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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화칠기의 명맥을 지켜온 이석구 장인(匠人)채화칠기의 기술을 전수 받을 후계자 절실해

서예가 구당(丘堂) 여원구(呂元九,1932~ ) 어른께서는 이석구 장인의 호(號)를 동원(東原)이라 불렀다. 그 후로 이석구 장인은 동원(東原)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 이석구 장인을 만나기 위해서 동원공방(東原工房)이 있는 하남엘 갔다.

인터뷰를 위해 본헤럴드 최원영 대표가 공방 마당에서 ‘선생님~ 선생님’라고 부르자 이석구 장인이 마당까지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채화칠기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장인 중 한 분이라고 말하는 이석구 선생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맑은 정신과 강한 기품을 느끼게 해줬다. 그 분의 사무실에걸려 있는 여러 장의 액자가 젊은 시절부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음을 알려줬다. 그 분의 사진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석구 장인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Q1. 선생님을 뵙기에 연륜이 느껴지는데 몇 살부터 칠기를 시작했나요?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 때 부터였어요. 벌써 이 일을 한지가 55년이 되었네요. 처음 시작할 때는 칠기가 생업이었어요. 제가 처음 이일을 할 때만 해도 칠기는 상당히 유행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칠기인데 제가 제 부친 성품을 닮아서 오직 한 길만을 걸어왔어요.

Q2. 그러면 처음부터 채색칠기를 시작하신 건가요?

그렇지는 않았아요. 제가 처음 칠기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 나전칠기였어요. 나전칠기 아시죠? 조개껍질을 얇게 갈아서 문양을 만드는 작업이요. 당시에는 자개장롱 같은 것이 유행했어요. 아시죠? 검은색 칠기 바탕에 조개로 소나무며 산이며 학 그림을 붙여 넣은 것요. 그렇게 해서 젊었을 때 돈을 많이 벌어서 돈 꽤나 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가까이 하는 30대 초반의 선배가 장롱에 다양한 색상을 입히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지요. ‘아, 옷 칠이 검정색만이 아니구나.’ 그 후로 저도 채색을 배우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칠기라는 공예품을 미술세계로 확장해 보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그 때부터 미술을 배우고 연구했어요, 점점 사업을 해서 돈 버는 일은 뒷전이 되었고 작품 연구에 매진했지요.

사실 옻칠이 생계에 매이면 발전성이나 확장성이 생길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옻칠이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지요. 장인들이 기술을 좋은데 그것을 현대미술과 융합하는 도전을 하지 못해요. 연구를 하면서 저는 이론과 실제가 조화를 이루도록 부단히 애썼지요.

Q3. 선생님 인생에 전환점이 있었나요?

저는 제 인생에 전환점을 '만남'이라고 생각을 해요. 가장 먼저는 교도소에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처음에 칠기를 시작할 때는 꽤 돈을 만졌어요. 젊은 시절에 많은 돈을 버니까 사업을 확장했는데, 80년 대 초반 정국이 불안하자 작품도 잘 팔리지 않았고, 전두환 전 정권 때 약 4개월 교도소에 수감됐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교도소에서 낙심만 하고 있을 수 없어서 책을 읽었어요. 당시 두 권의 책이 내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주었는데 카네기의 <인생론>과 성경책이었어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의 실천편이 카네기 인생론 같았지요. 그 후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꿈에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은 거대한 형체로 내게 다가오셨는데 그 경험이, 성경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했고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기도한 후 37살 무렵에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지금도 그 날의 환상이 뚜렷해서 신앙의 힘이 되고 있어요.

또 다른 만남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시며 미술사학자이시던 정양모 선생님을 만난 일이지요. 1990년대 후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던 선생님이 제 공방을 방문하고 올칠에 대한 새로운 기법을 발견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무척이나 반기셨어요. 그러면서 저를 격려했는데 그 후로 더욱 용기를 갖고 대한민국 채화칠기를 더욱 발전시키자는 도전을 갖고 작품세계에 빠지게 됐어요.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시며 미술사학자이시던 정양모 선생

2002년 대선 무렵 선거를 10여일 앞두고 남산에 있는 <서울클럽> 갤러리에서 작품전시회를 하는데, 당시 대단한 분들이 많이 와서 호응을 했어요. 이회창 대통령 후보도 와서 관심을 가졌는데, 정양모 선생님은 예술인이 정치인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호암아트홀에서 작품 전시회를 추진했지만 여의치가 않아서 <현대화랑>에서 작품전시회를 하게 되었어요.

 

Q4. 선생님께서 앞으로 하시고 싶으신 일이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소망은 한 가지 칠기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거여요. 대한민국의 옻칠은 중국이나 일본과 차이점이 있어요. 일본은 단조롭지만 디자인을 강조하고 중국은 옷칠액으로 작품을 만들지요. 하지만 나는 옻칠을 회화적으로 접근을 했어요.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옻칠을 하겠다고 나서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후학을 빨리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가지 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다시 작품 전시회를 위한 작업을 완성하는 일이어요. 사실 제가 여러 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어요. 또 옻칠은 귀족공예인데 재력 있는 사람들이 채화칠기의 작품을 이해해주고 작품을 구매해야 우리나라 채화칠기 명맥도 이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Q5. 선생님 마지막으로 평소에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일 년 전 건강이 좋지 못해 쓰러질 때부터 빛이나 물 생명과 관련된 말씀들을 좋아하게 됐어요. 아프면서 보니까 창세기 1장 창조하시는 장면부터 새롭게 보였어요. 저는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어요. 또 저는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에서 설교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과 같은 것을 통해 포괄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채화칠기 이석구 장인의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작업장을 둘러보는데, 이 아름다운 작품들이 대한민국의 채화칠기를 이어가도록 함께 할 수 있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창고에 쌓여 있는 작품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좋은 화랑에서 조명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노구의 몸에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아 대한민국 채화칠기를 염려하는 장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온 내내 생각났다. 뜻이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거나 채화칠기를 배우고 싶다면 이석구 장인을 찾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문의 :010-6244-8550)

 

윤홍식 기자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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