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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야고보서를 시작하면서약1:1, 부산 한우리교회 2016년 9월 18일 박홍섭 목사

지난주에 경주에서 발생한 진도 5.8의 지진은 말로만 듣던 지진의 무서움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집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 분들은 내가 살고 있는 건물이 과연 6.5이상의 지진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보셨겠죠? 어떻습니까? 다시 지진이 온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까? 불안하시면 한우리교회로 오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교회가 지진에 강한 팽이공법으로 기초가 되어 있어서 왠만한 지진은 다 견디어 내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건물에서 기초의 중요성은 비단 지진의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중요하다고 기초만 튼튼하게 해놓고 벽과 지붕을 소홀히 한 건물이 있다면 그 역시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니겠죠. 

오늘부터 볼 야고보서는 신약의 여러 서신 서들 가운데 공동서신으로 분류된 성경입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주로 그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교회,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 에베소서는 에베소, 빌립보서는 빌립보, 골로새서는 골로새 교회를 향한 편지로 거의 특정한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와 베드로전후서, 요한 일이삼서와 유다서 같은 서신은 독자가 특정한 교회가 아니라 보다 일반적인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공동서신, 혹은 일반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바울서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바울이 초기 기독교회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었던 유대교와 싸우면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라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확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공동서신도 바울서신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변증하고 수호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서신이 중요한 건물의 기초에 해당된다면 공동서신은 비바람을 막아내는 벽과 지붕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라는 신앙의 기초를 비교적 열심히 가르쳐왔습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오해가 있기도 하지만 열심히 가르친 것은 사실입니다. 이 기초는 언제나 공격받아왔고 또 변질되고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중요한 신앙의 터입니다. 그러나 중요하다고 해서 기초만 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벽도 쌓아야 하고 지붕도 올려야 합니다. 기초가 벽이 될 수 없고 기초가 지붕이 될 수 없습니다. 튼튼한 기초 위에 벽은 벽대로, 지붕은 지붕대로 얹어야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건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순서가 복음서와 바울 서신 뒤에 공동서신이 배치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채영삼, 야고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벽과 지붕에 해당되는 공동서신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신학적으로도 90년대 말에 와서야 공동서신의 신학이 거론되고 다루어졌으니까 그동안 공동서신이 얼마나 홀대받아 왔는지를 알 수 있죠. 공동서신의 첫 번째 편지인 야고보서부터 지푸라기 서신이라는 별명처럼 지푸라기 취급을 받으며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고 변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야고보서를 비롯한 공동서신을 지푸라기처럼 소홀히 여기면 어떻게 될까요? 기초만 덩그러니 있고 세상이 퍼붓는 온갖 비난의 비바람을 막아낼 벽이 없고 지붕이 없는 교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세상 가운데 보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의 교리를 보고 우리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행동을 보고 우리의 믿음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복음서와 바울서신만 아니라 공동서신도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하고 그 안의 말씀들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보배로운 믿음을 어떻게 삶의 행함과 참된 경건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를 야고보서와 공동서신서의 말씀들을 통해 잘 듣고 배워서 우리 신앙의 벽과 지붕을 튼튼하게 쌓아 올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야고보서의 서론적인 문안만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문안한다고 한 것처럼 이 편지의 송신자는 야고보이며 수신자는 흩어진 열두 지파입니다. 여기 흩어진 열두지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새롭게 탄생한 영적 이스라엘, 즉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저자는 누구입니까? 야고보입니다. 신약성경에 야고보라는 인물은 가롯 유다 아닌 다른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눅6:16),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세베대의 아들, 곧 요한의 형제 야고보(행12:2)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막15:40),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고전15:7, 요7:5), 이렇게 4명이 나오는데 이 중에 야고보서를 지은 야고보가 누구일까요? 여기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고 신약학자들 대부분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후 예수님을 주로 믿게 되어 초대교회의 유력한 지위를 얻었고 예루살렘 공회의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갈2:9절을 보면 바울이 야고보를 베드로와 요한보다 먼저 언급하면서 초대교회가 그를 기둥같이 여겼다고 했었고, 행15장에는 교회사상 최초로 모인 예루살렘 총회의 총회장 역할을 야고보가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영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순교한 해가 주후 62년이니까 야고보서는 아마도 62년 이전 어느 때에 이런 저런 이유로 흩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의 백성들을 붙들어주고 권면하기 위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쓴 편지인 것이죠. 
   
그가 흩어진 주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누구보다 내세울 만한 직책을 가졌던 야고보입니다. 예루살렘 총회 총회장입니다. 초대교회의 기둥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직책과 영향력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기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혈통은 타인에게 자신을 가장 강력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자기소개입니다. 야고보가 얼마든지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일뿐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인식할 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배드리러 나올 때도 마찬가지이고 일상을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교회의 직책과 세상의 그 어떤 지위와 혈통의 관계로 인식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야고보가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왕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며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온 우주의 통치권을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아 다스리고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사망과 세상을 이기어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주인은 없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성령으로 그를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당신에게 속한 생명과 진리의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분의 종이 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종이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을 때 이 땅의 상황과 나의 형편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방대 다닌다고 기죽지 않을 수 있고 백수라고 주눅 들지 않을 수 있고, 알바하고 사는 인생이라고 자기를 비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칭호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칭호가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셨고 이미 그를 믿는 모든 자를 하늘의 보좌 우편에 앉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자유하게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자유인만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의 칭호이며 그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기를 꿈꾸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러운 칭호입니다. 

이 칭호에 담긴 자기 인식이 있을 때에만 세상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이 부추기는 끝없는 욕망의 전쟁터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지요? 누가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지 않을 수 있고 자기의 낮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요? 누가 사람을 차별하지 않을 수 있고 누가 믿음을 행함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요? 누가 혀를 다스리며 누가 위로부터 난 지혜로 세상을 탐하지 않을 수 있는지요? 누가 주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면서 길이 참으며 인내할 수 있고 누가 믿음의 기도로 하늘을 우러러 땅을 살 수 있는지요? 바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지 않고 감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신앙의 문제가 파생합니다. 야고보서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인생을 살고, 이 세상을 승리하는 은혜를 맛보며 어떤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복음의 기초와 어떤 비바람도 막아낼 수 있는 벽과 지붕을 잘 만들어 믿음의 아름다운 건축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박홍섭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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