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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목사】 교회 안의 장사치들(2)부자들을 위한 영적 매뉴얼로 변질된 복음
한명철 목사┃ 한명철 목사는 말씀 연구와 기도에 매진해 온 목회자이다.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팍스신학대학원(Geore Fox Evangelical Seminary)과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JSTB)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은혜와 평강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한명철 목사는 말씀이 어떻게 삶속에서 역사하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오로지 성경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그의 글은 읽는 이의 삶을 헤집는다. 한명철 목사의 대표적인 책은 《강한 용사》 (두란노), 《살아난다 성경암송》 (두란노), 《성경통달에 이르게 하는 자기학습법》 (두란노), 《인봉된 책》 (쿰란출판사), 《개봉된 책》 (쿰란출판사), 《붕괴의 신호음이 들릴 때》 (쿰란출판사), 《고백》 (본출판사) 등 약 30여권이 있다.

맘몬의 지배 아래 발람 같은 그들

우리에게 안식일은 주님의 부활로 인해 새롭게 제정된 주일이다. 주일은 영혼이 쉬는 날이다. 교회가 맘몬의 영에 사로잡히면 주일이 세는 날로 변질된다. 영혼의 쉬는 날이 아니라 돈을 세는 날이 되어버린다. 어느 대형 교회 옆에는 아예 교회 헌금을 입금시키기 위한 은행이 세워졌을 정도다. 순례객들의 성전 예배 편의를 위해 성전 뜰에 마련되었던 환전상들과 각종 짐승과 비둘기 팔던 자들의 망령된 행실과 무엇이 다른가? 돈은 영혼을 마비시킨다. 영적 시력을 흐릿하게 만든다. 통찰력을 빼앗아간다.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돈을 받고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은 백성을 어찌 저주하겠느냐고 거절하면서도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했다.

재리(맘몬)의 유혹은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게 한다. 맘몬은 봄철에 내리는 눈처럼 영혼의 농작물을 망친다. 소유는 탓할 것이 못되지만 욕심이 엉겨 붙으면 소유욕이 되어 맑은 영혼을 더럽힌다. 신자가 물질을 소유하여 다스리면 좋겠지만 물질에 소유되어 다스림을 받기에 소유욕은 경계하고 다시 경계해도 부족함이 없다. 돈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며 사단이 쳐놓은 덫이요 올가미다. 돈은 접착력이 강해서 한 번 붙으면 저절로 떨어지는 법이 없다.

부자들을 위한 영적 매뉴얼로 변질된 복음

주님은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중히 여길 것을 원하셨다. 맘몬과의 관계를 경계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음흉한 세력, 맘몬을 미워하고 가볍게 여기라는 반어다. 부, 재물, 소득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중성적이다. 돈의 위험은 돈이 지닌 효용적 가치를 넘어 신적 마력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맘몬의 영에 접하면 당장 영혼의 오염이라는 위협에 직면한다. 맘몬의 침투력은 가공할 만하며 전염력 또한 매우 급속하다. 빛의 빠르기를 능가하며 장악력도 절대적이다. 맘몬이 던지는 추파를 피하기 어렵고 독성 강한 향취는 몽혼제처럼 영혼을 한동안 깊은 잠에 빠뜨린다.

돈의 위력은 대단하여 실생활에서 거의 만능 해결사 노릇을 한다. 심각한 문제는 청년 세대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세속적 가치관에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없고 그들이 추구해야 할 기독교적 가치관을 교회가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빈자들을 위한 복음이 부자들을 위한 영적 매뉴얼로 바뀐 요즘 세태에서 주님의 복음 정신은 힘을 잃는다. 기독교인의 영향력 확대라는 구호 아래 성공과 일등을 향해 질주케 하는 것은 약삭빠른 말쟁이들이다. 배후를 모르면 속아 사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인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주님은 돈 문제를 다루셨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들이 합세하여 주님을 책잡기 위해 세금 문제를 들고 나왔다. 세금을 거부하면 로마 정책을 반대하는 사상범이 되고 찬성하면 민족의 재산이 강탈당함을 묵인하는 민족반역자가 되도록 올무를 만들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납세용 은전을 들어 보이면서 질문을 던지셨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피할 수 없는 질문에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 답했다. 주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원래 은전의 앞면에는 월계관을 쓴 황제의 얼굴과 ‘만민의 주 신성하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란 글이, 뒷면에는 각양 신화적 인물이나 동물이나 건물이 새겨졌다. 가이사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은전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이므로 그에게 바쳐야 한다. 그 외의 나머지 만물에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주님께 그런 질문을 던진 바리새인들도 영혼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자신들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원문에서 두 내용을 잇는 접속사는 “그러나”로 번역하여 후자의 내용을 강조한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그들까지도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주님 당시에는 20세 이상의 유대 남자들은 매년 아달월(3월) 15일이면 2드라크마인 반 세겔을 성전세로 바쳤다. 반 세겔 받는 징수관들이 베드로에게 독촉했다. 베드로는 성전세를 낸다고 말한 후에 집안에 계신 주님께 사정을 고했고 주님은 만유의 하나님에게 아들 된 자로서 세금 낼 이유가 없었지만 징수관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세상 임금의 종노릇 하는 자들에게 성전세를 내게 하셨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바다로 달려가 낚시를 던져 걸려든 고기의 아가미에서 한 세겔을 얻어 두 사람의 몫으로 납부했다. 고기 뱃속의 동전은 효용성을 상실한 돈이었기에 주님은 무가치한 세금을 위해 무가치한 쇳덩이를 꺼내 사용하셨다.

