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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걸 詩】 어느 진혼가감리교 아카데미 성백걸 교수의 벌목 진혼가

 

어느 진혼가

 

       1

두어 달이 좀 안 되었다.
어느 저녘 산책길에
찾은 뒷산 숲이
삭막하게 벌목되어 있었다.
어안이 벙벙...
황당하고,
황폐했다.
설화산의 한 자락이었다.
어머니의 소천으로 
지쳐, 내심 위로와 
생기를 받고 싶었다.

       2

그 뒤로 애리고 쓰리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마음을 다스리려 애쓰며
그리로 발길을 향하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고 
벌채 되지 않은
다른 산길로 다니며
새로 정을 붙이려 애썼다.
쓰러진 나무들,
산길에 흩어진 아름답고
눈물겨운 추억들,
사라진 산숲을 위무하는
시라도 쓸까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3

초여름의 비내리는 
오늘은  왠지, 마음보다
발길이 먼저 용기를 냈다.
잘라져 나간 그루터기엔 
어느새 새순이 나고,
여기저기 야생초들도 돋았다.
오르는 산 길은 
천 배 만 배나 힘이 들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온 천지우주의 가슴 
아픈 눈물을 불러 모아 
설화산 한 골짜기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잘리고, 뽑히고,
무너지고, 자빠트려진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잔상들
베어진 상처들마다 
사랑의 손으로 씻어주며 
진혼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위무의 눈물이 내리고 있었다.

        4

수천년 수만년 수십억년의
세월과 바람과 햇빛과 비가
찾아와 가꾸어온 산숲이었겠지.
스무해 넘게 앞뒤로 같이 살면서
단 한번도 날 외면하지 않은,
하나로 호흡한 정든 숲이었다.
그래, 단 한번도 예외 없이
날 받아 주었다.
날 품어주었다.
언제 어느 때나 오르기만 하면
무조건 날 반겼다.
세상에서 이런 만남의 인연도
있다니, 신기했다.
내 기진한 생명을 살려주고,
내 아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내가 저기서 오면 제가 먼저 알고
기쁠 때는 기쁨으로
슬플 때는 슬픔으로
힘들 때는 힘을 내서
나를 맞이했다. 
산도 한 이십년은 사귀어야
서로 지기가 되는가 보다 했다.

         5

이제 설화산 한 자락에
잘라지고 파헤쳐진
골짜기 위로 과수원이나,
인간의 손으로 지은 어느
사업의 건물이 들어 서겠지.
진심으로 잘 되길 빈다.
수천 수억 수십억년의 
세월과 함께
생명의 숨결로 살다가
사라진 그 산숲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역사의 산지로
빛나길 진정 기원한다.

      6

잘들 가시오,
그리고 또 만나시게.
생강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부활하는 산숲의 생명과 
숨결을 소망하며,
초여름의 내리는 비에 실어 
나직한, 그러나 온 천지에 사무치는
위무의 진혼가로 부친다.

 

최장일 기자  bonh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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