군

떨어지는 무게가

왜 없었을까만

동백꽃은

지고서도

여전히 동백이더군

이제 부를 찬송가 222장은 내가 교회 고등부를 다닐 때 담임목사님이 떠났는데, 우리가 그 때 광주역에까지 나가서 불렀던 찬송가다. 50년 만에 다시 불러 본다. 동백꽃이 지고서도 여전히 동백꽃이듯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목사로, 자랑스러운 성도로 만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