Malczewski Jacek(1854-1929), Render unto Caesar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숫자에 매우 민감하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좋다. 주님에게는 한 세겔이나 300데나리온이나 차이가 없었다. 주님의 눈에는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은 과부가 부자들 보다 많이 넣은 것이었다. 부자에게서의 많은 액수와 가난한 과부에게서의 적지만 많은 가치를 보셨다. 가룟 유다는 향유가 지닌 액면 가치를 계산했지만 주님은 자신의 장사를 예비한 가치 초월의 값어치를 매기셨다. 우리가 돈의 액수에 마음이 요동되지 않으면 복이다.

떨어지는 낙엽에서 돈의 운명을 읽으라

돈은 좋은 것이지만 돈 자체가 밥은 아니다. 돈을 방안 가득히 채워도 마음은 공허할 수 있고 매일 돈을 가마니에 긁어 넣어도 영혼의 빈 공간 한 구석을 채우지 못한다. 은행에 저축을 많이 한 사람이 있다. 우연히 강도를 만나 돈을 다 털리고 은행 문마저 닫혔다. 배가 고플 때 은행 금고 속에 가득한 돈이 국수 한 그릇 말아먹을 힘이 되지 않는다. 당뇨가 심한 이 사람은 한 끼 때울 방도가 없어 전전긍긍이다. 도둑질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빌어먹어보지 못한 이 사람은 남에게 구걸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너무 궁색해서 겨우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얻었다. 빚이지만 그의 지갑 속에는 충분한 현찰이 들어 있다. 하필이면 부자가 배를 곯고 포장마차 안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의 마음이 동해 그를 포장마차로 데려가 잔치국수 한 그릇을 대접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 은행에 돈 맡긴 사람을 도왔음은 아이러니다. 무슨 말인가? 은행에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고 빚이라도 내 손에 있는 것,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쓰는 돈만이 내 돈이다. 돈이 부리는 조화란 이런 것이다. 제 돈으로 사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모두가 남의 빚으로 사업도 하고 살기도 한다. 돈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실제를 직시하며 유혹을 극복하라!

돈은 낙엽처럼 때가 되면 진다. 나무는 잎사귀가 무성할 때와 제 몸에서 떨어질 시기를 안다. 마지막 잎새를 기억하는가? 잎은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런 동작이 바람과 부딪혀 더 빨리 떨어진다. 하나의 작은 생명이 땅속에 묻힐 때 그것은 나무의 씨앗으로 아름답다. 땅을 뚫고 작은 얼굴을 세상으로 내밀 때 작은 싹은 아름답다. 바람에 시달리고 햇볕에 데고 벌레에게 물리며 작은 원가지 하나를 내뻗으면 회초리처럼 꼿꼿한 그 모습이 아름답다. 잔가지를 내고 가지마다 새싹이 돋고 봉오리가 생기면 생명의 확장에 탄성이 절로 난다.

나무둥치를 이루고 키도 자라고 잎사귀가 무성하면 파릇파릇한 생기에 활력을 얻는다. 꽃망울이 터지고 꽃을 피우고 소담한 열매를 맺을 때 천의 얼굴, 만의 모습에서 웃음 짓는다. 봄,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어 꽃도 지고 열매도 떨어지고 푸른 잎이 석양의 노을처럼 찬란히 변할 때 변화의 신비에 숙연함을 느낀다.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나무는 추위에 떨고 잎사귀가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로 남겨졌을 때 이별의 아픔과 외로움에 밤마다 윙윙거리며 운다. 질 때를 알아서 자신의 몸을 키웠던 땅으로 떨어지는 낙엽에서 돈의 운명을 읽어야 한다. 나무 둥치에 여전히 붙어있는 가지처럼 돈의 유무, 다소에 관계없이 삶 자체가 소유를 극복한 존재로서 그 가치를 보여야 한다.

 

윤홍식 기자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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